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고소" 1년에 40만건…대리·알바로 생계 유지하며 고발 안멈추는 이유

머니투데이 김지현 기자, 김주현 기자, 오진영 기자, 김성진 기자, 박수현 기자 2021.08.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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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고소고발시대

편집자주 "너, 고소!" 과거 한 변호사가 자신을 홍보하기 위해 만든 이 문구는 고소·고발이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법적 절차가 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내년 선거를 앞두고 고소·고발은 정치판에서도 일상이 됐다. 시민단체들까지도 진보와 보수 성향으로 나뉘어 상대 진영의 대선 후보를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고발을 택하고 있다. 하지만 고소·고발이 난무하면서 수사종결권을 가진 경찰들에게 업무가 몰리고 이 때문에 국민들이 받을 법률서비스의 질을 담보할 수 없게된 점은 부작용으로 꼽힌다. 경찰 한 명이 1년에 맡는 수사만 88건에 달하는 지금, 개선해야 할 점은 없는지 살펴봤다.

'권력층 고발'만 90건…대리운전·알바 뛰며 '신고' 멈추지 않는 이유
①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법치주의바로세우기행동연대 대표 인터뷰

"프로고발러? 시민단체의 순기능을 이해 못하는 겁니다." (김한메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 대표)



"고발이 좋아서가 아니라 사명감으로 합니다." (이종배 법치주의바로세우기행동연대 대표 )

그동안 언론 등에서 소위 '직업 고발꾼'로 불려온 김한메(50)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사세행) 대표, 이종배(43) 법치주의바로세우기행동연대(법세련) 대표는 머니투데이 전화인터뷰에서 "'프로고발러' 라는 수식어에 동의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1년동안 평균 40~60개의 고발장을 냈다. 일주일에 한 번 꼴이다. 그러면서도 "시민단체의 역할이 권력층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권력층의 범죄 의혹이 있을 때 '고발'로 수사에 필요한 단서를 제공할 뿐 결과는 수사기관의 몫"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약 90건 고발…"정치 진영으로 구분 짓고 고발하는 것 아니다"

'윤석열 X파일 사건 고발인' 이종배 법치주의 바로 세우기 행동연대(법세련) 대표가 지난 4일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뉴스1'윤석열 X파일 사건 고발인' 이종배 법치주의 바로 세우기 행동연대(법세련) 대표가 지난 4일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뉴스1


2019년부터 법세련이 진행한 고발은 약 90건이다. 평균적으로 1년동안 약 45건, 한 달에 약 4건이다. 일주일에 한번씩 고발을 한 셈이다. 고발권을 남용하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비판에 이 대표는 "연간 수십만건 고발 가운데 시민단체가 차지하는 비율은 극히 일부"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의 고발로 피해를 보는 기득권층이 처벌이 두려워 (우리를 특정해) 고발권 남용이라고 비판하는 것"이라면서도 "남용으로 비춰지지 않도록 신중히 하겠다"고 했다.

지난해 7월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사세행은 지난 26일 기준 총 62건의 고발을 진행했다. 그 중에서도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고발한 것만 33건이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도 7차례 고발했고 주로 야권 대권주자들이 타깃이 됐다.

다만 이들은 정치적 진영을 구분짓고 고발하는 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실제로 사세행은 지난해 비리 사립 유치원에 대한 고발 조치를 방해한 의혹으로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한 전적이 있다.

일각에서는 사세행을 친야, 법세련을 친여 경향의 고발단체로 구분 짓기도 한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여당도 고발한다"며 "조만간 조국 전 장관 딸의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 입학과 관련해 부산대 조사를 지시한 유은혜 교육부총리를 고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대표 역시 "아무래도 정부나 여당이 집권세력이니 그들의 불법행위에 대해 더 관심 있게 지켜보는 것"이라며 "특별히 구분 짓는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후원 없이 대리기사 뛰며 생계 유지"…고발 멈추지 않는 이유는

김한메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시민행동) 대표가 지난달 5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스1김한메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시민행동) 대표가 지난달 5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스1
두 대표 모두 정치적 지원, 금전적 후원을 하는 배후 세력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지원이나 후원을 받으면 (직업적인 의미로) 프로고발러로 불릴 수 있겠지만 자진해서 후원하겠다는 분들도 거절하고 있다"고 말했다.

생계 수단은 따로 있다. 이 대표는 2019년 초부터 지금까지 대리운전 일을 하고 있다. 부족한 활동비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충당한다. 어머니가 극구 말리기도 했다.

