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는 왜 '빅테크 때리기'로 태세전환 했나

머니투데이 박광범 기자 2021.09.1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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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혁신'을 강조하며 빅테크(대형 IT기업)를 '특별대우'하던 금융위원회의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당장 오는 25일부터 카카오페이와 네이버파이낸셜 등 빅테크는 자사 플랫폼에서 보험 뿐 아니라 펀드와 연금 등의 비교 견적 서비스 제공에 제한이 걸린다. 단순 정보제공이 아닌 판매 목적으로 금융상품을 '중개'하려면 금융위에 등록하거나 인·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금융위의 유권해석이 나오면서다.



추가 규제도 가능성도 시사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동일기능 동일규제' 원칙을 지켜가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퇴행적 규제 안돼"…빅테크에 '꽃길' 깔아준 금융위
금융위는 지난 몇 년 간 빅테크를 우대했다. 금융혁신을 촉진하고, 소비자 편익을 높이기 위해 빅테크 플랫폼의 금융 진출을 유도했다.



은행과 보험사 등 전통적인 금융사들은 동일기능·동일규제 원칙이 허물어지고, 빅테크만 수혜를 받는다며 불만을 토로했지만 금융위는 들은 척도 안 했다. 금융혁신의 발목을 잡는 '몽니'로 받아 들였다. 손병두 전 금융위 부위원장(현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지난해 9월 '디지털금융협의회'에서 "국내 금융회사 보호만을 위해 디지털 금융혁신의 발목을 잡는 퇴행적 규제 강화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고 했다.

지난 수년 간 금융위는 빅테크의 금융진출을 위해 특혜 수준의 각종 규제를 풀어줬다. 간편결제업체에 후불결제를 허용해 주는 내용이 담긴 전자금융거래법(전금법) 개정안이 한 예다. 한국은행 등의 반대로 국회에 가로 막히자 '금융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통해 이를 허용해줬다. 이를 통해 네이버페이는 BNPL(Buy now, pay later·지금 사고 나중에 돈 내세요) 서비스를 내놓았다. 금융사가 후불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300명 이상 임직원, 30개 이상 영업점 확보' 등 요건을 갖춰 신용카드업 인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네이버페이는 '혁신'이란 명분 아래 이 조건을 모두 면제받았다.

덩치 커진 빅테크…'위기'에 빠진 금융사들
그러던 금융위가 갑자기 태도를 바꾼 건 빅테크가 전체 금융산업을 집어삼킬 만큼 덩치가 커졌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금융위의 전방위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 토스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이 시장에 진입했다. 네이버페이와 카카오페이 등 간편결제 플랫폼도 빠른 성장세를 보이며 어엿한 금융회사로 자리 잡았다.


금융권의 위기감은 극에 달했다. 최근 상장한 카카오뱅크가 압도적 '금융대장주'에 등극한 데서 절정을 이룬다. 금융위가 빅테크에 특혜를 주는 대환대출 플랫폼 등을 추진하는 것에 강하게 반발한 배경이기도 하다. 빅테크에 종속되는 건 시간문제로 봤기 때문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최근 들어 빅테크 등 온라인 플랫폼의 시장점유율이 치고 올라오면서 기존 금융사들이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을 많이 표출하고 있다"며 "빅테크에 대한 규제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어 여러 조치를 검토한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 '말빨'도 안먹히는 '빅테크'
금융위의 스탠스 전환의 단초는 사실 지난해 7월부터 비롯됐다. 당시 네이버파이낸셜이 손보사들과 제휴를 맺고 자동차보험 비교견적 서비스를 추진하면서 보험사들에 판매액의 11%를 수수료로 요구한 것이다. 보험료 인하를 유도하려던 금융위의 혁신과 배치되는 것이었다. 빅테크 회사가 규제를 지나치게 우회해 금융업을 영위하면서 '소비자 보호가 필요하다'는 우려를 수차례 전달했음에도 변하지 않는 것도 금융위를 자극했다. 금융위의 '말빨'이 먹히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금융위는 지난 3월 금소법 시행 이후 금소법상 '중개' 해당 여부 판단기준에 대한 지침을 업계에 수차례 제공했고, 지난 6월엔 주요 온라인 금융 플랫폼과 간담회에서 기존 지침을 설명하며 자체적으로 법적 리스크를 검토해줄 것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이 과정에서 카카오페이는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P2P) 업체들과 제휴를 맺고 자사 앱 내 '투자' 메뉴에서 온라인 연계투자 서비스를 운영하다 금소법 위반 우려가 있단 금융당국의 해석을 받고 이 서비스를 중단했다.

또 DB손해보험과 협업해 출시한 암 보험 판매도 멈췄다. 이 상품은 카카오페이 자회사인 KP 보험서비스가 계약자인 단체보험으로 가입된 뒤 계약 다음날 계약자 개인보험으로 전환되는 구조였다. 금융당국은 개인보험보다 상품 위험성과 해지요건 등 고지 의무가 느슨한 단체보험으로 판매해 불완전판매 등 소비자 피해가 우려된다고 판단했다.

금융당국 한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카카오페이가 금융당국의 권고를 수용하긴 했지만 그 과정에선 법적으로 문제 없다며 반발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금융업을 단순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만 접근하는 경향이 있고 소비자보호 측면에서 우려스러웠다"고 말했다.

여당發 빅테크 규제 움직임도
아울러 최근 카카오모빌리티의 카카오택시 호출요금 인상 시도 이후 정치권의 플랫폼 기업 규제 목소리가 커진 것도 금융위의 태도 변화에 영향을 줬다.

앞서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6일 '공룡 카카오의 문어발 확장 : 플랫폼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근절 대책 토론회' 축사에서 "혁신 기업을 자부하는 카카오가 공정과 상생을 무시하고 이윤만을 추구했던 과거 대기업들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후 공정거래위원회는 온라인 플랫폼의 부작용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네이버·카카오 등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금융당국 역시 연일 빅테크에 대한 '동일기능 동일규제' 를 강조하고 있다. 금융위는 규제 강화 기조에 업계의 불만이 나오자 빅테크, 핀테크와 간담회를 갖고 "혁신을 추구하더라도 금융규제와 감독으로부터 예외를 적용받기 보다는 금융소비자보호와 건전한 시장질서 유지를 위해 함께 노력해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금소법) 위법소지가 있는 데도 자체적인 시정노력이 없을 경우 엄정하게 대응하겠다"고도 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10일 5대 금융지주 회장들과 간담회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금융소비자보호와 금융안정 차원에서 동일기능에 대해 동일규제를 적용하는 게 원칙이란 말을 한 것"이라며 "금융위가 지금까지 해오던 정책을 크게 수정하는 것은 아니고, 핀테크 육성을 위해 해오던 정책은 계속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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