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열린 공공의료데이터···'난임·비만' 보험이 보장한다

머니투데이 김세관 기자 2021.08.23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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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보험산업]<상>-①공공의료데이터

다시 열린 공공의료데이터···'난임·비만' 보험이 보장한다


# 고혈압이 있는 A씨는 만성 질환 이력 탓에 그간 보험 가입이 어려웠다. 그러나 공공의료데이터가 보험사에 제공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고혈압의 심·뇌혈관 질환 발생 위험도 분석 자료가 바탕이 된 보험 상품이 출시되면서다. A씨는 보험사가 제공한 헬스케어(건강관리) 앱(애플리케이션)으로 혈압 관리를 꾸준히 하면 보험료도 아낄 수 있는 상품을 골라 가입했다.

비식별화된 공공의료데이터를 보험에 활용할 경우 소비자가 누릴 수 있는 편익을 보여주는 사례다. 유병자나 고령자처럼 보험 취약계층의 수요를 반영한 전용 상품 개발이 가능해져 보험 사각지대가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4년만에 열린 공공의료데이터…호주·캐나다 데이터 '바이바이'
삼성생명, KB생명, 한화생명, 메리츠화재, 삼성화재, KB손해보험 등 6개 보험사는 지난달 8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으로부터 공공의료데이터 이용을 위한 최종 승인을 획득했다. 2017년 심평원 대상 국정감사에서 보험사 데이터 제공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지 4년여 만이다.

그간 국내 보험사들은 우리나라 국민들의 의료 데이터를 전혀 활용할 수 없었다. 신상품이나 헬스케어 서비스를 만들려면 외국 데이터를 받아 써야 했다. 인슐린 치료 발생률을 찾기 위해 호주 통계를 들추고, 말기 폐질환 발생률을 확인하려 캐나다 데이터를 뒤지는 식이었다.



일부 보험사들은 부족한 데이터 공백을 메우려 일본의 '익명가공 의료정보 작성사업자'들에게 데이터를 사오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데이터를 익명으로 가공할 수 있는 업체들에게 정부가 인증을 해주고 의료정보를 가공해 팔 수 있다.

상황이 바뀐 건 데이터3법(개인정보보호법·신용정보법·정보통신망법)이 국회를 통과해 지난해부터 시행되면서다. 비식별화된 데이터를 민간 기업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됐고, 보험사들에 공공의료데이터 이용의 문이 다시 열렸다.

보장범위 확대되고, 보험료는 내려가는 상품 개발 기대
보험사들은 심평원 공공의료데이터를 분석해 보험시장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고령자·유병력자 등을 위한 상품 개발을 중점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보장되지 않거나 보장이 돼도 보험료가 높았던 질환 등에 대한 정교한 위험분석이 가능해지면 보장범위가 확대되고 보험료는 내려갈 것으로 기대한다.


보험사들의 심평원 데이터 활용이 낯선 것도 아니다. 2013년부터 2017년 국감 지적 전까지는 의료 정보가 개방된 상태였다. 보험사들은 2014년부터 의료 수요 분석이나 보험상품 개발을 위해 비식별 처리한 '환자데이터셋'(모든 진료정보가 수록된 데이터)를 다루기 시작했다.

보험사들은 이후 당뇨 합병증 보장상품, 고령자 대상 치매장기요양 관련 상품, 욕창진단 상품, 마취·수혈보장 상품, 파노라마촬영 보장 치아보험 상품 등을 내놨다. 의료 데이터를 통한 새로운 보험 환경이 마련됐다는 기대가 컸지만 뜻하지 않게 지난 4년간 '올스톱' 됐다.

보험업계는 "국가적 차원의 빅데이터 활용 논의가 활발한 가운데, 보험사도 데이터 활용을 통해 헬스케어 등 신 융합 서비스 등을 개발하고 소비자 편익 제고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난임보험·소아비만보험도 나온다…해외선 에이즈 보험도 출시
다시 열린 공공의료데이터···'난임·비만' 보험이 보장한다
공공의료데이터 활용이 법으로 보장됨에 따라 그동안 막혀 있던 국내 의료데이터 활용 상품 개발에 다시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예컨대 인공수정, 체외수정 등의 난임 치료를 보장하는 보험이나 사춘기 장애, 동맥경화 등 소아비만 동반질환을 보장하는 신상품 등이 나올 수 있다.

무조건 실제 나이에 기반해 보험료를 산출하던 방식에 변화가 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65세지만 건강나이가 55세라면 후자를 기준으로 보험료를 산출하는 보험상품이 등장할 수 있다.

공공의료데이터가 활성화된 해외에서는 이미 희귀질환 보장 강화나 헬스케어 산업 성장 등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에이즈와 당뇨환자가 가입할 수 있는 사망·상해보장 상품을 판다. 일본 보험사 노리츠강기는 '일본의료데이터센터(JMDC)'가 보유한 160만건 이상의 건강진단결과와 의료비 청구서를 활용한 '건강나이연동형의료보험'을 지난 2016년 출시했다.

미국에선 민간 보험사 '카이저퍼머넌트'가 의료데이터 분석으로 치료시기가 지연된 환자들을 자동 감지해 예측하고 통보하는 헬스케어서비스를 상용화했다. 대만과 핀란드에서도 보험상품 개발을 위해 건강보험정보를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데이터 활용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인식한 미국 등 해외 주요국에서는 수년 전부터 의료, 금융 등 분야에서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공유·가공 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보험사의 의료 데이터 활용 자체를 부정하기보다는 신산업 육성, 소비자 편익 증진 등 측면에서 데이터의 적극적으로 개방하고 안전한 활용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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