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석방 한달…발묶인 이재용[오동희의 思見]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1.09.1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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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가석방으로 풀려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8월 13일 오전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에서 나와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이기범 기자 leekb@광복절 가석방으로 풀려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8월 13일 오전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에서 나와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저에 대한 걱정과 비난, 우려 그리고 큰 기대를 잘 듣고 있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한달전 8.15 광복절 가석방으로 출소할 당시의 말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13일 출소하자마자 서울 이태원집에 잠깐 들러 옷차림만 정비한 후 바로 삼성서초사옥을 찾았다. 그 자리에서 정현호 삼성전자 사업지원TF 사장 등 삼성 경영진들을 만나 그동안 못챙겼던 현안부터 점검했다.



그리고 열흘 후인 같은달 24일 향후 3년간 반도체와 바이오 등에 240조원을 신규 투자하고 직접 고용 규모를 4만명으로 확대하겠다는 투자와 고용 확대 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같은 발표 이후 이 부회장 움직임은 눈에 띄게 더뎌졌다. 1주일에 한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관련 재판을 위해 온종일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해 앉아 있는 것 외에 대외활동은 보이지 않는다. 삼성전자를 제외한 다른 계열사를 챙기는 일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지난 8일 정의선 현대차 회장, 최태원 SK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등 10대 기업 총수들이 모여 미래먹거리를 위한 수소기업협의체를 발족할 때도 이 부회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삼성물산이 협의체에 참여함에도 불구하고 국내 최대 그룹 총수는 그 자리에 없었다.

일부 단체들이 취업제한 이슈로 경영활동을 못하도록 압박하기 때문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7개 단체는 지난 1일 이 부회장을 취업제한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까지했다.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고발과 재판의 연속이다.

이는 약 2년간의 수형생활을 한 이 부회장을 풀어주는 방식이 사면이 아닌 가석방으로 결정되면서 이미 예견됐던 일이다.


글로벌 반도체 전쟁과 백신 확보전이 치열한 가운데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이 부회장에게 기회를 주면서 정치권은 정작 정치적 부담을 지지 않기 위해 가석방이라는 어정쩡한 방법을 택했다.

시민단체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한다치더라도 정치권은 대의를 위해 과감한 결단을 했어야 했다. 이해득실을 따져 안전한 길을 선택하다보니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

요즘 삼성 내에서는 복지부동이 확산되고 있다. 괜히 일을 벌여 그 책임을 지느니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최선이라는 분위기다. 특히 이 부회장이 지분을 보유한 삼성물산, 삼성SDS, 삼성생명, 삼성전자 등은 혹시라도 대주주를 위한 일을 한다는 오해를 살까봐 전전긍긍이다.

외부세력들의 딴지를 우려해 소극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삼성이나 주주들에게는 물론 우리 국익에도 결코 이롭지 않다.

최근 영국 브랜드컨설팅 전문업체 퓨처브랜드가 발표한 '2021년 글로벌브랜드톱 100' 순위에서 삼성전자는 지난해 3위에서 올해는 13위로 10단계 추락했다.

2014년 조사 이후 10위권 밖으로 밀려난 것은 처음이다. 재판 등에 발목이 잡혀 제대로 된 경영시스템이 돌아가지 않아 미래성장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된 결과다. 이 부회장은 최근 미국 출장을 떠나지 못했다. 가석방의 여러 제한 때문이다. 그가 글로벌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지금이라도 족쇄를 풀어줘야 한다. 그게 국익이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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