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게임의 역습…위기의 韓게임 '동남아 뚫어라'

머니투데이 이동우 기자, 윤지혜 기자 2021.08.1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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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K-게임 뒤흔드는 차이나리스크 (下)

편집자주 국내 게임업계가 중국발 리스크에 몸살을 앓고 있다. 2016년 사드배치와 한한령 이후 중국 시장에 발을 들이지 못하는데다, 중국 정부 규제로 최대 서비스 업체인 텐센트마저 국산 게임 출시를 주저하고 있다. 중국에 목메는 국내 게임업계의 현주소와 함께 중국 리스크 대응책, 탈중국 방안 등 과제를 짚어본다.

게임업계 脫중국 러시…동남아·북미로 '韓 게임지도' 넓힌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사진=게티이미지뱅크


올해 하반기 게임업계의 화두로 '탈(脫) 중국'이 다시 떠오른다.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얼마나 줄이느냐가 게임사의 안정적인 성장을 위한 필수조건이 되서다. 국내 게임사들도 신시장 개척에 여념이 없는 상태다.



14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새롭게 떠오르는 시장은 동남아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20 대한민국 게임백서'에서 국내 게임사들은 중국 이외의 시장 진출 대상으로 동남아를 최우선으로 꼽았다.

동남아의 2019년 모바일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17% 성장한 30억달러(한화 약 3조5685억원)를 기록했다. 연평균 게임 시장의 성장률이 베트남 7%, 태국은 16%에 이를 정도로 잠재력이 크다. 동남아 빅6(태국·싱가포르·베트남·인도네시아·필리핀·말레이시아)의 인터넷·이동통신 보급률이 급증하면서 모바일 게임의 기반이 갖춰지고 있다는 평가다.



국내 게임사는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동남아 게이머들은 국내와 비슷하게 MMORPG(다중접속역할 수행게임) 장르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엔씨소프트는 지난해 베트남 법인 비주얼 스튜디오를 설립했고, 웹젠도 태국과 필리핀 등 동남아 6개국에 모바일 게임 뮤아크엔젤 출시를 마쳤다. 그라비티가 최근 출시한 '라그나로크X: 넥스트 제네레이션'도 태국·인도네시아·필리핀 지역 애플 최고 매출 1위를 기록하는 등 흥행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인도 모바일 게임 시장의 잠재력도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KPMG에 따르면 인도의 모바일 게임 시장은 지난해 8억8500만달러(약 1조66억원) 규모로 2015년에 비해 2배 이상 성장했다. 크래프톤이 지난달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인도'를 현지에 출시한 지 1주일 만에 3400만명의 이용자를 확보하기도 했다.


중국 의존도가 특히 높은 개발사로 알려진 크래프톤은 시장 다변화 의지를 강하게 밝힌 상태다. 배동근 크래프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달 26일 상장간담회에서 "인도, 중동, 북아프리카까지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투자를 적극적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북미·유럽 공략을 위해서는 '콘솔'(엑스박스·플레이스테이션 등 게임 전용 기기) 경쟁력 강화가 첫 손으로 꼽힌다. 국내 콘솔 게임 규모는 2019년 기준 전체 시장의 4.5%에 불과하다. 이에 게임사들은 해외 사무실을 설립하고, 개발인력 보강 등 현지 콘솔 게이머를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 중이다.

펄어비스는 최근 미국 지사 사무실을 확장하고, 캐나다와 네덜란드에 각각 스튜디오를 설립했다. 크래프톤 산하의 스트라이킹 디스턴스 스튜디오(SDS)도 올 초 게임 개발사 'SDS 인터랙티브 캐나다'를 설립했다. 엔씨소프트도 지난 2월 미국 특허상표청(USPTO)에 '프로젝트TL' 상표권을 출원하고 북미·유럽 시장 공략에 나섰다.

중국 아닌 글로벌 게임 시장 전체를 목표로 삼는 게임사들의 행보는 빨라지고 있다. 국내 최대 게임사 중 하나인 넷마블은 오는 25일에는 마블스튜디오의 IP(지식재산권)을 활용한 모바일 RPG인 '마블 퓨처 레볼루션'을 전 세계 240개국에 동시 출시한다.

