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좌 앉은 삼성, 되찾으려는 인텔...'푸른 피' 전쟁 시작됐다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1.08.21 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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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기자가 판다]삼성전자와 인텔의 반도체 1위 전쟁

삼성전자(왼쪽)와 인텔의 로고. 푸른 색이지만 그 농도는 다르다./사진제공=삼성전자, 인텔삼성전자(왼쪽)와 인텔의 로고. 푸른 색이지만 그 농도는 다르다./사진제공=삼성전자, 인텔


'1960년대 후반 '푸른 피'로 태어난 두 혁신 기업
같은 시기에 태어났지만 다른 길을 걸었던 반도체 강자 인텔과 삼성전자가 1위 자리를 놓고 경쟁의 출발선에 섰다.

1968년 7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에서 메모리반도체 벤처기업 인텔이 탄생한지 6개월 후인 1969년 1월 대한민국 수원에는 삼성전자라는 가전업체가 문을 열었다.



이 두 회사는 지난 50여년간 회사 로고의 색깔처럼 젊은 도전 정신과 혁신의 열기로 가득 찬 '푸른 피'를 몸 속에 담고 세계 IT 시장의 변화를 주도해왔다.

그 중 약 40년은 인텔이 IT 산업의 리더로서의 지위를 유지해왔다. 인텔의 선도적 기술력을 두고, 실리콘밸리내에선 인텔 내 비밀공간에 '외계인들의 연구소'가 따로 있어서 그들이 반도체를 설계하고 있을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인텔 왕국은 IT의 주도권이 PC에서 모바일과 플랫폼 사업자로 넘어가기 전까지였다.

인텔이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버리고 CPU(중앙처리장치)로 세계 IT 시장을 주도할 때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와 가전, 디스플레이 등으로 사업을 넓혀 경쟁보다는 협력관계를 맺었다. 삼성이 만드는 D램은 인텔로부터 자사의 CPU와 호환되고 적합하다는 인증을 받는 관계였다. 매출로 반도체 시장 1, 2위를 따졌지만 비메모리와 메모리라는 상이한 분야에서의 경쟁이어서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삼성에 반도체 왕좌 뺏긴 제왕 인텔
지난 1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올 2분기 반도체 부문의 매출에서 인텔(196억달러)이 삼성전자 (77,700원 ▼500 -0.64%) 반도체 부문(197억달러)에 밀렸다고 보도했다.


지난 2017년과 2018년 데이터센터 메모리 수요의 급격한 증가로 삼성전자가 매출에서 일부 시기 앞선 적은 있지만 그 이전이나 이후에 꾸준히 인텔은 넘볼 수 없는 세계 반도체 넘버1을 유지했었고, 둘 사이의 격차도 컸었다.

지난 2019년만 보더라도 인텔이 707억 8500만달러, 삼성전자 반도체가 525억1100만달러의 매출을 올려 삼성전자 반도체 매출이 인텔의 74.2% 수준에 그쳤다. 2020년도 마찬가지다. 인텔이 762억 4000만달러의 매출을 올렸고, 삼성전자 반도체가 569억 1200만달러의 매출을 기록해 인텔의 74.6% 수준이었다.

왕좌 앉은 삼성, 되찾으려는 인텔...'푸른 피' 전쟁 시작됐다
그러던 것이 메모리반도체의 수요증가로 인텔과 삼성전자의 위치가 지난 2분기에 뒤바뀌었다. 비메모리 중심의 인텔이 부진했다기보다는 메모리 중심의 삼성전자의 약전이 두드러진 영향이다.

이같은 추세는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 16일 세계반도체통계기구(WSTS)가 발표한 2021년과 2022년 반도체 시장 전망에서도 그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WSTS는 올해 2분기 삼성전자나 인텔 등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을 기반으로 재조정한 세계반도체 시장 전망에서 2021년에 25.1%의 놀라운 성장을 보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는 지난 3월 보고서의 10.9% 전망이나 6월에 전망한 19.7%로 한단계 더 상향 조정한 것이다.

WSTS는 "세계 반도체 시장은 2020년(4403억 8900만달러) 6.8% 성장에 이어 2021년 25.1% 늘어난 5508억 7600만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가장 큰 성장 기여자는 메모리로 37.1% 성장을 예상했고, 그 뒤를 이어 아날로그(29.1%), 로직(26.2%) 순이었다. 메모리는 삼성전자가 로직은 인텔의 전문분야다.

