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회장과 수소사회[오동희의 思見]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1.09.08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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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8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쇼 ‘CES 2018’에서 참석한 정의선 당시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프레스 컨퍼런스를 마치고 기자들의 질의응답에 답하고 있다. /사진=라스베이거스 김남이 기자2018년 1월 8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쇼 ‘CES 2018’에서 참석한 정의선 당시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프레스 컨퍼런스를 마치고 기자들의 질의응답에 답하고 있다. /사진=라스베이거스 김남이 기자


이렇게 빨리 변할 줄은 몰랐다.

3년 전인 2018년 1월 8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가전전시회(CES)에서 정의선 현대기아차 당시 수석부회장(현 회장)을 만났을 때만 해도 먼 미래의 이야기로만 들렸다.

세계 최초 수소연료전지 SUV 넥쏘 발표가 끝난 직후 전세계 자동차 담당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전기차와 수소전기차의 경쟁에 대해 설명할 때만 해도 그의 전망은 조심스러웠다.



정 회장은 당시 자율주행 4레벨에서는 데이터사용량(200T~300TB)을 감안할 때 EV(전기차)의 배터리보다는 수소전기차가 더 많은 에너지를 감당할 수 있어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수소차의 수요가 급격하게 늘지는 않겠지만, 레벨4 자율주행이 상용화되는 2025년경에는 수소차가 필요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자율주행을 위해 EV와 수소전기차에 모두 투자하겠다며 전기차의 시장을 두고 경쟁하는 것보다 이 시장의 파이를 같이 키우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협력을 위한 공동전선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 때 수소전기차는 아직 먼 미래의 이야기였다.

당시 중국이 수백조원을 투자해 반도체를 육성하겠다는 소위 '반도체굴기'에 나선 직후였다.

한국의 반도체 산업이 중국의 '반도체굴기'에 밀려 날 경우 우리의 먹거리가 무엇이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실행미디어인 머니투데이의 숙제였다. 반도체의 뒤를 이어 미래 먹을거리로 수소전기차에 대한 관심이 시작된 것이 2017년말이다.


그 관심의 결과로 산업부장을 맡고 있던 기자는 2018년 초 갑작스러운 CES 출장을 떠나게 됐다. 현대차가 세계 최초 수소전기 SUV 넥쏘를 발표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에서의 신차발표회 후 현대차 전시부스 2층에서 가진 현대차 고위 임원과의 첫미팅은 이후 한국의 수소전기차 확산의 시발점이었다.

그 후 현대차 마북연구소를 단체로 방문해 현대차 경영진과의 토론에서 수소전기차의 미래 가능성을 봤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전세계 수소사회에 대한 현장 취재였고, 1년여의 취재와 보도 내용을 담은 것이 2019년 머니투데이에서 출판한 '미래에너지리포트-수소사회'라는 책이다. 그 후 국회수소경제포럼의 발족과 수소엑스포와 그린뉴딜 엑스포 등을 통해 수소사회의 앞날을 소개해 올 수 있었던 출발점이다.

이 책이 출판된 후 책 몇권을 정 회장에게 편지와 함께 보낸 일이 있다. 그 편지에는 앞으로 현대차 그룹의 로고인 'H'가 현대(Hyundai)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수소(Hydrogen)'의 'H'가 돼야 한다는 조언 아닌 조언을 써보내기도 했다.

앞으로 다가올 수소사회에서 모빌리티 기업인 현대기아차 그룹이 가져야 할 정체성을 담은 말이었다.

앞으로 수소와 수소산업은 단순한 모빌리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더 크게는 에너지 전체와 우리 사회전체의 화두다. 책 제목을 '수소사회'로 썼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제 수소연료전지 자동차는 물론, 연료전지발전과 스토리지(저장장치)이자 캐리어(에너지 이동수단)으로서의 수소, 그리고 더 나아가 인류의 영원한 에너지가 될 수 있는 수소핵융합까지의 긴 여정이 시작됐다.

전일 정 회장이 '누구나, 모든 것에, 어디에나(everyone, everything, everywhere)'의 글로벌 수소비전선포식인 '하이드로젠 웨이브' 발표를 한데 이어 8일 H2 비즈니스 서밋에서 최태원 SK 회장, 최정우 포스코 회장과 함께 수소기업협의체의 공동의장을 맡은 것은 그래서 의미가 크다.

3년전 미국에서 희미하게만 보였던 수소사회의 미래가 이제 하나둘씩 현실화되고 있다.

사실 우주에서의 수소 탄생은 긴 잉태의 시간을 거쳤다. 하나의 양성자 주변에 전자가 포획되기까지는 극고온과 고압이 안정되기까지 38만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빛의 진행을 막고 있었던 전자가 빅뱅 후 38만년만에 양성자에 붙으면서 비로소 수소원자가 탄생했고, 그 때부터 빛이 우주공간으로 퍼져 생명을 만들어냈다.

수소산업은 긴 잉태의 시간을 지나 이제 새로운 우주를 열어가는 길목에 서 있다. 정 회장을 비롯한 수소 관련 기업들의 건투를 빈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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