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산업의 역습, 영국은 왜 세아제강에만 국경을 열었나

머니투데이 우경희 기자 2021.08.18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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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산업의 역습' 이다. 신재생에너지 중심 산업 재편에 나선 영국이 한국의 세아제강지주 (212,000원 ▼4,500 -2.08%)를 파트너로 선택했다. 철강사를 대상으로는 이례적으로 국경을 열고 영국 내 생산기지를 맞아들였다. 차별화된 기술력이 새 무역장벽도 무력화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유정용(원유채취용) 파이프 기술을 바탕으로 세아제강지주가 풍력발전 시장에 진출하는건 한 상징적 장면이다. 전통의 중화학기업들이 기술력을 바탕으로 혁신하고 있다. 탄소중립 그린뉴딜 대전환 기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수소와 신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열리고 있는 글로벌 시장 선점을 위한 포문을 연 셈이다.



"제조업 줄인다"던 英, 세아그룹에 러브콜
세아제강 영국 모노파일 공장(원 안)이 들어설 영국 동부 험버강 하구 해상풍력발전단지./사진=세아제강세아제강 영국 모노파일 공장(원 안)이 들어설 영국 동부 험버강 하구 해상풍력발전단지./사진=세아제강


영국은 '브렉시트'(EU탈퇴) 이후 빠르게 산업구조를 재편하고 있다. 탄소배출 규제가 강화되고, 현지 인건비가 올라가는 상황을 반영해 사실상 '접는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제조업을 축소시키고 있다.

숫자가 말해준다. 영국 통계청(ONS)에 따르면 영국 '생산산업'은 2019년 전년 대비 7.8% 줄었고 2020년엔 다시 8.6% 줄었다. 범위를 제조업으로 좁히면 2020년 하락폭이 9.9%다. 자동차가 포함된 교통부문 성장률은 무려 24.1%나 낮아졌을 정도다. 전통적 제조업 설비를 빠른 속도로 걷어 치우고 대신 금융과 IT(정보통신), 신재생에너지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그런 영국이 세아제강지주에만은 다른 기준을 적용한다. 지난해 세아제강을 자회사로 둔 세아제강지주와 연산 24만톤 규모 현지 모노파일 공장 건설을 위해 손을 잡았다. 세아제강지주는 향후 3년간 4000억원을 영국에 투자한다. 한국기업 최초로 영국 국책과제 해상풍력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기업이 됐다.

모노파일은 해상풍력발전기 하부구조물이다. 바람개비 날개와 발전기를 떠받치는 구조물인데 육상과 달리 해상구조물은 수압과 파도, 부식 등 각종 변수에 견뎌야 한다. 해수면 아래 깊이를 감안하면 파일의 길이도 훨씬 길다. 높은 수준의 기술력이 필요하다.

영국이 역발상 격인 철강공장 국내 신설을 결정한 것은 이 때문이다. 두껍고 큰 대형 철판(후판) 3~4장을 오차없이 견고하게 용접하고, 이걸 다시 이어붙여 아파트 40층 높이인 100미터 길이 초대형 구조물을 만들어야 한다. 조선 선체기술에 비견되는 고난도 공법이다.


유럽 해상풍력 르네상스, 세아가 英 수요 절반 먹는다
모노파일을 활용한 해상풍력단지/사진=머니투데이DB모노파일을 활용한 해상풍력단지/사진=머니투데이DB
국내 철강사 중 모노파일 생산기술을 확보한건 세아제강이 처음이다. 해외서는 말그대로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다. SIF(네덜란드), EEW(독일)가 앞서가는 가운데 블라트(덴마크), 스틸윈드(독일) 등 쟁쟁한 기업들이 모노파일을 만든다. 이들을 제치고 세아제강이 영국 정부의 해상풍력 파트너로 선정됐다.

그런만큼 이번 영국 투자는 세아제강지주로서도 회사의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부지선정을 마쳤고 내년 초 공장을 착공한다. 완공되면 단일 모노파일 공장으로는 세계 최대규모다. 2023년 하반기 상업생산을 시작해 연 150~200개 모노파일을 만든다. 영국 연간 모노파일 수요의 절반에 해당하는 생산능력이다.

해상풍력은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개화기에 접어들고 있다. 연평균 13% 성장이 예상된다. 2040년 1조달러(약 1200조원) 규모로 글로벌 시장이 팽창할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유럽에서는 올해 해상풍력 설치량이 전년 대비 92% 늘어난 6.9GW에 달할 전망이다. 중심에 영국이 있다. 정부 집중 지원에 힘입어 국내에만 매년 2G~4GW씩, 2030년 누적 40GW의 해상풍력을 설치한다는 계획을 세운 상태다.

영국 정부는 2030년부터 내수를 넘어 해외 해상풍력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그때까지 영국 내 기자재산업 육성이 핵심 과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부품 중 하나인 하부구조물을 한국의 세아제강지주에 맡겼다.

전통적 굴뚝산업 넘어라..변신하는 한국 기업들
탄소중립 달성은 기업에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새로운 기회도 열어준다. 세아제강지주가 파이프 생산기술을 앞세워 풍력발전 시장에 본격 진출하고 있는 것, 또 화학사들과 정유사들이 기존 인프라를 활용해 수소경제 확장에 나서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 정유사 고위 관계자는 "글로벌 시장 변화가 속도를 더하는 상황에서 기존 사업에만 매달려서는 지속가능성장을 이어가기 어렵다"며 "중공업 산업 사이클이 상승세를 타는 만큼 확보된 유동성을 어떻게 투자해 변신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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