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직원→두번의 창업→수억연봉 컨설턴트, 도전은 계속된다

머니투데이 남민준 명예기자(변호사) 2021.08.22 07:00
글자크기

[남변이 귀를 쫑끗 세우고 왔습니다-8] '인생이 도전' 윤형석씨

구르는 돌에 이끼가 끼지 않는다? (A rollingstone gathers no moss?)쉬지 않고 움직여 정체되지 않는다는 긍정적인 의미로도, 쉬지 않고 움직이기 때문에 이끼 하나 조차 모으지 못 한다는 부정적인 의미로도 새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평생 직장이라는 표현으로 대표되는 이전의 연공서열제에서라면 위 문장은 후자의 의미에 가깝겠습니다만, IMF를 거치면서 성과가 강조되는 요즘이라면 위 문장은 전자의 의미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세상이 변해가면서 우리는 더욱 치열한 경쟁에 직면하게 됐고 치열한 경쟁은 종종 우리에게 도전을 요구합니다.그래서 오늘은 수억원대 고액연봉자의 길을 포기하고 여전히 도전을 꿈꾸고 있는 윤형석 박사의 얘기를 전할까 합니다.



그는 서울대 재료공학과를 졸업하고 재료공학과 대학원과 기계설계학과 대학원을 나와 대기업인 현대정공(현대모비스의 전신)을 들어갔지만 곧 그만 두고 창업을 했습니다. 다시 유학을 가서 박사 학위를 땄습니다. 이후 컨설팅 회사를 다니다 다시 창업을 했고, 또 다시 컨설팅 회사를 갔고, 지금은 창업을 꿈꾸고 있습니다. 인생이 도전의 연속인 것입니다.

윤형석 박사(오른쪽)와 남민준 명예기자(변호사)윤형석 박사(오른쪽)와 남민준 명예기자(변호사)


남변: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윤 박사: 지금은 구직 희망자다.(웃음) 뒤돌아보니 많은 도전을 했지만, 그 중에는 자발적이지 않은 것도 있었다. 뭘 좀 하려니 IMF가 오고 리먼 사태가 오더라 (웃음). 대학원 졸업 후 취직했던 현대정공에서 IMF를 거치면서 큰 구조 조정이 일어났고 ,박사 학위 취득 후엔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터졌다.

남변: 재료공학을 전공한 뒤 기계설계학과 대학원을 간 이유가 궁금하다.

윤 박사: (재료공학을) 공부해봐서 알겠지만 재료공학은 사실 학문에 더 가깝다. 좀 더 현장에 가까운 걸 공부해보고 싶어 무기재료공학과 대학원에서 기계설계학과의 대학원으로 옮겨 생산공학을 공부했다. 당시엔 몰랐는데 지금 와서 보니 현장에 더 가까운 곳에서 오히려 학문적인 것이 잘 보이고 더 학문적인 곳에서 현장이 더 잘 보이더라.


남변: 석사 과정을 마치고 취업, 창업을 거쳐 다시 박사 과정을 거쳤다.

윤 박사: 첫 번째 창업을 실패한 후 2003년 무렵 주변의 권유로 다녀왔다. 인공지능을 개발해 그걸로 비즈니스 데이터를 분석하는 일이었는데 함께 시작한 MIT 기계과 출신이나 MBA 출신 중에서 엔지니어링을 할 사람이 없어 결국 내가 개발자로서 코딩을 하게 됐다.

현재와 같은 형태의 AI는 아니고 데이터를 분석해 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고객관계관리)을 통해 자동차 회사나 은행 같은 곳에 고객을 추천해 주거나 중소기업의 신용도를 평가해주는 일을 했다. 창업한 회사의 아이템 자체는 문제가 없었지만 회사의 운영에 문제가 있었다. (데이터베이스를 붙이고 웹을 만드는 등의 부수작업을 한 사람들이 14명 있었지만) 그 3년 동안 매일 밤을 새워 가며 코딩 작업을 했다(그는 코딩을 전공한 사람이 아닙니다).

