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에서 '사기'로…K-바이오 상징 문은상의 몰락

머니투데이 안정준 기자 2021.08.30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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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허경 기자 = 회사 지분을 부당하게 취득해 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는 문은상 신라젠 대표이사가 11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2020.5.11/뉴스1  (서울=뉴스1) 허경 기자 = 회사 지분을 부당하게 취득해 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는 문은상 신라젠 대표이사가 11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2020.5.11/뉴스1


"말기암 환자도 완치시킬 수 있는 세상이 열리길 소망했다. 돈 벌려고 사업을 시작한 게 아니다."



검찰이 문은상 전 신라젠 (5,150원 0.00%) 대표에게 징역 20년과 벌금 2000억원을 구형한 지난 6월 9일 결심공판. 그는 울먹이며 이 같이 말했다. 한때 'K-바이오 신화'의 대명사였던 그의 최후진술은 진심이었을까.

그런 그에게 30일 징역 5년, 벌금 350억원의 1심 선고가 내려졌다. 이날 재판부는 그가 한때 일군듯 보인 신화 대부분이 거짓의 모래성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진정한 성찰에 이르지 못했다"며 "사기적 부정거래 범죄를 엄벌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1965년 부산출생인 그는 원래 치과의사였다. 서울대 치대를 졸업한 뒤 러시아 모스크바 제1의과대학에서 두경부외과를 전공하고 수련의 과정을 마쳤다. 귀국 후 1996년 서울 강서구에서 '서울치과'를 개원했다.

개원의로서 안정적 생활이 예정된 그의 인생에 변화가 온 시점은 2006년이었다. 당시 부산대 의과대학 연구진이 항암 바이러스 면역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설립한 바이오벤처 신라젠의 '펙사벡' 논문을 접하고 이 면역 항암제의 가능성을 봤다고 한다. 2014년 아예 신라젠 경영권을 넘겨받아 대표가 됐다.

그는 모스크바 유학시절부터 바이러스를 활용한 면역요법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펙사벡은 천연두 예방 백신의 원료인 우두 바이러스에서 추출한 성분에 기반한 항암제. 그가 펙사벡에 열광한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보인다는 바이오업계 뒷얘기가 나온다. 펙사벡 논문을 읽고 신라젠 대표에 오르던 이 때까지, "말기암 환자도 완치시킬 세상을 소망했다"는 그의 말은 진심이었을지 모른다.


이후 과정은 '신화'에 가까워 보였다. 투자자들의 세 가지 약속이었던 △제네릭스 인수△펙사벡 글로벌 임상 3상 승인△신라젠 상장을 모두 현실화했다.

우선 제네릭스 인수. 원래 펙사벡은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미국 생명공학사 제네릭스가 개발중인 항암제였다. 2013년까지 임상2상을 진행한 곳은 신라젠이 아니라 제네릭스였다. 당시까지만 해도 신라젠은 임상시험 수탁기관 성격이 강했는데 제네릭스를 인수하며 펙사벡 개발의 중심에 뛰어들었다. 문 전 대표는 신라젠이 2014년 340억원을 투입해 제네릭스 지분 100%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약 700억원을 투자받는 괴력을 발휘했다고 전해진다.

제네릭스를 인수한 바로 다음해인 2015년 4월에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펙사벡 글로벌 임상3상 관련, 특정 시험계획 평가(SPA)를 승인받고 간암환자 대상으로 한 임상 3상에 들어갔다. 신약 개발과정에서 통상 임상 2상에 비해 열배 이상인 2000억원 가량의 천문학적 비용이 필요한 임상 3상이 시작되자 돈이 필요했고 그래서 택한 것이 코스닥 상장이었다.

2016년 12월6일 코스닥에 상장했다. 상장 첫 날 시초가 1만3500원을 형성한 뒤 2017년 주가가 장중 한때 15만원 이상으로 오르기도 했다. 신라젠 주가의 무서운 상승을 타고 국내에 바이오 열풍이 불었다. 이때까지 '문은상'은 K-바이오 신화의 대명사였다.

몰락은 2018년부터 시작됐다. 2018년 1월 신라젠 최대주주였던 문은상 전 대표의 대규모 지분 장내 매도 사실이 확인됐고 7월부터는 펙사벡 임상 실패 등의 소문이 퍼지면서 주가가 급락했다.

결국 2019년 8월 미국에서 펙사벡 임상 중단 권고가 나오며 임상 실패가 현실화됐고, 신라젠을 수사한 서울남부지검은 지난해 5월 문 전 대표를 구속기소했다. 자기자본 없이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해 자금 돌리기 방식으로 신주인수권부사채(BW) 대금을 신라젠에 납입하고, 1000만주 상당의 신라젠 신주인수권을 교부받아 행사해 1918억여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였다. 문 대표는 이날 이와 관련, 징역 5년 벌금 350억원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그의 '진심'이 '사기'로 변해가던 시점은 언제부터였을까. 문 전 대표와 황태호 신라젠 설립자 간 민사소송을 맡았던 서울남부지법 민사 11부 판결문을 참고해 보면, 문 전 대표 등 당시 경영진은 2014년 10월부터 펙사벡의 임상 3상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제네릭스를 인수를 추진하던 2014년에도 제네릭스의 펙사벡 후기 임상 2상은 고전을 면치 못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문 전 대표가 '상장 약속'을 지키고 바이오 열풍을 불고오기 시작한 2016년보다 2년 전 일이다.

지난 6월 9일 결심공판 최종진술에서 "말기암 환자도 완치시킬 수 있는 세상이 열리길 소망했다"던 그는 "제가 성공시키지 못한 면역항암제 펙사벡이 완성돼 말기암 환자도 완치될 세상이 오길 바란다"고 재차 강조했다고 한다. 그의 진심 여부와 무관하게, 이제 그의 신화는 결국 '사기'쪽에 가깝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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