/사진제공=WSTS, 2021년 8월./사진제공=WSTS, 2021년 8월.
WSTS는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은 2022년에 더욱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2022년 세계 반도체 시장은 메모리 부문의 두 자릿수 성장에 힘입어 10.1% 성장한 6064억 8200만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내년엔 메모리 반도체가 18.4% 성장하는데 비해 로직분야는 8.7%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내년 메모리반도체의 성장세가 올해(371%)보다는 못미치지만 2020년의 10.4%보다는 더 큰 성장이 예상된다는 게 WSTS의 전망이다.

특히 올해부터 메모리의 시장 규모가 로직의 시장규모를 앞섰고 내년에도 그 격차는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삼성전자의 성장세가 인텔보다 더 가파를 것이라는 얘기다. 삼성전자의 연간 1위 등극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경쟁의 서막...위기의 인텔 파운드리로 승부수
인텔과 삼성전자의 경쟁이 처음은 아니다. 인텔이 플래시메모리의 일종인 노어플래시로 낸드플래시 진영을 위협할 때도 간혹 있었고, 마이크론과 손잡고 낸드플래시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진출한 적도 있었지만 경쟁은 국지전에 그쳤다.

왕좌 앉은 삼성, 되찾으려는 인텔...'푸른 피' 전쟁 시작됐다
그러던 두 회사가 본격적인 '푸른 피'의 전쟁을 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0년부터 파운드리 사업부를 신설하고 이 시장 진출을 꿈꾸다 좌절한 인텔이 올해 1월 새 CEO인 팻 겔싱어의 선임과 함께 재도전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과거 낸드플래시 시장에 도전하다 실패하고 지난해 10월 이를 SK하이닉스에 10조원에 매각한 후 전략을 파운드리 사업 강화로 수정한 것이다. 이 지점에서 삼성전자와 본격적인 경쟁관계에 진입하게 된 것이다.

팻 겔싱어는 앞선 3명의 인텔 CEO(폴 오텔리니,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로버트 스완)들과는 다른 경쟁력을 갖고 있다. 그는 인텔의 성장을 이끈 편집광으로 불린 창업멤버 앤디 그로브 CEO의 수제자로 불리며 그의 사사를 받았다. 대학 졸업 전인 1979년에 인텔에 입사해 30대에 최연소 인텔 부사장에 오른 인물이다.

또 각종 프로세서의 개발책임자였고, 인텔이 CTO(최고기술책임자)라는 직책을 2001년에 처음 만들었을 때 그를 그 자리에 앉혔다. 30년간 근무한 인텔을 떠난지 12년만인 올초 인텔의 명성과 인텔정신을 살리기 위해 인텔 이사회는 그를 구원투수로 투입했다.

겔싱어 CEO는 지난 1월 CEO로 선임된 이후 12년간 떠났던 친정 인텔에서 내부 단속을 마무리한 후 적극적인 인수합병(M&A) 의지를 드러내는 한편, 미국 행정부는 물론 유럽 각국 정부에 지원을 요청하는 본격적인 글로벌 투어에 나섰다.

자존심 버린 팻 겔싱어의 세계여행
팻 겔싱어 인텔 CEO가 창업자인 로버트 노이스의 이름을 딴 빌딩에서 걸어나오고 있다. 왼쪽 위 정면 사진/사진제공=인텔.팻 겔싱어 인텔 CEO가 창업자인 로버트 노이스의 이름을 딴 빌딩에서 걸어나오고 있다. 왼쪽 위 정면 사진/사진제공=인텔.
겔싱어 CEO는 미국 우선주의를 여전히 유지하는 바이든 행정부와 유럽동맹에 인텔을 지원해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반도체 제조의 아시아(한국과 일본, 대만, 중국 등) 편중이 서구 유럽에는 좋지 않다는 점을 최근 자동차용 반도체 품귀현상으로 고통을 겪은 미국과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등에 적극 어필하면서 유럽에 공장을 건설하는 조건으로 보조금 지급요구 하고 있다.

인텔 관계자는 "파운드리의 90%가 아시아에 몰려 있어 글로벌리 지역 밸런스가 없다"며 "생산기지가 유럽과 미국에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제조시설 비용의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유럽에 지으려면 아시아와 비교하면 30~40% 비싸다. 그래서 정부가 지원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행정부에는 미국 국적의 기업에게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 '국익'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삼성전자나 TSMC 등 외국 기업의 미국 내 반도체 공장 건설에는 보조금 지급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와 관련 안기현 한국반도체협회 전무는 "인텔 입장에서는 경쟁자인 삼성이나 TSMC는 보조금을 받지 않고, 인텔만 보조금 대상이 되기를 바라겠지만 미국 정부 입장에선 미국 내 공장을 짓는 기업에게는 모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 것이 이로울 것"이라고 했다.

