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속으로] 'DLF 중징계' 금감원 '예고된 패소'

머니투데이 김남이 기자 2021.08.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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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 초미의 관심사였던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상품(DLF) 중징계' 불복 소송에서 금융감독원이 결국 패소했다. 금융회사 CEO(최고경영자) 제재 에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손 회장 측의 반론을 법원이 받아들였다. 금감원이 항소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으나 잇단 사모펀드(PEF) 사태와 관련한 유사 징계 소송과 제재 수위 결정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서울행정법원 제11부(강우찬, 위수현, 김송)는 27일 "금감원의 제재는 그대로 유지될 수 없어 위법하다고 판단한다"며 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을 상대로 '문책경고'(중징계)를 취소해달라고 소송을 낸 손 회장에게 승소 판결을 내렸다.



금감원, 손태승 회장 '문책' 중징계...법원 "금감원 잘못된 법리 적용"
서울 중구 소재 우리은행 본점 /사진=양성희서울 중구 소재 우리은행 본점 /사진=양성희
금감원은 DLF 불완전 판매를 이유로 지난해 1월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 위반 등의 책임을 물어 손 회장을 중징계(문책경고) 했다. 우리은행에서 부실을 알고도 부당하게 상품을 판매했는데 이 과정에서 내부통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금융사 CEO나 임직원이 중징계를 받으면 연임이 불가능하고 3년간 금융회사 임원 선임을 제한받는다. 손 회장은 지난해 3월 윤 전 원장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금감원의 징계조치에 대해 "우리은행과 손 회장이 내부통제를 소홀히 했는지 여부는 제재 사유도 아니고, 재판에서 문제된 쟁점도 아님을 분명히 한다"며 "금감원이 잘못된 법리를 적용해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의 해석, 적용을 그르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특히 "금감원이 법리를 오해해 법령상 허용된 범위를 벗어나 처분 사유를 구성한 탓에 (제재가) 인정되지 않게 됐다"며 "현행법상 내부통제기준 '마련의무' 위반이 아닌 내부통제기준 등 '준수의무' 위반을 이유로 금융회사나 임직원에 대해 제재 초치를 가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현행 지배구조법령상 금융회사나 임직원을 징계하려면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 위반 여부를 갖고 판단해야 하는데, 금감원이 법령상 허용된 범위를 벗어난 '준수 의무' 위반을 주된 처분 사유로 구성해 무리하게 징계했다는 것이다.

'손태승 승소' 금융권 예견된 결과...금감원 "금융위와 협의하겠다"
/사진=뉴스1/사진=뉴스1
금융권에선 "예견된 결과"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금감원이 징계 근거로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 기준이 없었다고 했지만 정작 그 기준이 뭔지는 설명한 적이 없다"고 했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금감원 내부에서도 징계 수준과 기준을 결정할 때 말이 많았던 것으로 안다"며 "그런데도 윤 전 원장의 중징계 방침이 확고했던 이유는 사모펀드 사태 피해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윤 전 원장) 스스로도 무리인 줄 알면서도 금융사들에게 강하게 문제제기를 한 것으로 본다"고 해석했다.

패소 결과를 받아 든 금감원은 금융위원회와 협의해 항소 여부 등을 결정하기로 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판결문이 입수되는 대로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 등 세부 내용을 분석한 뒤 금융위와 면밀히 협의해 향후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이 금융위와의 협의 계획을 강조한 것은 과거 손 회장 등에 대한 중징계 결정 과정에서 이른바 '금융위 패싱' 논란이 일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금융당국 내부에선 당시 금융사 CEO 징계를 주도한 윤 전 원장이 금융위를 '패싱'하고 금감원장 전결 조항을 찾기 위해 무리하게 '금융회사지배구조법'의 내부통제 미흡을 근거로 제재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왔다. 법원이 이날 판시한 것처럼 지배구조법을 적용할 경우 법적 근거 미비로 금융회사 CEO 중징계는 어렵다는 의견이 금융위 내엔 많았다고 한다.

함영주 하나금융 부회장, 판결에도 영향...확 바뀐 금감원 분위기
이번 판결이 금융권에 미칠 파장은 작지 않아 보인다. 손 회장과 동일한 이유로 금감원과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는 함영주 하나금융 부회장(전 하나은행장)은 행정소송(1심)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됐다. 김형진 전 신한금융투자 대표, 윤경은 전 KB증권 대표 등 증권사 CEO 징계 수위 확정에도 영향이 불가피하다.

금감원과 금융회사들의 관계 개선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 부위원장을 지내는 등 정통 금융관료 출신인 정은보 신임 금감원장은 취임사에서 금융업계와의 소통과 지원을 유독 강조했다. 지난 6일엔 "금융감독이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현장의 고충과 흐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며 "금융감독의 본분은 규제가 아닌 지원에 있다"고도 했다.

특히 정 원장은 "바람직한 금융감독은 사전적 감독을 통해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라며 "사후적인 제재에만 의존해서는 금융권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어렵고 결국은 소비자 보호에도 취약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금융감독 방향의 전환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신임 원장이 취임사에서 밝힌 바와 같이 사전적 감독을 통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 법과 원칙에 따른 사후적 제재를 균형감 있게 운영할 것"이라며 "판결에 제시된 기준을 확인한 다음 CEO의 감독책임에 대해 종합적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전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 후보자도 이날 열린 청문회에서 판결 결과에 대해 "판결문 내용을 자세히 보고, 앞으로 어떻게 해 나갈지, 제도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있을지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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