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 낙하산 감별법

머니투데이 오상헌 기자 2021.09.0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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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박근혜 정부 초대 금융 수장인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은 취임 전 "관치(官治)가 없으면 정치(政治)가 되고, 정치가 없으면 호가호위하는 사람들의 내치(內治)가 된다"고 말해 금융권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전임 이명박 정부에서 위세등등했던 이른바 '4대 천왕'(4대 금융지주 회장)을 비롯해 이런저런 정치적 연줄로 한 자리씩 차지한 금융권 인사들을 대놓고 저격한 것이다.

엘리트 금융 관료의 '관치 옹호론'이란 비판이 나왔지만 '관치금융'이 '정치금융'으로 변주해 온 현상을 압축적으로 짚었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낙하산 인사'의 대명사격인 '모피아'(옛 재무부+마피아)가 '관피아'(관료+마피아)를 넘어 '정피아'(정치인+마피아), '금피아'(금융감독원+마피아) 등으로 외연을 계속 확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정실·밀실·보은 인사를 상징하는 '낙하산'은 1961년 5·16 쿠데타로 들어선 군사 정부(제3 공화국) 시절 처음 생겨난 말이라고 한다. 권력을 잡은 군인들이 공공·민간의 각종 요직을 독식하자, 낙하산을 타고 내려와 점령군 행세를 하는 공수부대에 빗댄 것이 시작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낙하산 부대원이 지금은 '군·관·정·민'까지 확장된 셈인데 낙하산을 감별하는 기준 자체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전윤철 당시 감사원장은 감사원 직원들의 공공기관 감사 이직이 낙하산 논란으로 번지자 "업무를 모르는 사람이 가는 게 낙하산"이라는 말을 했다. '직무 능력'과 '전문성'을 갖췄다면 낙하산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초선 의원이던 2001년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진정한 개혁을 위해선 낙하산 부대가 불가피하다"는 결기에 찬 '낙하산 옹호론'을 펴기도 했다. "능력이 검증 안 된 외부 인사를 내려보는 것은 문제지만 '개혁 마인드'가 있다면 문제될 게 없다"고 했다. 개혁성과 쇄신 의지를 전문성에 앞서는 인사 기준으로 제시한 셈이다.



'고소영'(이명박 정부·고려대-소망교회-영남)', '서수남'(박근혜 정부·서울대-교수-영남), '캠코더(문재인 정부·대선 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란 웃픈 신조어를 만들어 낸 역대 대통령들도 초심은 비슷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취임 전 "전문성이 없는 인사들을 낙하산으로 보내는 건 잘못된 일"이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 "낙하산·보은 인사는 없을 것"이라며 "삼고초려해서 유능한 인재에게 일을 맡기겠다"고 했다. 역시 능력과 전문성과 혁신성 등이 인사 키워드였다.

이런 기준을 최근 금융권 낙하산 논란에 대입해 보면 답은 명확하다. 한국성장금융 투자운용2본부장으로 내정된 황현선 전 대통령민정수석실 행정관 얘기다. 정책형 뉴딜펀드 등의 운용·관리를 총괄하는 중요한 자리인데 금융 유관 경력이 2년 남짓에 불과하고 자산운용 경험이 전무해 문제가 커졌다. 청와대 일을 그만 둔 2019년 3월 구조조정 전문기업인 유암코 상임감사로 갈 때도 말이 많았다고 한다. 청와대는 논란이 커지자 "전직 청와대 직원이 개인적으로 취업한 사안"이라고 발을 뺐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당에서 오래 일을 해서 전혀 (금융) 흐름을 모르는 분은 아니다"라고 보듬었다. 청와대와 정부의 발빼기와 감싸기가 군색하고 민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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