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텐센트 때리기에 피멍드는 韓게임'…판호 받아도 출시 못한다

머니투데이 이진욱 기자, 윤지혜 기자 2021.08.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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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K-게임 뒤흔드는 차이나리스크 (上)

편집자주 국내 게임업계가 중국발 리스크에 몸살을 앓고 있다. 2016년 사드배치와 한한령 이후 중국 시장에 발을 들이지 못하는데다, 중국 정부 규제로 최대 서비스 업체인 텐센트마저 국산 게임 출시를 주저하고 있다. 중국에 목메는 국내 게임업계의 현주소와 함께 중국 리스크 대응책, 탈중국 방안 등 과제를 짚어본다.

中 '던파 모바일' 규제에…넥슨, 연매출 5조 꿈 날렸다
/AFPBBNews=뉴스1/AFPBBNews=뉴스1


넥슨이 야심차게 개발해온 '던전앤파이터(던파) 모바일' 출시가 1년째 감감 무소식이다. 중국쪽 파트너인 텐센트가 당국의 눈치를 보느라 출시 일정을 무기한 연기해서다. 일각에선 던파 모바일 출시가 아예 무산될 수 있다는 관측마저도 흘러 나온다. 던파 모바일 사례는 국내 게임 업계가 직면한 '차이나 리스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당국 규제에 몸 사리는 텐센트…넥슨 초격차 목표 차질



앞서 넥슨은 지난해 8월 12일 던파 모바일의 중국 출시 당일, 돌연 출시를 연기한다고 밝혀 충격을 줬다. 텐센트는 당시 미성년자 게임 이용 시간을 조절하거나, 결제 한도를 정하는 과정에서 시스템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업계는 이같은 설명에 의구심을 품었다. 시스템 보완이 1년씩이나 걸릴 일은 아니어서다. 업계 한 관계자는 "그 정도 시스템 개선 작업은 두어달이면 충분하다"며 "텐센트가 다른 이유 때문에 독단적으로 결정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관련 업계에서는 텐센트가 중국 정부의 눈치를 보는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실제 중국 정부는 자국 내 최대 게임업체인 텐센트를 본보기로 삼아 업계 전반에 각성 효과를 노려왔다. 2017년 선보인 '왕자영요'는 청소년 과몰입을 방지하는 '이용시간 제한 조치'를 받았고, 2018년 일본게임 '몬스터헌터 월드'도 규제 정책 미준수를 이유로 판매가 중단됐다. 이에 텐센트가 최근 중국 정부가 미성년자 게임중독 방지 강화를 시사하자 스스로 출시 지연을 택했다는 것이다.

던파 모바일 출시에 사활을 걸었던 넥슨은 당혹스런 상황이다. 원작인 PC 게임 던전앤파이터는 이미 중국에서 연매출 1조원씩 거두는 메가 히트작이다. 이를 고객저변이 더 넓은 모바일 게임으로 재개발한 데다 사전예약자만 6000만명에 달할 정도여서 PC게임의 2~3배 매출이 가능한 흥행보증수표로 여겨졌다. 지난해 연매출 3조원을 달성한 넥슨은 매출을 5조원 이상으로 불려 경쟁 게임사와 초격차를 이루려했다. 그런데 이같은 목표가 송두리째 흔들린 것이다.

中, 텐센트 때리기에 피멍드는 韓게임'…판호 받아도 출시 못한다

◆ 판호 발급 받아도 출시 불투명...텐센트 규제 강화 움직임

중국 정부는 판호(중국 내 게임 서비스 허가) 발급 제한으로 자국 기업은 물론 한국 기업까지 옥죄고 있다. 2018년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따른 '한한령'의 여파다. 올해 컴투스 '서머너즈워:천공의 아레나'와 펄어비스 '검은사막 모바일'이 겨우 판호를 발급받았지만, 여전히 회의적인 분위기다. 4년전 판호를 받은 던파 모바일 출시 조차 가로막혀 판호 발급도 무의미해져서다.

국내 게임사들의 입지는 더욱 불안해질 전망이다. 중국 관영 매체가 온라인 게임을 '정신적 아편'으로 규정하고, 검찰이 모바일메신저 위챗에 대해 청소년 권익침해를 이유로 공익 소송을 제기키로 하는 등 추가 규제를 예고해서다. 국내 주요 게임사들은 텐센트와 직간접적으로 연계돼 있고,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 진출이 막히면 글로벌 게임사로 성장하기 어려워진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국 정부의 압박이 갈수록 커지는 분위기"라며 "텐센트를 길들이면 한국 게임사들에게도 타격을 줄 수 있으니 그 점을 노리는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中 당국 '텐센트' 때리기에 韓 게임은 '몸살'...IT기업에도 악재

/사진=AFP/사진=AFP
'중국이 기침하면 한국은 몸살을 앓는다.' 중국 의존도가 높은 국내 게임산업의 취약성을 지적한 말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지난 2019년 한국 게임 주요수출국 중 중국이 41%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2018년보다 약 10%p(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중국 게임규제에 국내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더욱이 중국 정부가 정조준한 텐센트와는 '혈맹' 관계인 기업들이 많아 우려를 키운다.

텐센트의 대표게임 '왕자영요'(王者榮耀) /사진=머니투데이 DB텐센트의 대표게임 '왕자영요'(王者榮耀) /사진=머니투데이 DB
中 연일 '빅테크 때리기'…알리바바·디디추싱 이어 텐센트 '정조준'

최근 중국은 자국 빅테크에 대한 규제 강도를 높이고 있다.