내 청춘을 바쳤는데 결과가 좋지 않으니 많이 아쉬웠는데 마침 주변의 권유가 있었다. 회사를 다니다가 박사 과정을 공부하러 가는 경우는 보통 교수를 생각하고 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때도 나는 나중에 내가 할 사업의 기반을 닦으러 간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막상 사업을 하려고 보니 내가 '비즈니스를 참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다른 박사 과정을 공부하기는 어렵고 해서 좀 더 공부하자는 생각으로 컨설팅 회사에 취업하게 됐다. 서른 살에 공부하러 가면서 나이가 많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웃음).

남변: 당시에 취업했던 두 회사는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였다.

윤 박사: 'ADL'이나 'Bain & Company'는 세계적인 회사이다. 그 회사의 한국 지사에 취업을 했다. 나중에 한국에서 창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그 전후로 말한 것처럼 2008년 무렵 리먼 사태가 터졌다. 마침 친구가 사업을 하자고 하길래 내가 IR자료(기업소개자료)를 만들어 투자를 받은 후 내가 CEO를 맡았었다. 일반 가정용 인터넷이 아니라 데이터 센터에 사용되는 100기가짜리 반도체를 설계하는 일이었다.

남변: 두 번째 창업 역시 결과가 좋지 않았다

윤 박사: 회사 일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사람의 문제였다. 그런데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사람의 문제가 없었더라도 당시 회사가 했던 일에는 한계가 있었고 결국 결과는 다르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남변: 두 번의 창업이 실패했다. 괜찮았는지 궁금하다. 어떻게 견뎠나.

윤 박사: 괜찮을 리가 있나. 내 젊음과 열정을 바친 회사였다. 술 먹고 견디면 폐인 밖에 더 될까 싶어 그냥 삭히려 했지만 한동안 그게 잘 되지 않았다, 이전 만큼은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다. 정말 열심히 했었다.

남변: 그 후 무엇이 남았나?

윤 박사: 당시에 마흔이 넘어서 사실 다시 취직이 안 될까 걱정했었지만 다행히 컨설팅 회사에서 연락이 왔었다. 그렇게 컨설팅 회사에 있다가 '유니드'라는 회사에서 5년 정도 신사업 개발 및 M&A 담당자로 일했다. 신사업으로 LED용 소재 개발 업무를 하였는데, 중국 저가 제품에 밀려 사업을 접었다. 생각과 다른 결과 때문에 아쉬운 마음도 있긴 했지만 경험에 투자한 거라고 생각한다. 진짜 이게 다 경험이다.

남변: 파트너로 승진한지 얼마 되지 않은 최근에 A.T. Kearny를 그만 둔 것으로 안다. 억대 연봉이 적지 않은 요즘 기준으로 보아도 상당한 고액 연봉자였는데.

윤 박사: 그 만큼 일한다. 업무강도가 굉장하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거의 밤을 새면서 일을 했다. 몸도 좀 안 좋고 해서 그만 뒀다, 팀원들과 함께 일했다. 팀원들에게 일일이 구체적으로 지시하지 않지만 프로젝트의 전체 윤곽만이 아니라 팀원들이 하는 업무 하나 하나를 모두 알고 있어야 하고 팀원들 보다 내가 더 많이 움직여야 한다. 시키기만 하고 뒤로 빠져 있으면서 팀원들과 융화될 수는 없다. 어떤 날에는 5시까지 일한 팀원들을 먼저 자게 하고 혼자 집으로 와 씻는 중에 의뢰인의 전화를 받은 후 곧바로 회사로 출근해 7시에 업무보고를 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프로젝트를 맡은 후의 업무강도는 보통 그 정도다. 그래서 구직 희망자가 됐다 (웃음).

