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도 등장…간첩 집에 꽁꽁 숨겨둔 USB, 4년간 받은 北지령들

머니투데이 김주현 기자 2021.08.14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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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탐구생활]①4년간 주고받은 'sample.docx'…밀봉 USB에서 나온 암호파일 84건 내용 보니

편집자주 충북 청주 기반 활동가 4명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사정당국의 수사를 받고 있다. 이들은 북한으로부터 활동 자금을 받고 수년간 지령을 수행해 온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지시 중에는 청주공항 F-35A 스텔스기 도입반대 투쟁을 벌이라는 내용도 포함돼 있어 일명 '스텔스 간첩'으로 불리기도 한다. 머니투데이는 청주지검이 법원에 제출한 활동가들의 구속영장 청구서를 입수해 그 내용을 공개한다. 이들은 은밀하게 정치권 인사들에게 손을 뻗은 한편, 인터넷 언론 매체를 통해 북한 체제를 공개적으로 찬양하기도 했다. 일용직으로 일하거나 식당을 차리는 등 평범한 생활을 이어갔으나 이는 활동비를 벌기 위한 행위로 분석된다.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sample.docx'

최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청주 지역 활동가의 USB(이동식 기억장치)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제목의 암호화 파일 84건이 쏟아져나왔다. 이 USB는 간첩단 핵심인물로 꼽히는 조직 부위원장 윤모씨(50·구속) 자택 이불 사이에서 발견됐다. 발견 당시 USB는 봉투와 은박지 등으로 4중 밀봉돼있었다고 알려졌다. 이 파일은 이들이 2017년부터 북측과 주고 받았다고 추정되는 지령문과 대북보고문이다.

14일 머니투데이 취재를 종합하면 국가정보원과 경찰청 안보수사국은 지난 5월말 충북 청주에서 '자주통일 충북동지회' 활동가 4명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자택 압수수색을 벌였다. 수사기관은 이 과정에서 USB를 확보했다.



'충북동지회' 활동가 4명 가운데 3명은 지난 2일 검찰에 구속됐다. 피의자 4명은 조직 부위원장 윤씨, 고문 박모씨(57·구속), 연락담당 박모씨(50·구속), 위원장 손모씨(37·불구속) 등이다.

이들은 2017년 6월 충북동지회를 결성해 지난 5월까지 북한 지령을 수신하고 대북보고를 한 혐의를 받는다. 조직원들을 충성을 맹세하는 혈서까지 썼다고 전해진다. 이들은 북한으로부터 활동 자금을 제공받고 이메일 등으로 지령을 받아온 것으로 파악된다. 손씨는 지역 온라인 언론사를 만들고 북한 체제를 찬양하는 선전활동을 기사로 썼다.



2017년부터 주고받은 통신만 64회…중국·캄보디아서 접선도
임종철 디자인기자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임종철 디자인기자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
사정당국은 이들이 수년전 북한 측에 포섭됐다고 보고 있다. 또 최소 4년 전부터 꾸준히 북측과 통신해오면서 간첩 활동을 한 증거를 수집했다.

수사 기관이 파악한 통신문만 64건이다. 이들은 북측으로부터 한국 정치권 내부 동향과 민심동향 수집, 북한 체제 정당성 선전 등을 지시받았다. 수사기관은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지난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들을 고려해봐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방대한 분량"이라고 했다.


이들은 대북보고문에서 주로 국내 정치동향을 보고했다. 북측은 '반미·반일·여성혐오를 극대화시켜라'는 식의 구체적인 지령을 전달하기도 했다. 청주공항 F-35A 스텔스기 도입반대 투쟁도 지령 중 하나다.

이들은 북한 공작원과 직접 만난 혐의도 있다. 고문 박씨는 2017년 중국 북경에서 북 측과 접촉했고 윤씨는 2018년 4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만남을 가졌다. 연락담당 박씨는 2019년 11월 중국 심양에서 물품보관함을 통해 공작자금 2만달러(약 2000만원)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권 침투 사업 추진… "유튜브·SNS로 여론 선동해라"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이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KT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스1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이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KT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스1
충북동지회 조직원들은 매일 만나며 사상학습과 경제활동을 함께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북측과 한 달에 2~3번 꼴로 통신을 주고받았다고 파악된다.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 침투하거나 여론전을 펼치라는 지령도 있었다. 또 한미 합동군사연습 완전중지, 전쟁장비 반입금지 , 대북제재 철회, 검찰개혁안 등을 촉구하라는 내용도 지령에 포함됐다. 예를 들면 "검찰개혁안을 비롯한 개혁법안들의 국회통과를 저지시키는 보수당의 책동을 분쇄하고 정국주도권을 장악하는 것을 목표로 내세워라"는 식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등 유력 정치인들의 이름도 종종 거론된다. "'박근혜 석방론'을 내세워 사회 전반에 반보수투쟁분위기를 위한 사업을 조직해봐야 한다" "다음 총선에서 자한당을 참패로 몰아넣고 그 책임을 황교안에게 씌워 정치적으로 매장해버리는 것을 기본 전략으로 틀어줘어야 한다" 등의 내용이 대표적이다.

지역 여성들의 혐오감을 이용하라는 구체적인 지시도 나왔다. 북측은 "자한당(자유한국당, 현 국민의힘) 의원의 '아이낳는 도구' 등 여성비하발언을 걸고 자한당을 여성천시당, 태생적인 색광당, 천하의 저질당으로 각인시켜라"고 지시했다.

최근에는 코로나19(COVID-19) 사태로 선거유세 주요방식이 온라인전으로 전환됐다며 유튜브나 SNS를 이용해 여론공세를 펼치라는 방법도 제시했다.

북측이 요구한 포섭대상자 신상자료와 사상동향 보고도 이뤄졌다. 활동가들이 접수한 보고문에는 포섭대상의 구체적인 인적사항과 학력, 경력은 물론이고 사상동향을 판단한 근거까지 자세히 적었다. 이를테면 "괴산군 모 공무원의 뇌물 수수 사건에 연루돼 자유롭지 못하다" "자녀 출산을 미루고 활동할 만큼 열성적이다" 등의 내용부터 "통일단결의 주요한 걸림돌이자 난관에 부딪힐 걸로 예견된다" 같은 평가도 포함돼있다. 이들이 보고한 포섭대상자는 6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기관은 방대한 분량의 증거를 수집한 만큼 조만간 이들을 검찰에 송치할 계획이다. 손씨에 대한 영장 재신청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은 사건이 송치되면 보강 수사를 진행한 뒤 기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기소 된다면 재판은 청주지법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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