지난달 중국 공업정보화부는 데이터 안보 위협과 이용자 권익 침해를 이유로 인터넷 산업을 집중 단속하겠다고 밝혔다. 최근엔 알리바바·텐센트·화웨이·샤오미 등 빅테크 25곳을 소집해 "단속 전 스스로 잘못을 바로잡으라"고 요구했다. 자국 기업의 해외상장을 가로막기도 했다. 앞서 알리바바 자회사 앤트그룹과 디디추싱이 미국 상장을 앞두고 중국 당국과 마찰을 빚은 바 있다.

중국 관영언론이 게임을 '아편'에 비유하며 텐센트 게임 '왕자영요'를 대표사례로 꼽은 것도 이런 정책 기조 일환이라는 분석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빅테크에 대한 중국 당국의 단속이 이어지는 가운데, 해당 기사는 다음 타깃이 게임 아니냐는 관측을 확산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텐센트는 즉각 왕자영요 등 모든 게임에 12세 미만 이용자의 유료결제를 금지하는 등 자율규제안을 내놨으나, 중국 당국의 화살을 돌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처럼 중국이 기업규제를 쏟아내자 중국기업에 등을 돌리는 글로벌 투자자도 늘어나는 추세다. 이미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중국 기업에 대한 신규투자를 당분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현재로선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는 판단에서다. 미국 자산운용사 아크인베스트의 캐시 우드 CEO 역시 알리바바·바이두·텐센트 등 중국 IT기업 주식을 대량 매도했다.

/그래픽=김지영 디자인 기자/그래픽=김지영 디자인 기자
韓 게임사와 피 섞은 텐센트…떼려야 뗄 수 없다

문제는 텐센트는 국내 게임업계와 형제나 다름없다는 점이다.

중국 정부가 해외 게임사의 직접 진출을 허용하지 않아 대부분의 한국 게임사는 텐센트를 거쳐 세계 2위 게임시장인 중국에 진출해왔다. 반대로 텐센트는 한국 IP(지식재산권)를 발판삼아 세계 최대 게임사로 성장했다. 한국 게임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세계 1위 PC 온라인 및 모바일게임사인 라이엇게임즈(리그오브레전드)와 슈퍼셀(브롤스타즈)을 인수했다는 평가다.

넥슨 자회사 네오플의 '던전앤파이터'와 스마일게이트의 '크로스파이어'는 텐센트 손을 잡고 중국에 진출한 대표게임이다. 업계에선 이들 게임이 텐센트로부터 받는 로열티 수익만 2조원에 달할 것으로 본다. 실제 지난해 텐센트 매출이 네오플 전체 매출의 89%(7911억원)를 차지했으며, 전체 84%인 스마일게이트 해외 매출도 대부분 중화권에서 나왔다.

중국 진출을 앞둔 펄어비스 '검은사막 모바일'도 텐센트 투자를 받은 퍼블리셔(유통사)를 통해 지난 6월 판호(중국 내 게임서비스 허가)를 받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중국이 이대로 빗장을 푸나 했지만 역시나였다"라며 "국내 게임 대부분이 텐센트 관계사를 거쳐 중국에 진출하는 점을 고려하면 텐센트 규제는 한국 게임에도 악재"라고 말했다.

텐센트는 △넷마블(17.52%) △크래프톤(13.58%) △카카오게임즈(4.32%)의 주요 주주이기도 하다. 크래프톤은 최대주주인 장병규 의장(16.43%)과 텐센트의 지분 차이가 0.8%p에 불과하다. 크래프톤은 중국판 배틀그라운드로 불리는 텐센트의 '화평정영'으로부터 받는 기술료가 올 1분기 매출의 71.8%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외 텐센트는 네이버 손자회사인 라인게임즈에도 500억원을 투자했다.

카카오 주요주주인 텐센트…韓 IT서비스에도 악재되나

무엇보다 텐센트는 국내 대표 IT기업인 카카오의 주요 주주(5.95%)다. 김범수 의장과 그의 개인회사인 케이큐브홀딩스, 국민연금공단 다음으로 지분율이 높다. 자칫 중국의 빅테크 규제가 한국 IT업계로 불똥이 튈 수 있다고 우려하는 배경이다. 텐센트와 손잡고 중국에 진출하려는 IT서비스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예컨대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전신인 카카오페이지는 텐센트와 협업해 중국 진출이 유력시돼왔다. 지난해 기준으로 텐센트가 카카오페이지 지분 10.47%를 보유한 데다, 카카오페이지는 어경란 텐센트코리아 이사를 기타비상무이사로 선임하는 등 밀월관계를 이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텐센트에 대한 당국의 규제가 강화되면 카카오엔터의 중국 진출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위정현 중앙대 교수(한국게임학회장)는 "중국 정부 입장에선 국부를 해외로 유출하는 알리바바와 텐센트가 집중 견제대상"이라며 "중국의 텐센트 규제가 외국 게임을 겨냥한 건 아니므로 판호 발급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진 않겠지만, 텐센트와 협력해 중국에 진출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인도와 중국 간 마찰로 텐센트가 유통하던 크래프톤의 '배틀그라운드'가 인도시장에서 철수해야 했던 것처럼 중국과 각을 세우는 다른 나라에선 중국 기업이 주요 주주인 한국 기업을 우호적으로 보지 않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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