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불·모가디슈 여행가면 처벌?…김선일·샘물교회사건 뭐길래

머니투데이 유동주 기자 2021.08.18 08:19
글자크기
외교부 홈페이지 여행경보 단계 현황, 아프가니스탄, 소말리아 등 검은색 4단계 표시지역이 여행금지 지역이다. 이 지역에 허가없이 여행하면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외교부 홈페이지 여행경보 단계 현황, 아프가니스탄, 소말리아 등 검은색 4단계 표시지역이 여행금지 지역이다. 이 지역에 허가없이 여행하면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장악한 가운데, 아프간으로 배낭여행을 떠난 영국의 한 대학생 사연이 화제다.

영국 버밍엄 출신으로 러프러버대 물리학과 학생이라는 마일스 로틀리지(22)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온라인에서 '방문하기 가장 위험한 도시'를 검색해 '카불'을 여행 장소로 정했다"며 "최소 한 달 안에 아프간 정권이 무너지지는 않으리라 생각해서 여행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아프간에 체류하거나 현재 여행 중인 한국인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교부 허가를 받아 현지에서 자영업을 하던 교민도 철수했다.



코로나 여파로 현재 대부분의 나라에 대해 우리 외교부는 '특별여행주의보'를 발령했다. 특별여행주의보는 단기적으로 긴급한 위험이 있는 국가(지역)에 대하여 발령되는 것으로 행동요령은 여행경보 '2단계 이상 3단계 이하'에 준한다. 여행경보 2단계는 '여행자제' 단계로 여행예정자에겐 불필요한 여행 자제, 현지 체류자에겐 신변안전 특별유의가 행동요령이다. 3단계는 '철수권고'단계로 여행예정자에겐 여행 취소·연기, 체류자에겐 긴요한 용무가 아닌 한 철수가 행동요령이다.

아프가니스탄·소말리아 등 6개국 외교부 허가없이 여행금지…위반시 1년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
그런데 아예 여행이 금지되는 4단계 여행경보도 있다. 3단계까지는 사실상 '권고'에 해당하지만 4단계 '여행금지'를 위반하면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여권법 제26조는 "방문 및 체류가 금지된 국가나 지역으로 고시된 사정을 알면서도 허가를 받지 아니하고 해당 국가나 지역에서 여권 등을 사용하거나 해당 국가나 지역을 방문·체류한 사람은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다.



외교부장관은 여권법 제17조에 따라 천재지변ㆍ전쟁ㆍ내란ㆍ폭동ㆍ테러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국외 위난상황으로 국민의 생명ㆍ신체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국민이 특정 국가나 지역을 방문하거나 체류하는 것을 중지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기간을 정해 해당 국가나 지역에서의 여권의 사용을 제한하거나 방문ㆍ체류를 금지할 수 있다.

2021.8.18. 현재 외교부에 의해 여행이 금지돼 있는 국가 및 지역 현황2021.8.18. 현재 외교부에 의해 여행이 금지돼 있는 국가 및 지역 현황
여권제한·여행금지국가 시작된 계기…2004년 김선일·2007년 샘물교회 피랍 살해사건



우리나라에서 여권법이 강화돼 '여권의 사용제한' 조항이 추가되고 여행금지 국가가 실제로 설정된 배경엔 두 건의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다.

2004년 이라크에서 있었던 김선일씨 사건과 2007년 샘물교회 선교단 피랍사건이다. 이라크에서 가나무역이라는 회사 직원으로 일하던 김선일씨는 한국군 파병철회를 요구하던 무장단체 '알 타우히드와 지하드(유일신과 성전)'에 의해 참수당했다.

김선일씨 사건 영향으로 천재지변·전쟁·내란·폭동·테러 등 해외 위난상황에서 국민의 생명·신체·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특정 해외 국가 또는 지역을 방문하거나 체류하는 것을 중지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여권법에 '여권의 사용제한' 조항이 2007년 1월19일 신설됐다. 시행은 3개월 뒤인 4월20일 부터다.

그런데 '여권의 사용제한 '조항의 시행이 시작된 지 얼마안 된 2007년 7월19일 아프간에 자원봉사를 갔던 샘물교회 선교단원 23명이 탈레반 무장세력에 납치됐다. 자신들의 동료인 죄수 27명의 석방을 요구하던 탈레반은 요구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배형규 목사와 심성민씨를 살해했다. 나머지 21명은 피랍 42일만에 풀려났다.

