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역할론' 키워드 셋…문대통령 메시지에 숨은 뜻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2021.08.15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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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반도체 ②백신 ③취업제한

광복절 가석방으로 풀려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3일 오전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에서 나와 이동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이날 서울구치소 앞에서 취재진과 만나 "국민 여러분께 걱정을 끼쳐 죄송하다"며 "저에 대한 걱정과 비난, 우려, 그리고 큰 기대를 잘 듣고 있고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사진=이기범 기자 leekb@광복절 가석방으로 풀려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3일 오전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에서 나와 이동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이날 서울구치소 앞에서 취재진과 만나 "국민 여러분께 걱정을 끼쳐 죄송하다"며 "저에 대한 걱정과 비난, 우려, 그리고 큰 기대를 잘 듣고 있고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국익을 위한 선택으로 받아들인다. 국민께서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반대하는 국민의 의견도 옳은 말씀이지만 엄중한 위기 상황 속에서 특히 반도체와 백신 분야에서 역할을 기대하며 가석방을 요구하는 국민도 많다."

청와대가 지난 13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가석방을 두고 오랜 침묵 끝에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을 공개한 것은 국민 여론과 이재용 역할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정치적 셈법으로 해석된다. 법무부의 지난 9일 이 부회장 가석방 결정 이후 이어진 찬반 양론을 두루 살피면서 이 부회장의 향후 행보에 대해서도 일종의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이 부회장 역할론에 대해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부연을 곱씹을 만하다. 이 관계자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구축과 한미정상회담 후속조치, 코로나19 백신 수급과 관련한 국민적 요구가 있다"며 "(이 부회장이) 그에 부응하는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①반도체 위기에 투자·M&A 결단 필요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4월30일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부품연구동(DSR)에서 열린 시스템반도체 비전 선포식에서 세계 최초 EUV(극자외선) 7나노 노광공정으로 출하된 실리콘웨이퍼에 서명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문 대통령의 서명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뉴시스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4월30일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부품연구동(DSR)에서 열린 시스템반도체 비전 선포식에서 세계 최초 EUV(극자외선) 7나노 노광공정으로 출하된 실리콘웨이퍼에 서명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문 대통령의 서명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재계에서 그동안 이 부회장 가석방 또는 사면을 요청하면서 든 가장 큰 이유도 '반도체'였다. 반도체 산업이 삼성전자의 주력 사업인 데다 국가경제의 핵심 축으로 자리잡으면서 이를 이끌 경영리더십 회복이 시급하다는 논지였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반도체 산업은 지난달 국내 전체 수출액 554억4000만달러(약 63조8669억원) 가운데 19.8%(110억달러)를 차지했다. 올 상반기 반도체 산업 누적 수출액은 571억3400만달러로 자동차(236억달러), 철강(163억달러), 조선(118억달러) 부문의 수출액을 모두 합한 것보다 많다. 반도체 산업이 흔들리면 국가경제가 휘청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달 들어 반도체 업황 우려가 커지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삼성전자 주식을 대규모 매도하자 원/달러 환율이 치솟는 상황도 국내 경제 구조에서 반도체 산업이 차지하는 위상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13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장중 한때 1169.5원까지 오르면서 지난해 9월29일 1171.2원 이후 11개월만에 최고치를 고쳐 썼다.


'이재용 역할론' 키워드 셋…문대통령 메시지에 숨은 뜻
반도체 산업 자체만 놓고 보면 매년 수십조원의 자금을 쏟아부어야 하는 사업 특성상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부재는 곧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업계 한 인사는 "최근 미세공정기술이 고도화하면서 공장 하나를 짓는 데만 20조원 이상이 들어간다"며 "투자 규모도 규모지만 이런 투자를 계획해 제품을 양산하기까지 2~3년이 걸리는데 몇 년 뒤 시장 상황을 예측해 최종 결단을 내리는 것은 현재 국내 기업에서 총수 없이는 진행되기 힘들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이 부회장 가석방을 두고 '한미정상회담 후속조치'를 콕 찍어 언급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는 지난 5월 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한미정상회담 당시 미국 현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생산공장 신·증설 계획을 공식화했지만 현지 정부의 세제 혜택 등과 맞물린 수익성 문제로 4개월째 공장 부지조차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재용 역할론' 키워드 셋…문대통령 메시지에 숨은 뜻
정부 입장에서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중국의 '반도체 굴기(일어섬)'에 대한 견제책으로 한국과 대만 등을 포함한 반도체 동맹을 노골적으로 압박하고 삼성전자의 미국 현지 공장 신·증설이 동맹의 상징으로 오르내리는 상황에서 이 부회장의 결단이 필요한 셈이다.

업계에서는 올 들어 파운드리 세계 1위 업체인 대만 TSMC가 1000억달러(약 115조원) 투자안을 발표하고 반도체 종가인 미국 인텔이 파운드리 사업 재진출을 선언하는 등 공격적인 행보에 나서는 가운데 삼성전자가 골든타임의 막차를 탔다는 얘기도 나온다.

업계 또다른 인사는 "이 부회장이 자리를 비운 새 굵직한 투자 결단이 줄줄이 밀리면서 시스템반도체 시장에서 2030년까지 1위를 달성하겠다는 '비전 2030' 목표도 답보 상태에 빠졌다는 평가가 나왔다"며 "이 부회장이 경영에 복귀하면서 이제 메모리반도체와 시스템반도체 사업 전반에서 M&A(인수합병)를 포함해 대대적으로 고삐를 조이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오는 게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 '이재용 인맥 어떻길래…청와대는 왜 백신 역할론을 말했나'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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