번역이 만든 '서울특별시'…서울은 어떻게 '특별한' 시가 됐나

머니투데이 정현수 기자 2021.09.12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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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발표된 서울시헌장의 영문 버전 /출처=서울역사편찬원1946년 발표된 서울시헌장의 영문 버전 /출처=서울역사편찬원


일제시대 서울은 경성부로 불렸다. 일제는 경성부를 경기도 아래에 뒀다. 서울의 위상은 1945년 광복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미 군정은 1946년 발표한 '서울시헌장'(Charter of the city of Seoul)에서 수도로서 서울이라는 이름을 공식화했다.

서울시헌장은 영문으로만 먼저 공포됐다. 1장 1조의 내용은 'The City of Seoul is hereby consitituted a municipal corporation to be known as SEOUL'이다. 주목할 부분은 'municipal corporation'(자치단체)이다. 자치권에 의미를 둔 내용이다.



독립시의 개념이 갑자기 특별자유시로 바뀐 이유
서울역사편찬원은 자료집에서 "당시 미 군정은 자신들이 구상한 것이 샌프란시스코, 버지니아 등에서 시행되던 독립시(independent city) 제도였다고 발표했다"며 "중앙정부에 직속돼 있으면서도 독자적으로 지방정부 운영이 가능한 미국의 도시를 모델로 했다고 밝힌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얼마 뒤 나온 국문 번역본에서 의미가 달라졌다. 국문 번역본은 서울시헌장 1조의 내용을 '경성부를 서울시라 칭하고 이를 특별자유시로 함'이라고 명시했다. 자치단체 내지는 독립시의 개념이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municipal corporation'을 특별자유시로 번역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1949년 공포된 지방자치법은 서울특별자유시를 서울특별시로 바꿨다. 서울역사편찬원은 또 다른 자료집에서 "서울시가 특별자유시로 규정된 사실은 오늘날 서울특별시라는 명칭을 갖게 되는 역사적 근거가 됐다"고 설명한다. 누군가의 번역이 특별시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서울특별시는 이후 말그대로 '특별시'의 위상을 갖게 됐다. 사람이 많이 살지 않던 강남 지역은 1963년 서울특별시로 편입됐다. 비슷한 시기 경기도 일부 지역도 서울특별시의 땅이 됐다. 이후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개최하며 세계적 도시로 거듭났다.

하지만 역효과도 났다.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부동산 가격 폭등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상당수 지방은 소멸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수도권의 인구수는 이미 비수도권의 인구수를 추월했다. 균형발전 차원에서라도 '특별시'라는 이름을 빼자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윤영석 국민의힘 의원이 9월9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서울특별시에서 특별이라는 글자를 없애야 한다"는 내용의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제공=윤영석 의원실윤영석 국민의힘 의원이 9월9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서울특별시에서 특별이라는 글자를 없애야 한다"는 내용의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제공=윤영석 의원실
윤영석 의원 "서울특별시 개념은 구시대적"

윤영석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9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수도권 일극주의를 극복하고 균형발전을 위한 제언을 하고자 한다"며 "서울특별시의 '특별'이라는 글자를 없애야 한다. 서울에 살면 특별시민이고 다른 곳에 살면 일반시민이 되는 구시대적 차별과 분리정책을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의원은 관련법 개정까지 검토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윤 의원실에 보낸 '입법조사회답'에서 "서울특별시에서 특별이라는 단어를 제외하려면 지방자치법 개정을 통해 지자체의 종류와 명칭을 변경하고 해당 지자체 명칭이 포함된 모든 법령 및 자치법규 등의 변경이 함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현행 지방자치법은 지자체의 종류를 △특별시, 광역시, 특별자치시, 도, 특별자치도 △시, 군, 구 등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분류한다. '특별'이라는 단어는 세종특별자치시, 제주특별자치도도 쓰고 있다. 서울과 세종, 제주는지방자치법 특례 규정에 따라 각각의 행정특례 법률도 두고 있다.

따라서 서울특별시에서 '특별'이라는 단어를 삭제하기 위해선 지방자치법 개정뿐 아니라 해당 지역명이 포함된 모든 법령과 자치법규 등을 모두 바꿔야 한다. 입법조사처는 "해당 지역의 특례는 그대로 두고 '특별'이라는 단어만을 제외하는 건 실익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윤 의원실 관계자는 "서울특별시에서 '특별'이라는 단어를 제외하려면 여러 법률을 동시에 개정해야 한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하지만 균형발전 차원에서라도 이제는 검토를 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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