김 대표는 "아이들이 셋이나 있는데 현재 프로그래머인 아내가 가장 역할을 하다보니 항상 미안한 마음이 있다"며 "다행히 최근에는 유튜브로 조금씩 수익이 난다"고 했다.

그럼에도 이들이 고발을 멈추지 않는 건 '권력에 대한 견제'가 필요해서라고 했다. 김 대표는 "대선 후보들도 스스로 국민들에게 검증받겠다고 하는데 의혹을 고발하는 게 검증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의혹이 생긴다면 윤석열 전 총장에 대한 고발을 이어가겠다는 계획도 덧붙였다. 그는 "윤 전 총장은 대선주자로 나섰기 때문에 의혹에 대해 수사 받을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도 "시민단체 역할이 바로 권력층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것"이라며 "나름대로 고발 원칙이 있는데 첫째는 공익성이고 둘째는 권력층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또 언론에 공개된 의혹을 가지고 고발을 할 뿐 근거없는 뜬소문을 고발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아울러 "고발이 좋아서 하는 것도 아니고 사명감을 갖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진 모르겠다"며 "생계 문제도 있지만 상식적으로 판단했을 때 문제가 되는 것은 고발할 것"이라고 했다.

"고소하러 왔습니다" 年 40만건…고소·고발 대한민국
②수사경찰 1명이 한 해에 맡는 사건 88건

/삽화=김현정디자이너/삽화=김현정디자이너
40만9407건.

지난 한 해 동안 경찰이 접수한 고소·고발건수다. 고소나 고발이 진행되는 것 외에 자체 첩보나 인지로 수사가 진행되는 경우도 있다보니 전체 수사과에서 처리하는 사건 수는 연평균 47만건 정도다. 전국 수사경찰관이 1년 동안 맡게 되는 사건이 약 88건인 셈이다.

올해부터는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6대 중요범죄'를 제외한 대부분 사건을 경찰이 수사하게 되면서 업무량 자체도 늘었다는 내부 불만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한정된 수사인력에 비해 남발되는 고소·고발 탓에 수사력이 분산되고 되레 수사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고 봤다.

◇해마다 40만건 고소·고발 접수…법정가는건 5건 중 1건 꼴

"너! 고소" 1년에 40만건…대리·알바로 생계 유지하며 고발 안멈추는 이유
27일 경찰청 자체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고소·고발 접수건수는 40만9407건으로 집계됐다. 올해 1월부터 6월까지는 고소 16만2572건, 고발 2만9056건이 접수됐다.

연도별로는 △2016년 39만6939건 △2017년 38만1387건 △2018년 40만7023건 △2019년 42만1211건 등의 고소·고발 사건이 경찰에 접수됐다. 검찰로 접수된 것까지 더하면 해마다 50만건에 가까운 고소·고발이 수사기관으로 들어온다.

반면 결과는 시원치않다. 지난해 접수된 고소사건 35만4664건 가운데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된 건 20.7%에 불과하다. 해마다 기소의견 송치 비율은 더 낮아지는 추세다. 2016년 기소송치 비율은 25.4%를 기록했는데 2019년엔 23.4%로 떨어지더니 이제는 20%대까지 위협받고 있다.

고소 사건 중에서 혐의가 있다고 판단돼 검찰이 기소하고 재판으로 이어지는 사건이 5건 중 1건 꼴이다. 지난해 전체 범죄 사건 기소율이 54.5%를 기록한 것과 비교해봐도 낮다.

고소·고발은 범죄 피해자가 수사기관에 범죄 사실을 신고하고 처벌을 요구하는 권리로 존중받아야 하지만, 불기소·불송치 비율이 높다면 경찰 수사력이 낭비될 수 있다는 우려도 동반된다.

