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용(원유채취용) 파이프 기술을 바탕으로 세아제강지주가 풍력발전 시장에 진출하는건 한 상징적 장면이다. 전통의 중화학기업들이 기술력을 바탕으로 혁신하고 있다. 탄소중립 그린뉴딜 대전환 기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수소와 신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열리고 있는 글로벌 시장 선점을 위한 포문을 연 셈이다.
세아제강 영국 모노파일 공장(원 안)이 들어설 영국 동부 험버강 하구 해상풍력발전단지./사진=세아제강
숫자가 말해준다. 영국 통계청(ONS)에 따르면 영국 '생산산업'은 2019년 전년 대비 7.8% 줄었고 2020년엔 다시 8.6% 줄었다. 범위를 제조업으로 좁히면 2020년 하락폭이 9.9%다. 자동차가 포함된 교통부문 성장률은 무려 24.1%나 낮아졌을 정도다. 전통적 제조업 설비를 빠른 속도로 걷어 치우고 대신 금융과 IT(정보통신), 신재생에너지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모노파일은 해상풍력발전기 하부구조물이다. 바람개비 날개와 발전기를 떠받치는 구조물인데 육상과 달리 해상구조물은 수압과 파도, 부식 등 각종 변수에 견뎌야 한다. 해수면 아래 깊이를 감안하면 파일의 길이도 훨씬 길다. 높은 수준의 기술력이 필요하다.
영국이 역발상 격인 철강공장 국내 신설을 결정한 것은 이 때문이다. 두껍고 큰 대형 철판(후판) 3~4장을 오차없이 견고하게 용접하고, 이걸 다시 이어붙여 아파트 40층 높이인 100미터 길이 초대형 구조물을 만들어야 한다. 조선 선체기술에 비견되는 고난도 공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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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파일을 활용한 해상풍력단지/사진=머니투데이DB
그런만큼 이번 영국 투자는 세아제강지주로서도 회사의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부지선정을 마쳤고 내년 초 공장을 착공한다. 완공되면 단일 모노파일 공장으로는 세계 최대규모다. 2023년 하반기 상업생산을 시작해 연 150~200개 모노파일을 만든다. 영국 연간 모노파일 수요의 절반에 해당하는 생산능력이다.
해상풍력은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개화기에 접어들고 있다. 연평균 13% 성장이 예상된다. 2040년 1조달러(약 1200조원) 규모로 글로벌 시장이 팽창할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유럽에서는 올해 해상풍력 설치량이 전년 대비 92% 늘어난 6.9GW에 달할 전망이다. 중심에 영국이 있다. 정부 집중 지원에 힘입어 국내에만 매년 2G~4GW씩, 2030년 누적 40GW의 해상풍력을 설치한다는 계획을 세운 상태다.
영국 정부는 2030년부터 내수를 넘어 해외 해상풍력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그때까지 영국 내 기자재산업 육성이 핵심 과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부품 중 하나인 하부구조물을 한국의 세아제강지주에 맡겼다.
전통적 굴뚝산업 넘어라..변신하는 한국 기업들 탄소중립 달성은 기업에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새로운 기회도 열어준다. 세아제강지주가 파이프 생산기술을 앞세워 풍력발전 시장에 본격 진출하고 있는 것, 또 화학사들과 정유사들이 기존 인프라를 활용해 수소경제 확장에 나서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 정유사 고위 관계자는 "글로벌 시장 변화가 속도를 더하는 상황에서 기존 사업에만 매달려서는 지속가능성장을 이어가기 어렵다"며 "중공업 산업 사이클이 상승세를 타는 만큼 확보된 유동성을 어떻게 투자해 변신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