겔싱어 CEO는 자체적인 파운드리 생산라인 건설과 함께 시장에서의 적극적 M&A 의지도 비치고 있다. 최근 논의가 수면 아래로 다시 가라앉긴 했지만 이 시장 4위 업체인 글로벌파운드리를 인텔이 인수할 가능성에 대한 얘기도 들린다. 약 34조원 규모의 M&A를 통해 인텔의 파운드리 경쟁력을 놓일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에서다.

이를 위해선 자금이 필요하고, 그 자금 조달을 순수 자기자본이 아닌 보조금 형태로 확보하기 위해 유럽 국가들을 돌며 '인텔 세일즈'에 나선 것이다.

현재 약 100조원의 현금성을 가진 삼성전자와 '쩐의 전쟁'을 펼치기 위해서는 자금이 절실한 상황이다. WSJ는 두 기업이 투자를 놓고 '쇼다운(showdown: 마지막 결전)'을 펼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삼성의 길은…
겔싱어 CEO가 전세계를 다니며 '인텔 세일즈'에 나섰듯이 삼성전자도 현재 보유한 현금 외에도 추가적인 자금을 확보해야 주도권을 쥐어야 하는 상황이다.

삼성전자의 현금 94조 3700억원(2021년 2분기 기준)은 많아 보이지만, 첨단 EUV(극자외선) 라인 3개(라인당 30조원 기준)를 구축할 수 있는 수준이다. 더 많은 라인을 구축해 헤게모니를 쥐기 위해서는 각국 정부의 보조금 등의 지원이 필요하다.

왕좌 앉은 삼성, 되찾으려는 인텔...'푸른 피' 전쟁 시작됐다
미국과 유럽은 아시아와 달리 그들만의 리그가 존재한다. 아시아 기업이 그 속을 파고 들기는 만만치 않다. 미국의 뿌리인 유럽과의 동맹의식은 아시아 동맹과는 또 다른 끈끈한 혈맹적 관계다. 인텔이 유럽에서 어필할 수 있는 이유다.

반도체 업계 고위 관계자는 "현재 TSMC나 삼성전자가 인텔보다 미세회로 공정에서 일부 앞서긴 했지만 세계 최초 IC와 D램, 낸드플래시 등 대부분의 반도체 생산의 기초를 연 인텔의 레거시(자산, 유산)를 무시할 수 없다"며 "장기 레이스인 반도체 산업에서 인텔이 시동을 걸었다는 것은 승부를 보겠다는 뜻"이라고 했다.

겔싱어의 유럽 투어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이 현재 삼성의 위치다. 삼성도 적극적인 공세에 나서야 하지만 현재 발이 묶인 상태다. 20대부터 미국에서 유학하며 30년간 인적 네트워크를 확대해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그들만의 리그인 미국 선밸리컨퍼런스 등에 다년간 참여해 인맥을 넓혔고, 이탈리아 자동차회사 피아트크라이슬러의 지주사인 엑소르 사외이사를 지내는 등 글로벌 네트워크가 탄탄하다.

이런 네트워크를 통해 겔싱어 CEO가 다니는 것처럼 이 부회장도 세계를 무대로 '삼성 세일즈'에 나서야 한다. 그게 한국 산업의 기둥인 반도체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다.

/사진제공=옴디아, 한국반도체협회/사진제공=옴디아, 한국반도체협회
삼성 내부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은 "파운드리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몇년전에 대대적 투자를 했어야 하는데 실기했다"며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지금이라도 파운드리 라인 증설에 공격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1978년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내 몸에는 푸른 피가 흐른다"고 말한 메이저리그(MLB) LA 다저스(유니폼 색깔이 푸른색임)의 전설적인 감독 토미 라소다처럼 인텔과 삼성에는 푸른 피가 흐른다.

하지만, 그 푸른 빛의 농도는 다르다. 그들이 헤쳐나가는 방법도 다르다. 삼성과 인텔이 글로벌 반도체 시장 1위 자리를 놓고 헤게모니 쟁탈전에서 어떤 색깔로 누가 더 강한 모습을 보일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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