경찰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일본과 비교해 전체 고소·고발건이 100배는 많다"며 "그 자제가 나쁘다거나 좋다는 평가는 할 수 없지만 고소·비교적 건수가 많은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소되는 20% 정도를 제외하고는 불기소·불송치로 종결되는 것이 현실"이라며 "지나치게 많은 불송치·불기소는 수사력을 집중하는데 방해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수사경찰 1명이 한 해에 맡는 사건 88건…"사건 종결 길어질 수밖에"

/사진=뉴스1/사진=뉴스1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4년간 평균적으로 전국 수사경찰 1인당 맡게 되는 사건 수는 약 88건이다. 주말을 포함하더라도 나흘에 1건씩 새로운 사건이 들어오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한정된 수사인력에 비해 고소고발 사건이 과도하게 많이 들어오면서 수사 종결 시간이 길어지고 과부하가 걸릴 수 있다고 우려헀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사법대학원장은 "고소사건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이 사기"라며 "사기는 일본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가 8배 정도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기는 민사 사건이 될 수도 있지만 채권자 개인이 범죄 행위를 조사하거나 입증하기가 어려워 국가기관을 통해 해결을 보려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사건은 늘어나고 수사 인력은 한정적이다보니 시간은 길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고소·고발 사건의 경우에도 무조건 입건해 수사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 유형에 따라 조정제도를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도 힘을 받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고소고발이 접수되면 상대방은 피의자 신분이되면서 불안한 지위가 되기때문에 남용 문제는 개선이 필요하다"며 "고소권도 보장돼야하지만 균형있게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장기적으로는 법률 개정을 통해 피고소인이 곧바로 피의자가 되는 제도를 개선하고, 고소 접수와 동시에 입건하지 않고 형사사건 조정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쌓이는 고소·고발에 경찰은 '번 아웃'…"수사관 꿈도 포기"
③한번에 사건 수십 건씩… 수사권 조정으로 바빠진 경찰

/삽화=이지혜 디자인 기자/삽화=이지혜 디자인 기자
# 수도권에 있는 한 지구대에 근무하는 경찰관 A씨는 지난 3월 일선 경찰서 수사과에서 면접제의를 받았다. A씨는 의경 시절부터 수사관이 되고 싶어 면접에 응했고 면접관은 "의미있는 일을 할 것"이라며 A씨를 뽑겠다고 했다. 하지만 고민 끝에 그는 지구대에 머물기로 결정했다. 주변 동료 경찰들은 A씨를 말리며 "주말과 휴일에 쉴 생각은 말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일선 경찰서 수사과에서 일하는 수사경찰들이 시름하고 있다. 1인당 담당 사건수는 수십건이 넘었고 주말과 휴일도 반납했다. 그들은 "사명감을 갖고 일한다"면서도 "살인적 업무 강도"라고 혀를 내둘렀다.

◇경찰 5000명 vs 사건 50만건…"살인적 업무"

"너! 고소" 1년에 40만건…대리·알바로 생계 유지하며 고발 안멈추는 이유
28일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6월 경찰이 접수한 수사사건은 21만2115건이다. 이를 수사관 수대로 나눠 1명이 맡은 평균 사건 수를 계산하면 38.7건이 나온다. 4~5일에 1건씩 새로운 사건을 접수받는 셈이다.

수도권 지역 수사과 경제범죄수사팀에 근무하는 B수사관은 "주말 출근은 기본이고 평일엔 아침 8시30분에 출근해 밤 9시에 퇴근하는 게 일상"이라고 말했다.

"너! 고소" 1년에 40만건…대리·알바로 생계 유지하며 고발 안멈추는 이유
B수사관은 "대체로 수사관 한명 당 사건 20~30개를 맡고 있어 야근은 필수"라고 했다. 같은 팀에서 일하는 C 수사관도 "사건이 끊임없이 들어오다 보니 한꺼번에 맡고 있는 사건이 20건"이라고 했다.

수사 부담이 늘어난 이유를 두고 일부 수사관은 검·경수사권 조정을 언급했다. A씨는 "아직 과도기다 보니 변동 사항도 있고 서류 작업 등 일 자체가 늘었다"며 "다들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다른 수사관도 "경찰을 향한 눈높이가 높아진 게 사실"이라며 "부응하려다보니 업무부담도 늘었고 지난해보다는 일이 많다"고 했다.

사이버범죄는 상황이 더 심하다. 사이버범죄 수사관 1명이 1년동안 맡는 평균 사건 수는 2017년 197.7건에서 지난해 248.5건으로 26% 가량 늘었다.

일선서 사이버범죄과 수사경찰관은 "한번에 사건을 20건씩 맡는건 살만한 수준"이라며 "사이버 쪽은 기본적으로 사건을 50~60건씩 맡고 심할 경우 100건을 담당하는 경찰관도 있다"고 했다. 이어 "올해는 특히 업무강도가 살인적이다"라며 "명예훼손이나 로맨스스캠(사기) 등도 늘었다"고 말했다.