남변: 사실 따지고 보면 대학원 졸업 후 취직했던 현대정공이나 유니드나 ADL, Bain & Company, A. T. Kearny 모두 굉장히 좋은 회사들이고 계속 있어도 되는 곳이었다. 계속 변화를 추구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윤 박사: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사실 내가 굉장히 회의적이다 (웃음). 내가 가진 것에 관해 회의적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집착이 덜 하다. 미련 남지 않을 만큼 정말 열심히 하기도 했고. 그래서 쉽게 변화를 좇을 수 있는 것 같다. 궁극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

남변: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은 없나

윤 박사: 실패한 창업만이 아니라 이직의 과정 역시 경험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한다. 회의적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고민을 좀 하는 편이다. 엄청나게 독창적인 고민은 아니지만. 고민해서 결정한 선택이고 망해도 경험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면 그런 두려움은 없다. 난 내 사업을 직접 하고 싶다. 결국 그걸 위한 투자라 생각한다.

남변: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 생각하기에는 그래도 훌쩍 놓아 버리기는 많이 아까운 상당한 고액연봉이다.

윤 박사: 정도의 차이다. 조금 더 받는 돈이긴 하지만 그게 내 꿈도 아니고 그 돈으로 내가 빌 게이츠나 머스크처럼 되는 것도 아니니. 그러면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맞다.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정말 열심히 했었고 앞으로도 정말 열심히 할 생각이다.

남변: '그거야 취직이 되니까, 먹고 살 수 있으니까'라고 반론을 제기할 사람도 있겠다.

윤 박사: 마찬가지로 정도의 차이다. 생존 자체가 문제되는 경우라면 그럴 수 있지만 도전을 꺼리고 안주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생존에 대한 위협 때문에 도전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그것 역시 그들의 선택이지만 내 선택은 내 꿈을 좇는 거다.좋은 이력으로 그냥 월급만 많이 받은 사람이 되는 건 내 꿈이 아니다. 함께 일하던 팀원들에게도 '앞으로 뭘 할지 생각해라, 지금 하는 컨설팅 업무가 힘든 건 알지만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에 문제점을 정의하고 치열하게 해결방안을 찾던 컨설팅 업무가 도움이 된다면 좀 더 참고 일하라'고 조언했었다.

남변: 아직도 꿈을 꾸는지 궁금하다.

윤 박사: 내 사업을 하고 싶다,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고. 적당히 가치가 올랐을 때 회사를 매각하고 이익 남기는 사업이 아니라 끝까지 할 진짜 내 사업을 하고 싶다. 지금까지의 과정은 모두 하려고 하는 사업에 필요한 경험을 위한 투자고. 이전에는 완비되면 사업을 하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렇게 해서는 절대 시작할 수 없고 오히려 약간 부족한 채로 시작해 그 부족함을 메우려는 과정에서 발전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업을 하려면 '이 일은 내가 꼭 해야 한다'라는 의지나 소명의식 같은 게 있어야 하는데 아직 그 부분에 관한 확신이 없어 시작하지 못 하고 있다. 일 시작해서 적당히 투자 받고서 한계에 부딪혔다고 중간에 먹튀할 수는 없지 않은가(웃음).
대기업 직원→두번의 창업→수억연봉 컨설턴트, 도전은 계속된다
<인터뷰 후기>

'요즘 청년들이 굳은 의지로 한 곳에 매진하지 못 한다'는 취지의 짧은 글을 최근에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읽자 마자 '왜 꼭 한 곳에만 매진해야 하지?', '이것 저것 해보고 뭘 좋아하는지를 알아야 굳은 의지가 생기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삶이 '안주하기 보다는 도전해야 한다'라는 짧은 명제로써 우악스레 규정지을 만큼 간단하거나 단선적이지 않다는 점을 알지만,

'정말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해보고 싶은 일이긴 한데 그게 정말 내가 생각한 그 일인지 맞는지 몰라 주저하고 있다면', '정말 해보고 싶은 일인데 실패할까 두렵다면',

여기 '실패를 포함한 그 모든 과정이 내가 가려고 하는 길에 필요한 경험에 대한 투자'라는 생각으로 끝없이 도전하는 사람이 있으니 도전하려는 나의 삶을 위해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그의 얘기에 귀 기울여 보시기를 권합니다.
대기업 직원→두번의 창업→수억연봉 컨설턴트, 도전은 계속된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