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만원 '황제주' LG생활건강, 10만원어치 사려면

머니투데이 김영상 기자 2021.09.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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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금융위원회/사진제공=금융위원회


# 주식투자에 관심이 많은 30대 직장인 A씨는 최근 LG생활건강을 몇 차례에 걸쳐 나눠 매수하려다 고민에 빠졌다. 다른 종목과 달리 한 주 가격만 해도 100만원을 훌쩍 넘어 쉽사리 매수 버튼에 손이 가지 않았다.



아직 투자금액이 충분히 많지 않은 그가 매월 일정금액을 투자하거나 여유자금이 생겼을 때 투자하는 방식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A씨는 LG생활건강이 많이 포함된 ETF(상장지수펀드)를 매수하거나 비슷한 업종의 다른 종목으로 갈아타는 방법 등을 고려하고 있다.

이르면 내년 여름쯤이면 A씨의 고민도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원회는 내년 3분기 중 국내 주식을 대상으로도 소수단위 거래를 허용하겠다고 12일 밝혔다.



그동안 국내 주식은 최소 1주 단위로 거래가 이뤄졌다. LG생활건강을 사려면 적어도 138만7000원(이하 10일 종가 기준)이 필요했다. 하지만 소수단위 거래가 허용되면 자신이 원하는 만큼 주식을 쪼개 살 수 있게 됐다. 예를 들어 LG생활건강 0.1주를 13만8700원에 사는 식이다.

또 이제는 주가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금액에 맞춘 거래도 가능해진다. 자신이 LG생활건강 주식을 50만원어치만 매수하기를 원하면 LG생활건강 0.360490주(소수점 아래 일곱째 자리에서 반올림)를 사면 된다. 현재 해외주식에는 소수점 아래 여섯째 자리까지 거래를 지원하는 점을 고려하면 국내 주식 역시 비슷한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모든 주식에 대해 소수점 거래가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예탁결제원과 증권사가 소수단위 거래가 가능한 종목을 정해 따로 신탁계약을 체결한다.


기존 거래와 마찬가지로 투자자는 매매시점이 아닌 결제시점(+2일)에 수익증권을 취득한다. 수익증권이 거래소에서 매매되지 않고 예탁결제원과 증권사의 전자등록계좌부 내에서만 변경 또는 말소된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소수점 거래는 증권사의 주문 취합에 따라 이뤄지기 때문에 실시간 거래는 어렵다"며 "증권사에서 전산시스템 수용능력과 영업 전략 등에 따라 취합 주기를 설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한 주당 가격이 지나치게 높은 기업은 투자자 편의와 거래 활성화를 위해 액면 분할에 나서곤 했다. '황제주'로 불렸던 삼성전자가 2018년 50대 1 액면분할을 통해 5만원대로 낮춘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올해 카카오도 한 주를 다섯 주로 쪼개는 액면분할을 진행하면서 투자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현재 국내주식 중에서는 LG생활건강 (392,000원 ▲5,500 +1.42%)(138만8700원), 태광산업 (770,000원 ▲2,000 +0.26%)(115만4000원), 삼성바이오로직스 (832,000원 ▼1,000 -0.12%)(92만5000원)가 1~3위를 차지하고 있다. 소수점 거래가 사실상의 액면분할 효과를 가져오면서 개인 투자자들의 접근성이 대폭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현재 신한금융투자와 한국투자증권에서 해외주식 소수점거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 6월 기준 사용자는 약 65만명으로 누적 거래금액은 10억달러를 돌파했다.

이처럼 이미 해외 주식 소수점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도입을 통해 주식 거래가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점쳐진다. 국내에서도 삼성바이오로직스, LG화학, 삼성SDI 등 인기 종목이 70만원 이상 고액인 경우가 적지 않다. 이 때문에 포트폴리오 다양화 차원에서도 소수점 거래의 필요성이 여러 차례 제기됐다.

특히 큰돈이 없는 젊은 세대 투자자의 증시 유입이 늘어나는 효과도 기대된다. 서지용 상명대 교수는 "최근 증시가 조정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소수점 거래 도입을 통해 개인 투자자들이 주식에 더 관심을 가지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며 "LG생활건강 같은 황제주를 나눠 사게 되면 유동성 제고 측면에서도 도움이 될 것"고 말했다.

다만 "소수점 거래를 통해 거래량이 많아질 경우 과열 양상을 보이면서 거래비용이 커지는 우려가 있을 수 있다"며 "증권사 입장에서는 긍정적인 현상이지만 이 과정에서 투자자들이 불이익을 얻지 않도록 서버 확충 등에 신경을 써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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