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K-실명제'의 역습...1코인거래소-1은행 체제는 어떻게 탄생했나

머니투데이 김하늬 기자 2021.09.08 04:38
의견 남기기

글자크기

금융위원회금융위원회




"은행들이 가상통화 취급업소에 가상계좌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검토 없이 수익만을 쫓아 무분별하게 발급한 건 아닌지 내부 의사결정 과정을 철저히 점검해달라"(최종구 당시 금융위원장, 2018년 1월8일 서울정부청사)

"가상통화 거래 실명제를 시행한다. 은행의 '가상계좌 서비스'가 '실명확인 입출금계정 서비스'로 전환된다"(김용범 당시 금융위 부위원장, 2018년 1월23일 서울정부청사)

가상자산(암호화폐) 거래소의 운명은 금융당국의 결정 전, 은행의 손에 있다. 법 테두리 밖에서 태어난 암호화폐의 숙명이라고 하기엔 지난 4년간의 시간이 있었다.



금융당국은 암호화폐를 인정하기보다 거래소로 흘러들어가는 '돈'을 우회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은행을 옥죄는 방법을 택했다. '코인 바람'이 거세지던 2017년말 태스크포스(TF)를 만든 정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시중 은행에 거래자금 입출금 관리를 지시한 것. 비트코인을 통한 해외송금이 외국환관리법 위반 가능성에 주목한 것이다.

이듬해인 2018년 1월 23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가상통화 거래 실명제' 가이드라인을 제정·발표하고 1주일만에 곧바로 시행했다. 여기서 '1거래소=1은행'의 암묵적 룰이 탄생했다.

KB, 기업, 우리, 산업, 광주 등... 그 많던 은행은 어디갔나? 현재 농협·신한·K-뱅크 뿐
'K-실명제'의 역습...1코인거래소-1은행 체제는 어떻게 탄생했나
예상하지 못한 '암호화폐의 미래'가 도래하면 법과 제도는 빈틈을 내줄 수 밖에 없다. 당시 암호화폐 거래소에 관한 제도나 법령은 하나도 없었다. 모든 거래소들은 통신사업자로 등록하고 영업했다. 주로 온라인 쇼핑몰이 통신사업자로 취급을 받는다.

거래소들은 웹페이지를 열고 회원을 모집한 다음 시중 은행들과 서비스 제휴를 맺고 가상계좌를 열어 돈을 받았다. 당시 암호화폐 거래소에 서비스를 제공한 은행은 농협, KB, 기업, 신한, 광주, 우리, 산업, 하나 등이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결제하는 것과 비슷한 △가상계좌 △1회용 가상계좌 △ 토스결제 △상품권 충전 △에스크로 결제 △신용카드 포인트 비트코인 전환 등이 모두 가능했다.

정부는 가상계좌를 활용한 암호화폐 거래금액이 커지자 자금세탁 가능성을 우려했다. 금감원과 금융정보분석원(FIU)을 중심으로 6개 은행의 본인확인제도 현장점검에 나섰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당시 현장점검 후 '가상통화 관련 은행권 현장점검 배경설명과 투기위험성 경고 기자간담회'를 열고 "은행들이 수익을 쫒아 가상계좌를 무분별 발급했다"고 직접 경고를 날리며 '자금세탁 방지 가이드라인'을 제정했다.

이후 절반 이상의 은행들은 암호화폐 거래소와 서비스를 포기했다. 실명계좌 확인 시스템 구축 의지를 나타낸 은행은 신한, 농협, 기업, KB, 국민, 광주 등만 남았다.

이들 은행은 고객확인(EDD) 제도를 도입해 금융거래 목적과 자금 원천, 이용자의 생년월일, 주소, 연락처 등 신원을 확인하고 최대 5년까지 저장키로 했다.

여기서 거래소와 은행의 '1대1' 매칭이 이어진다. 금융당국 가이드라인은 거래소 이용자들로 하여금 해당 거래소와 실명계좌 계약을 맺은 은행의 계좌를 개설한 뒤 고객신원인증(KYC)을 통과해야 거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예를들어 빗썸을 사용하던 A씨는 과거엔 빗썸 아이디의 가상계좌로 돈을 입금해 자유롭게 매매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실명제 이후엔 빗썸이 농협과 실명계좌 계약을 맺었고 A씨는 농협계좌를 개설한 뒤 빗썸 홈페이지에서 '고객신원인증'을 마친 뒤 계좌에서 빗썸 거래소로 돈을 보내 매매해야 했다.

거래소 입장에선 이런 까다로운 절차와 시스템을 2개 은행과 할 여력이 없었다. 복수의 은행과 제휴할 필요성도 크게 느끼지 않았다. 당시 빗썸은 농협과 신한은행, KB 등과 서비스 제휴를 맺었는데 농협 한 곳으로 '정리' 했다.

2018년 4개 거래소만 실명계좌 '성공'…2021년 '특금법 신고제' 까지 이어질줄은?
'K-실명제'의 역습...1코인거래소-1은행 체제는 어떻게 탄생했나
2018년 1월 만들어진 '1거래소-1은행' 체제는 굳어졌다. 특정금융거래법상 가상자산 신고를 위해선 은행의 확인서가 필요한 만큼 거래소의 운명은 은행이 쥐고 있는 셈이다. 업비트(케이뱅크), 빗썸(농협은행), 코인원(농협은행), 코빗(신한은행) 등 빅4는 은행의 실명 계좌 계약을 맺고 있다. 업비트는 이미 신고 절차를 밟은 상태고 3개 거래소는 은행의 확인서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

빅4를 제외한 중소형 암호화폐 거래소들은 이른바 '벌집계좌'를 사용해 지금껏 운영해왔다. 법인 명의의 집금계좌를 만들고 거기에 고객들이 입금하는 방식이다. 그러면 거래소가 고객의 거래소 가상계좌에 예치금을 넣어준다. 암호화폐 거래소가 통신사업자기때문에 현재는 합법이다.

다만 개별 거래소 이용자의 암호화폐 투자 자산명세는 은행이 아닌 거래소가 자체적으로 만든 장부로 분류된다. 거래소 자금과 고객의 예치금이 한 데 뒤섞이는 문제가 존재한다. 금융당국이 '특정금융정보이용법 개정안'에 따라 9월24일 이후, 불법으로 단속하겠다는 이유다.

또 벌집계좌로 입금받은 고객 예치금을 법인 자산과 엄격히 분리하기 어려워 추후 갑작스런 폐업으로 반환하지 않아도 형사상 횡령이나 배임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법적 허점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사실상 고객 돈을 빼돌릴 수 있다는 얘기다.


FIU가 요구하는 은행의 실명확인서를 확보하지 못할 경우 중소거래소들은 '원화' 마켓을 일단 포기하고 암호화폐를 취급하는 사업자(VASP) 신고로 우회할 전망이다. 코인간 거래만 하는 마켓만 운영한다는 의미다.

한 중소 암호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은행들도 '리스크'라고 생각하는 측면이 있어 과감히 뛰어들지 않고 일단 먼저 신고수리된 거래소를 좀 보자는 의견을 전하기도 한다"며 "거래소를 폐업할 수 없으니 원화마켓을 잠정 닫는 플랜B로 대응하려 한다"고 말했다.
나의 의견 남기기 등록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