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이 사기로 바뀌는 순간[우보세]

머니투데이 안정준 기자 2021.09.01 0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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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 입니다.

제도권 검증을 거친 신약의 성공 확률은 0.01%다. 극단적으로 좁은 관문 탓에 도전에 실패할 경우 "알고도 투자를 끌어들여 사욕을 채우려 한 것 아니냐"는 비난에 종종 직면한다. 성공만 하면 천문학적 이익을 낼 수 있기에 바이오인들은 물론 투자자들의 시야가 욕망 앞에 흐려지기도 한다. 바이오 시장에서 '사기'와 '투기'를 두부자르듯 판별해내기 어려운 이유다.

하지만, 이 같은 바이오 시장에서도 전 세계적으로도 '명백한' 사기로 유명한 인물이 있다. 미국 진단업체 테라노스의 창업자 엘리자베스 홈즈다. 피 한방울로 무려 250개 질병을 잡아낼 수 있다는 진단키트를 개발했고 2015년 테라노스의 시장 가치는 90억 달러(약 10조5000억원)로 평가됐다. 포브스는 45억 달러 가치의 주식을 보유한 홈즈를 세계에서 제일 부유한 '자수성가형 여성'으로 꼽았다.



이처럼 그가 쌓아올린 숫자와 평판은 거짓 위에 서 있었다. 테라노스의 진단력은 사실 지멘스의 기기로 몰래 검사해주는 수준에 불과했다. 홈즈는 강력한 의도와 의지를 가지고 사기 행각을 벌였다. 자기 주식에 주당 100표 가치를 부여해 경영을 장악하고 거짓이 새나가는 것을 차단했다. 바이오 지식이 없는 70~80대의 '유명인'들을 이사회에 병풍처럼 세웠다. 공식 석상에서는 항상 검은 터틀넥을 입고 '스티브 잡스' 이미지를 차용했다. 목소리까지 변조해 가며 사람의 심리를 조종했던 그는 '소시오패스' 같다는 인상마저 준다.

또 있다. 미국 제약사 튜링의 마틴 슈크렐리 전 대표는 2015년 회사를 창업하자 마자 에이즈 환자에 처방되는 '다라프림'의 특허를 사들인 뒤 약값을 하루만에 13달러에서 750달러로 올려버려 폭리를 취했다. 다라프림을 대체할 약품은 없었고, 이 때문에 환자들은 생명유지를 위해 매년 10만달러(약 1억2000만원) 이상의 약값을 부담해야 했다. 그는 자신이 설립한 헤지펀드가 큰 손실을 보자 이를 만회하기 위해 주식을 빼돌리기까지 했다.



미국의 '국민 밉상' 자리 까지 등극한 이들의 행적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일견 바이오에 대한 '진심'이 내비쳐진 적도 있다. 슈크렐리는 희귀병을 앓던 여동생을 위해 제약공부를 시작했고 신경퇴행성 희귀질환 치료제 'PKAN'의 개발자로 이름을 올렸다. 홈즈는 진단 기술 도전에 나선 배경이 어린 시절부터 있던 '주사바늘 공포증'이라는 말이 전해진다. 물론 이마저도 이미지 구축을 위해 그들이 의도적으로 퍼뜨린 일화일 수 있지만, 실제로 생명을 구하는 많은 약들이 이 같은 배경에서 탄생한다.

최근 '사기적 부정거래'로 징역 5년의 1심 선고를 받은 문은상 전 신라젠 대표에게도 '진심'이 있었을 수 있다. 1990년대 모스크바 유학시절부터 바이러스 면역요법 관련 논문을 탐독하는 등 열정이 있었다고 한다. 평소 지근거리에 있던 인물들 사이에서도 바이러스 성분에 기반한 항암제 '펙사벡'에 대한 열정은 분명 있었다는 말들이 나온다. 홈즈와 슈크렐리, 그리고 문은상 전 대표에 진심이 있었다면 그것이 언제부터 '사기'로 변해갔을까. 법으로 그 시점을 진단해 규제하긴 사실상 어렵다. 다시,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바이오인들의 '윤리경영' 문제로 돌아온다.
진심이 사기로 바뀌는 순간[우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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