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클릭]최태원의 성경, 이재용의 빈손

머니투데이 의왕(경기)=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1.08.1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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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광복 70주년을 맞아 특별 사면·복권된 2015년 8월 14일 오전 0시 5분께 경기도 의정부 교도소에서 출소하면서 양손으로 성격을 쥔 채 고개숙여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광복 70주년을 맞아 특별 사면·복권된 2015년 8월 14일 오전 0시 5분께 경기도 의정부 교도소에서 출소하면서 양손으로 성격을 쥔 채 고개숙여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


2015년 8월 14일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간. 광복70주년 특별사면 대상자로 출소하는 최태원 SK 회장을 의정부교도소 앞에서 기다린 적이 있다.

당시 현장은 최회장의 사면에 반대목소리를 내는 사람들과 최 회장을 영접하기 위해 나온 SK 측 사람들, 취재 기자들로 북새통을 이뤘었다.



최 회장은 출소길에 기자들과 만나 "국민 여러분께 대단히 송구하고 앞으로 국가 경제발전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반도체, 통신, 에너지 등에 모두 역점을 두고 고민하겠다"고 소감을 밝혔었다.

당시 그의 발언보다 더 눈길을 끌었던 것은 그의 손에 쥐어져 있던 두꺼운 '성경(Bible)'이었다.



현장 기자들은 그 때 손에 쥔 성경의 의미를 두고 갖가지 해석을 내놨었다. 최 회장이 선한 이미지를 전하기 위해 연출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부터 다양한 해석이 덧붙여졌다.

한참 뒤에 사정 얘기를 전해들어보니 출소 전에 개인소지품은 모두 외부로 보내고 몇시간의 대기 시간을 성경을 읽으며 보냈는데 출소 때 이를 버리고 나올 수 없어서 들고 나왔다는 것이었다.

어느 얘기가 진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당시 기자들의 과한 해석들이 난무했던 건 사실이다.


어쨌던 그 상징은 이후 기업의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 경영과 오버랩되면서 거듭난 최 회장을 상징하는 장면이 됐다.

사면 이후 그는 SK 그룹의 성장을 통해 이익을 키우고, 이를 사회적 가치로 환원하는데 전력을 다했다. 그는 선한 영향력을 넓히기 위해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등을 맡으며 활발한 외부 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면의 성공적 사례라는 평을 듣는다.

광복절 가석방으로 풀려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3일 오전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에서 나와 이동하고 있다. /사진=이기범 기자 leekb@광복절 가석방으로 풀려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3일 오전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에서 나와 이동하고 있다.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꼭 6년만인 2021년 8월 13일 오전 10시를 조금 지난 시점. 경기도 의왕에 위치한 서울구치소에서 광복절 가석방으로 출소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두 손에는 최회장 때와는 달리 아무 것도 들여 있지 않았다.

과거 영장실질심사 후 구치소에서 나올 때 개인물품을 종이 가방에 넣고 나오다가 무심결에 가까이 있는 임원에 이를 넘기는 모습이 공개돼 논란이 된 것을 의식했는지 빈손이었다.

구치소 앞의 모습은 6년전 최 회장 출소 때보다 더 복잡했고, 가석방 찬성과 반대의 목소리는 더 첨예하게 대립했다.

이 부회장은 2년 7개월간 교도소 내에서 꾸준히 운동을 했다는 최회장 만큼의 씩씩한 걸음걸이도 아니었고, 13kg이나 빠진 몸무게만큼 얼굴의 표정은 어두웠다.

"국민 여러분들께 너무 큰 걱정을 끼쳐드렸다. 정말 죄송하다"며 "저에 대한 걱정, 비난, 우려, 큰 기대 잘 듣고 있다"고 말할 때는 눈빛이 많이 흔들렸다.

2017년 2월 첫번째 수감 후 353일과 2021년 1월 두번째 수감 후 207일을 합쳐 총 560일의 수형생활 중 충수염에 의한 복막염 수술 등으로 내상이 컸던 모양이다.

반도체와 통신 등에 집중하겠다던 최 회장과 달리 반도체나 백신과 관련한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오래 비웠던 이태원동 집을 향했다.

이제 그 옆 집에는 그의 정신적 지주였던 부친 이건희 회장도 없다. 지난해 10월 타계한 이 회장의 빈 자리는 크다. 이 부회장은 이제 스스로 그 무게를 견디고 일어서야 하는 상황이 됐다.

"열심히 하겠다"는 그의 말이 빈말이 되지 않도록 자택에서 몸을 추스른 그는 출소 때 타고간 제네시스 대신 카니발로 갈아타고 서초사옥으로 향했다. 이 부회장은 이제 출소 때 빈 손으로 다시 시작한다는 심정으로 새로운 삼성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스스로를 살리고, 국민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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