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못 따라오는 노인 정책… "청년주택은 늘리는데 노인주택은 왜"

머니투데이 김주현 기자, 이사민 기자 2021.09.12 08:04
글자크기

[MT리포트-백발의고시촌]⑤전문가들 "지원 사각지대 줄이고 공공주택 노인 할당량 늘어야"

편집자주 44만513명. 지난해 늘어난 65세 인구 숫자다. 한해 사이 의정부시(인구 46만여 명) 한 곳을 채울만큼 노인 인구가 늘었다. 노령인구 증가폭은 계속 커져 2028년에는 한 해 52만8412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인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년 뒤인 2025년엔 20%를 돌파해 국민 다섯 중 한 명은 노인인 사회가 된다. 이들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한 때 청운의 꿈을 품은 젊은이들로 가득했던 고시원은 이제 늘어나는 노인을 수용하는 시설로 바뀌고 있다. 생산과 소비라는 자본주의의 미덕에 열위에 있는 저소득 노인은 1평 남짓 고시원에 사실상 격리돼 하루를 보낸다. 치솟아만 가는 아파트들 사이에서 그림자처럼 낡은 간판을 달고 들어서 있는 '실버 고시원'들이 한국사회의 미래를 경고한다.

/ 임종철 디자이너/ 임종철 디자이너


창문 하나 없는 고시원에 사는 노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일본 등 해외에서는 관련 법안을 만들고 노인 주거에 대한 예산 투입에 일찌감치 나섰다. 한국은 어떨까.

일정 소득 이하에 해당하는 이들에게 주거급여를 지급하고 있지만 치솟는 월세를 충당하기엔 역부족이다. 공공임대주택은 부족해 노인들에게까지 기회가 돌아오지 않는다. 주택바우처나 공동거주시설 등 노인들을 위한 거주 공간 제공 정책은 일부 지자체에서만 실시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고령층을 위한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와 주거급여 인상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또 노인 거주복지 정책에 더 많은 공공예산을 투입돼 노인들이 오랫동안 살던 동네를 떠나지 않고 원하는 지역에 거주할 수 있게 공공주택 형태와 접근 기회를 다양하게 늘려야 한다고 했다.

주거급여, 1인당 31만원이 최대… 치솟는 월세 감당 안 되는 지원금
주거 취약계층을 위한 국내 정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주거급여 등 거주비를 지원하거나 △공공임대주택 등 직접 살 곳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주거급여는 소득인정액 기준 중위소득의 45% 이하까지 선정해 지급하는데 내년부터는 관련 예산이 늘면서 중위소득 46% 이하까지 수급 대상이 확대된다.

그러나 1인 가구 기준 받을 수 있는 주거급여는 월 최대 금액은 31만원으로 고시원 입실료를 감당하기도 빠듯하다. 송인주 서울시복지재단 선임연구위원은 "주거 취약 지역에 사는 노인분들이 좀 더 나은 환경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주거급여 대상자와 주거급여 상한선이 높아져야 한다"며 "임대료 인상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다.

서울 등 일부 지자체에서는 주거급여 혜택에서 제외되더라도 '주택바우처' 형태로 월세 일부를 지원하지만 이 역시 임대료를 감당하기엔 부족하다. 서울형 주택바우처는 매달 월세 8만원을 지원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제일 어려운 분들은 주거급여를 지원받고 서울형 주택바우처는 주거급여 수령에서 제외되는 대상에게 주기 때문에 주거급여보다 금액이 적은 것"이라며 "추후 서울형 주택바우처 금액도 늘릴 계획"이라 말했다.


공공임대주택의 경우 보급률이 워낙 낮다보니 노인들에게까지 입주할 기회가 돌아오기 쉽지 않은 실정이다. 서울시에서는 노인 인구의 9% 정도가 임대주택이나 정부에서 공급하는 공공주택에서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공주택 공급률이 그 정도 수준밖에 그치지 않아서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이상적인 공공임대주택 거주율은 15% 정도다.

공급 자체가 충분치 못한 이유도 있지만 일부는 소득환산과정에서 부양의무자들의 재산이 함께 계산돼 입주 요건이 안되는 사각지대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다양한 형태의 임대주택을 마련해 상황에 맞는 거주를 선택하도록 섬세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독거노인공동거주시설을 운영하는 지자체도 있지만 일부에 불과하다. 경남 거창 독거노인공동거주시설에는 60여명의 어르신이 함께 생활한다. 이마저도 최근 2년동안 인구가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시설 개수가 18개에서 12개소로 줄었다.

"공공주택 할당량도 노인비율 수준 맞춰야"…예산 투입이 우선
지난 7월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어르신들이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뉴스1지난 7월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어르신들이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뉴스1
전문가들은 노인 주거 문제와 관련한 노인 전용 주택을 위한 공공 예산이 더 투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령층은 월 지출 대부분이 거주 비용으로 나가고 있어 주거 문제가 청년층보다 더 심각하다는 설명이다. 특히 노인전용 임대주택은 설계 비용 자체가 일반 주택보다 높아 공공예산 확보가 더 절실하다.

김범중 중앙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설계 차원에서 '배리어프리 디자인'이 들어간 '어르신 친화 아파트'를 지어야 한다"며 "일본에서 도입된 개념인데 비용이 40% 정도는 더 들어가지만 공공예산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일본보다 고령층 주거 문제에 대한 공공예산 투입은 20년은 뒤쳐져 있다"며 "공공임대주택도 대부분 청년 몫으로 가고 전체의 5~10%만 노인에게 할당되는데 고령화시대에 맞게 공공주택 할당량도 최소 노인 비율에 맞춰야 한다"고 했다.

소득 수준이 높은 고령층을 겨냥한 고급 양로원은 늘었지만 공공주택은 지역주민 반대나 예산 부족 등의 문제를 겪기도 한다. 노인 빈곤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예산투입에 대한 전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한편 국가적 차원이 아닌 지자체서 나서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순돌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인용 임대주택이 있긴 하지만 수 자체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일반적이라고 보긴 어렵다"며 "복지서비스는 결국 (국가가 아닌) 지역 차원으로 확대돼야 하고 우선적으로 지역별 공공주택을 많이 짓는 것이 급선무"라고 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