◇수당 3만원 더 준다지만…경찰들은 "무의미"

지난 24일 경찰부대원들이 광화문 일대에서 이동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사진=뉴스1  지난 24일 경찰부대원들이 광화문 일대에서 이동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사진=뉴스1
상황이 이렇다보니 경찰 내부에선 수사부서를 기피하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다. 수사관 자리를 거절했다는 A씨는 "어릴 때는 수사관이 꿈이었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라며 "현실적으로 수사과로 옮겨갔다면 녹초가 됐을 것"이라고 했다.

경찰 지도부가 이런 분위기를 모르는 건 아니다. 경찰청은 현재 '범죄수사 수당'을 기존 4만원에서 7만원으로 증액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범죄수사 수당은 일선 수사관들에 한달에 한번 지급하는 수당이다.

그러나 현장 반응은 무덤덤하다. B수사관은 "일주일에 60시간씩 일하는데 봉급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며 "수당이 조금 오른다고 살만해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말했다. 또다른 수사관도 "수당 인상은 크게 의미가 없다"며 "그냥 일이 줄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소 당하면 바로 피의자"…선별 수사 한다면?
④고소·고발 남용에 '선별입건제' 고려…"우리법에 안맞다" 지적도

/사진=이지혜 디자인기자/사진=이지혜 디자인기자
누구나 '피의자'가 될 수 있는 시대다. 현행법상 수사기관에 고소·고발이 접수되는 순간 피고소·고발인은 '피의자' 신분으로 수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수사 결과 범죄혐의가 입증되지 않아 '불기소' 되더라도 피고소·고발인들은 피의자 신분에서 벗어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일각에서는 고소고발을 '전건(全件) 입건'하는 현행 제도를 범죄 혐의 유무나 경중에 따라 '선별(選別) 입건'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피고소·고발인이 겪는 절차적 고통이 극심하고 사건 처리를 하는 수사기관 부담이 과도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적절한 통제 장치를 갖춘 선별입건법제를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수사인력을 대폭 늘려야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사기관·정계·학계 입모아 "고소·고발 남용된다, 선별입건 제도 고려"

선별입건법제도 논의는 오래 전부터 이어져왔다. 박형동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고소·고발 남용은 무고한 피해자를 형사 피의자로 편입시킨다"며 "불기소 처분을 받더라도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형사피의자로 편입되는 건 인권 침해"라고 했다.

당시 김창룡 경찰청장도 "고소·고발 자체로 피의자가 되고 이 신분에서 벗어나기 위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문제가 있다"며 "제도개선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학계에서도 고소·고발 사건에서 선별입건법제를 고려하자는 의견이 나온다. 윤동호 국민대 법과대학 교수는 지난해 4월 발표한 논문에서 "전건입건법제는 '고소·고발부터 하고 보자'는 법문화와 고소·고발 남발, 민사사건의 형사화 경향을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최근에는 대검찰청이 수사 개시 필요성이 없는 고소·고발 사건을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해 '각하 대상 고소·고발 사건의 신속처리에 관한 지침'을 시행했다.

대검에 따르면 2016년 68만5301건이었던 고소·고발 사건은 지난해 74만3290건까지 늘어났다. 해마다 평균적으로 약 20% 정도가 각하 처분되고 그 비율도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별입건' 우리 법에 안맞다는 지적도…"통제장치 마련해 오남용 막아야"

/사진=게티이미지뱅크/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선별입건법제가 유일한 해답은 아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사건을 선별입건하고 있지만 기준이 모호하다며 중립성 시비에 휘말리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국민들의 인식을 바꾸는 동시에 선별입건법제에 대한 적절한 통제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모든 사건을 입건해 수사하지 않으면 피해자가 피해를 회복할 방법이 없다"며 "피해자들은 국가기관을 믿지 못하고 자력갱생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김혜경 계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형사 절차 진입권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며 "문제는 형사 절차를 악용하는 것에 대한 제재인데, 이는 사전차단이 아닌 무고죄나 행정제재 부과, 형사절차비용부담제 등 사후방식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선별입건 제도가 우리나라 형사법제에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있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위원은 "최소한 공수처처럼 사건을 분석해 의견서를 작성하고 처장이 최종 결정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꼬집었다.

이어 "선별입건으로 피의자 인권을 중시하다 피해자 인권이 무시당하는 정의의 공백이 생길 수 있다"며 "차라리 고소·고발에 의식 변화를 주거나 수사인력을 두 배로 늘리는 게 합리적 해결책"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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