이는 중국과 베트남, 북한 등 ISO(국제표준화기구) 기준 249개국 가운데 극히 일부만 제외한 수치다. 여기에 더해 최근 세계 3위의 소셜카지노 업체 '스핀엑스'를 2조5000억원에 인수하며 수익 모델을 다양하게 가져가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빗장을 걸어잠그며 경쟁력을 키웠고 예전처럼 한국 게임이 쉽게 우위를 가져가기도 어렵다"며 "시장 다변화를 필수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韓정부 무관심속 中시장 닫혔다…신규 게임 절실

펄어비스의 모바일 MMORPG '검은사막 모바일'은 지난 6월 중국 외자판호를 받고 중국 진출을 준비 중이다. /사진=펄어비스 펄어비스의 모바일 MMORPG '검은사막 모바일'은 지난 6월 중국 외자판호를 받고 중국 진출을 준비 중이다. /사진=펄어비스
지난 4년간 이어진 '차이나리스크'에도 중국에 대한 기대는 여전하다. 모바일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가 강세인 국내 게임사에 게임 인구 6억6000만명의 세계 1위 모바일게임 시장은 포기할 수 없는 선택지여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중국에서 한번 터지면 '원히트원더'로도 먹고살 만큼의 매출이 나온다"며 "각종 불확실성에도 중국 시장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에 게임업계는 정부가 중국 판호(중국 내 게임서비스 허가권) 문제에 직접 나서야 한다고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판호 자체가 지난 2016년 한중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논란으로 탄생한 부산물인 만큼, 정부가 불공정 무역 해결에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는 판호 발급기준이나 과정조차 알기 어려워 텐센트와 같은 중국 퍼블리셔(유통사)에 의존하고 있다. 사실상 중국 정부가 시혜를 베풀길 기다리는 '천수답'과 다름없다.

지난 4년간 중국 진출이 가로막히면서 국내 게임업계가 잃어버린 기회비용만 10조~17조에 달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 초 외교부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교체된 후 그나마 이어지던 양국 간 판호 논의도 중단돼 업계 우려는 더 커지고 있다. 차기 정부에선 부처별로 흩어진 게임산업 지원기능을 통합해 판호 문제 등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위정현 중앙대 교수(한국게임학회장)는 "국내외 이슈와 외교문제가 복합적으로 맞물린 판호를 해결하기 위해선 외교부·문체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여러 분야에 걸쳐있는 게임산업 지원기능을 정부 차원에서 조율하는 게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그래픽=김다나 디자인 기자/그래픽=김다나 디자인 기자
중국산 게임의 공습…차원 다른 '차이나리스크' 온다

다만 전문가들은 중국 판호만 바라봐선 안 된다고 조언한다. 이번 '게임=아편' 논란에서도 알 수 있듯 중국은 자국 게임산업도 옥죄는 추세여서다. 실제 중국이 자국기업에 내주는 판호(내자판호) 발급 건수는 1만개 내외에서 2019년 1570건, 2020년 1316건으로 대폭 줄었다. 텐센트도 매년 100개 이상 받던 판호가 2년 전부터 30개 수준으로 감소한 상태다.

이에 해외시장 문을 두드리는 중국 게임사가 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과 중국게임이 본격 경쟁하게 된 것이다. 문제는 과거 '짝퉁게임' 취급받던 중국게임은 막대한 자본력과 새로운 시도를 앞세워 약진하는 점이다. 일각에선 한국 게임의 수준을 뛰어넘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또 다른 차원의 '차이나 리스크'가 대두한 것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글로벌 게임산업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게임의 해외매출은 154억5000만 달러(약 17조원)로 전년 대비 33% 증가했다. 2019년 한국 게임시장 규모가 16조에 못 미친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수치다. 미국·일본·한국·영국·독일 주요 5개국 모바일게임 시장에선 매출 100위 중 중국게임이 평균 25개 이상을 차지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국내 게임산업이 인정해야 할 것은 한때 중국 게임사가 한국을 베끼기에 급급했으나 경쟁력을 향상하기 위한 나름의 노력을 지속해왔다는 점"이라며 "지금 국내 게임산업에 가장 필요한 것은 새롭고 다양한 시도를 위해 용기 내는 일"이라고 분석했다. 다양한 게임을 개발해야 여러 수요가 공존하는 세계시장에서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판단이다.

위 교수 역시 "한국 게임업계가 세계 여러 시장으로 판로를 확대하고 있으나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결국엔 좋은 게임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유럽 등에선 통하지 않는 확률형 아이템 사업모델(BM)에 매몰되지 말고, 공격적으로 신규 IP(지식재산권)를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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