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 투자유치는 파트너를 얻는 것

머니투데이 이태훈 서울산업진흥원(SBA) 창업본부장 2021.08.30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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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O칼럼]이태훈 서울산업진흥원(SBA) 창업본부장

[투데이 窓] 투자유치는 파트너를 얻는 것


필자가 서울시의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을 만든 2009년 당시 가장 어려웠던 건 좋은 인재들이 창업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니 그때는 "창업했다 망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대학생들 사이에서 오갈 정도였다. 좋은 인재는 대부분 소위 '사'자 붙은 판사, 검사, 변호사, 의사, 회계사 등의 전문직에 진출하기 위해 도서관에서 머리 박고 공부했고 이를 당연지사로 받아들였다.

10년이 지난 지금, 시대는 완전히 변하고 변했다. 요즘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너 아직 창업 한 번 안 해봤어?" "내 돈으로 창업하는 사람이 어딨니"라는 말이 오간다고 하니 말이다.



이는 창업 인프라 환경이 크게 바뀌면서 생긴 변화라고 할 수 있다. 2009년 서울시의 '청년창업1000프로젝트'인 청년창업센터 운영을 시작으로 중앙정부의 청년창업사관학교, 각 지자체가 운영하는 지역별 특성화창업센터 등으로 확산하며 이제는 창업센터가 없는 곳을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로 창업환경이 좋아졌다.

초기투자는 성공하기 어렵다며 외면했던 투자자들도 모태펀드의 지원과 더불어 초기 투자영역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초기 스타트업 투자시장에 대거 몰리는 등 투자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이제 좋은 스타트업에 투자하려면 오히려 투자자들이 줄을 서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10여년 만에 창업생태계는 스타트업 중심으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듯하다.



실제 세상은 변했다. 청년들은 정부지원 사업을 통해 우수한 아이템을 기획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실제 사업화하는 기회를 갖게 됐을 뿐 아니라 대거 확대된 초기 스타트업 투자자들을 통해 투자받고 성장할 수 있게 됐다. 한마디로 투자자가 아닌 스타트업이 중심인 세상이다.
이제 스타트업은 어떤 투자자와 손을 잡을지 고민해야 할 시기다. 그러려면 먼저 투자자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듯하다.

투자자는 초기 스타트업들이 생각하듯 나의 창업 성공을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아니다. 좋은 스타트업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 큰 수익을 내고 싶어하는 '상인'에 더 가깝다. 이렇게 표현했다고 투자자들이 기분 나빠할 수 있지만 사실이 그렇다. 그렇다고 상인을 비하한 것은 아니니 오해는 없었으면 한다.

스타트업은 어떤 투자자를 만나야 할까. 좋은 물건을 사서 이문을 조금만 붙이고 옆 동네에 팔아 빨리 이익을 실현하려는 상인이 있는가 하면, 남들이 거들떠보지 않던 원석을 정성껏 갈고 닦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다이아몬드로 만들어 파는 상인이 있을 것이다. 어떤 상인에게 팔지는 스타트업의 몫이다.


다만 초기 스타트업일수록 투자유치는 단순히 투자를 받는 게 아니라 파트너를 만나는 일이라는 측면으로 다시 생각해봤으면 한다. 빠르게 자금을 지급하거나 많은 금액을 제시하는 투자자보다 비즈니스를 더 단단하게 해줄 컨설팅이 가능한 투자자를 만나는 게 성장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투자자의 네트워크를 통해 또다른 비즈니스로 확대하거나 시장영역을 넓힐 수 있는지 등을 따져보는 것도 중요하다.

투자란 단순한 사업자금 지원이 아닌 상호의 이익을 위해 행해지는 비즈니스로 봐야 한다. 나아가 좋은 파트너, 좋은 스승을 만들어내는 최고의 과정이기도 하다. 좋은 파트너를 통해 비즈니스 모델을 업그레이드하고, 또다른 좋은 파트너를 만나며, 사업의 네트워크를 넓혀가는 기회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이제 누군가 투자를 해주려고 한다면 당장 자금에 쪼들려 힘이 든다 할지라도 무조건 "땡스!"를 외치며 덥석 투자받을 것이 아니라 투자자를 위한 투자인지, 나의 사업에 영원한 파트너를 만들 수 있는 투자인지를 먼저 생각하기 바란다. 당신에게 곧 찾아올 진정한 파트너를 위해서, 그리고 오늘이 아닌 미래 비즈니스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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