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프리즘] 메타버스가 제2의 비트코인 될 수 없는 이유

머니투데이 성연광 에디터 2021.09.03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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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게티이미지뱅크이미지 출처=게티이미지뱅크


# 요지경 세상이 따로 없다. 부동산 거래 플랫폼 '어스2'(Earth2) 말이다. '어스2'는 지구 전체 위성지도를 10×10m 크기(타일)로 구획한 가상토지를 분양하고 이를 이용자들끼리도 사고팔 수 있는 메타버스 서비스다. 꿈만 꾸던 서울 대치동 타워팰리스나 여의도 현대백화점 부지를 이곳에선 얼마든지 소유할 수 있다. 하지만 모니터 속 지도에 덜렁 깃발 하나 찍어주는 게 전부인데 과연 대리만족이 될까. 그것도 현금을 내고 사라고?.



꼰대의 눈으로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곳에 몰려드는 뭉칫돈을 보면 눈이 휘둥그레진다. 지난해 11월 서비스 개시 당시 0.1달러였던 타일당 평균가격은 수개월 새 몇백 배로 뛰었다. 전체 가상토지의 자산가치는 2000억원을 훌쩍 넘어섰다. 특히 한국인들의 부동산 투자본능(?)은 가상세계에서도 남달랐다. 한국인들이 매입한 가상자산 규모가 70억원을 초과했다고 한다. 이용자 수가 미국 다음으로 많다나. 가상자산 투자열기는 '어스2' 외에 '디센트럴랜드' '더샌드박스' 같은 다른 메타버스 게임플랫폼으로도 이어지는 분위기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엔 가상 부동산 투자 리딩방까지 판을 친다.

상식적으로 따지면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는 가상 부동산 투자에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이유는 뭘까. 가상세계에서 모든 경제활동이 이뤄지는 메타버스가 완성되기 전 공간이라도 미리 선점하면 엄청난 시세차익을 얻을 것이란 기대심리가 바탕에 깔렸다. 이들은 메타버스가 '제2의 비트코인'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10년 전 0.0025달러에서 올해 5만달러를 찍은 비트코인처럼. 일확천금을 노릴 수 있는 또하나의 기회로 본다.



판을 깔고 있는 작자들이 이런 대중심리를 놓칠 리 없다. 총 채굴량이 정해진 비트코인처럼 사고팔 수 있는 가상토지의 양을 제한해 '희소가치'를 부여하면서 투기심리를 부추긴다. 분양한 토지 위에 이용자들이 건물을 짓거나 새로운 도시를 개발하게 하고, 앞으로 VR(가상현실) 기술을 얹혀 진정한 유니버스로 진화할 것이란 그럴싸한 비전까지 제시한다.

현실세계와 융합한 3차원 가상세계, 메타버스가 미래 사회를 바꿀 메가트렌드로 주목받는 것은 사실이다. 미국 유명 래퍼 트래비스 스콧이 '포트나이트' 게임 속 가상 콘서트로 실제 공연의 10배에 달하는 수익을 냈다는 등 해외 여러 성공사례가 보태지면서 국내에서도 메타버스 열풍이 한창이다. 가상 아이돌이 현실 아이돌과 합동무대를 펼치고 대학 입학식과 축제도 가상공간에서 펼쳐진다. 기업·기관들도 채용설명회·프레젠테이션·기자간담회까지 가상공간에서 여는 등 메타버스 열기에 편승한다. 코로나19(COVID-19) 장기화로 대면 접촉과 모임이 극도로 통제받고 있는 현실 세계의 탈출 욕구가 메타버스 열풍을 더욱 자극한다.

문제는 맹목적 투기다. 얼마 전 메타버스 테마주로 묶여 주가가 폭등한 데 스스로 놀라 "우린 메타버스 기술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양심선언(?)한 사측이 오히려 소액주주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던 알체라 주가 소동은 우리 사회 '묻지마 투자'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새로운 유행처럼 번지는 메타버스판 가상자산 투자는 더하다. 가상 부동산에 이어 메타버스 코인·아이템으로 투기 대상이 넓어졌다. 혹자는 "머리로 이해하지 말고 그냥 사서 묻어두면 큰돈이 된다"고 유혹한다. 언젠가 이를 비싼 값에 사줄 더 큰 바보가 나타날 거라고. 코인시장이 그런 것처럼.


글쎄다. 단기 수익은 낼 수 있을 지 몰라도 메타버스가 제2의 비트코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가상세계의 속성상 얼마든지 가상세계를 복제·확장할 수 있으니까. 실제 '어스2'가 출시된 지 1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더 진화한 모델이라며 새로운 경쟁서비스가 등장하지 않았나. 메타버스를 투전판으로 보는 것은 위험하다.

실감 미디어 기술과 라이프로깅(lifelogging) 등 메타버스 요소기술은 성장 잠재력이 충분한 유망기술이다. 엔터테인먼트·게임·커뮤니티 서비스에 유독 강한 우리 산업 경쟁력을 십분 활용한다면 글로벌 시장을 얼마든지 호령할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바보'를 기다리는 투기가 아니라 이들 기술과 산업에 대한 애정 어린 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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