2007년 샘물교회 사건 당시 '여행금지' 국가 지정된 아프간·소말리아·이라크 14년간 계속 여행 금지돼
외교부는 샘물교회 사건이 계속 진행 중이던 2007년 8월7일 여권법 개정이후 여권 사용제한을 적용해 여행을 금지하는 지역으로 아프간과 소말리아 그리고 이라크까지 세 국가를 동시에 첫 지정했다. 그 이후로 현재까지 약 14년간 아프간과 소말리아는 계속 '여행금지' 국가로 남았다.

18일 현재, 우리 외교부가 지정한 여행금지국가는 주로 중동지역과 서남아시아로 이라크, 시리아, 예멘, 리비아, 소말리아, 아프가니스탄 등 6개국과 필리핀 일부지역이다. 이들 6개국과 필리핀 일부 지역에 대해선 △정세 불안, △열악한 치안 상황, △테러 위험 등이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여행금지 지정기간을 상당기간 연장해왔다.

이들 '여행금지' 지역에 가려면 '예외적 여권 사용허가'가 필요하다. 영주, 취재, 보도, 긴급한 인도적 사유, 공무, 기업 활동 등의 경우에 한해 극히 예외적으로 외교부장관의 허가를 받아 여행금지국을 방문 및 체류할 수 있다.

앞서 2019년 5월 외교부가 '여행자제' 지역으로 설정한 서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서 납치됐다 프랑스 특수부대에 의해 구출됐던 40대 여성이 '철수권고' 지역인 말리도 갔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 지역은 '여행금지' 지역은 아니어서 처벌이 불가능했다.

실제 처벌 사례가 없지는 않다. 배진석 변호사(다솔 법률사무소)는 "이라크에서 사업을 하던 중 정부의 체류허가가 끝난 뒤에도 2년 이상 무단 체류하던 사업가가 50만원의 벌금형에 처해졌다"고 설명했다.

여권법 제17조 등 여권 사용제한 조항에 대해선 이동의 자유를 주장하며 위헌심판 소송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이 제도의 목적과 수단이 적절하다며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샘물교회 사건 사망자 유족, 국가 상대 3.5억원 손배청구하기도…관여 탈레반 대원 6명은 검찰에 의해 기소중지 상태
샘물교회 사건에서 사망했던 자원봉사자 심씨의 유족들은 "출국금지 등을 하지 않아 사망한 피해에 대해 배상하라"며 국가를 상대로 3억5000만원대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여권사용을 미리 제한해 아프간 출국을 막았어야 했는데 정부가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단 주장이었다. 하지만 법원은 국가가 배상할 의무가 없다고 판단했다.

당시 재판부는 "국가가 아프간을 여행제한국으로 지정해 긴급한 용무가 아니면 여행을 취소·연기할 것을 계속해서 권고했고 외교통상부 홈페이지에 이를 게재했으며, 납치위험성과 위험상황 발생 경고 등을 언론에도 공표했다"면서 "여행객들에게 일일이 알리지 않았더라도 국가가 취할 수 있는 유효적절한 수단을 취했다고 본다"고 판시했다.

한편 샘물교회 사건 당시 검찰은 탈레반 무장세력 6명에 대해 기소중지 처분을 내렸다. 2007년 10월 수원지검 공안부는 샘물교회 피랍살해사건에 관여한 것으로 지목된 카리 유수프 아마디 탈레반 대변인과 오마이리, 샤키르, 아브잘, 차기르 등 5명과 이름을 알수 없는 1명 등 모두 6명의 탈레반 관계자들을 살인 및 특수감금 혐의로 기소중지 처분했다. 기소중지는 사건에 대해 범죄의 객관적 혐의가 충분하더라도 피의자나 참고인의 소재불명 등 사유로 수사를 종결할 수 없는 경우 그 사유가 없어질 때까지 검사가 일시적으로 수사중지를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2007년 9월 2일 귀국 후 기자회견 갖는  분당 샘물교회 피랍자들./사진=뉴시스2007년 9월 2일 귀국 후 기자회견 갖는 분당 샘물교회 피랍자들./사진=뉴시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