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 (108,100원 ▼5,000 -4.42%)이 배터리 사업 부문을 물적분할 한다고 합니다. 쉽게 얘기해서 별도 회사로 떼어 낸다는 건데요. 이 때문에 최근 주가는 급락했고 주주들도 심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물적분할이 뭐기에 이렇게 난리인 걸까요? 물적분할해도 괜찮은 걸까요? 머니투데이 증권 전문 유튜브 채널 '부꾸미-부자를 꿈꾸는 개미'에서 물적분할이란 무엇이고, 왜 SK이노베이션이 왜 논란이 될 수밖에 없는지 정리해 봤습니다.
물적분할이 뭐야? 먹는 거야?기업 경영에서 분할이라고 하면 말 그대로 기업을 나누는 겁니다. 예를 들어 콩국수와 칼국수 2가지 메뉴를 파는 식당이 있다고 해볼게요. 이 집이 너무 맛집이라 손님들로 항상 북적이는데, 문제는 콩국수 찾는 손님은 콩국수만 찾고, 칼국수 찾는 손님은 칼국수만 찾는거예요.
기업도 사업을 하다 보면 사세가 커지면서 사업도 여러분야로 확장하게 되잖아요. 회사가 작을때는 큰 문제가 없는데 회사가 커지다보면 각 사업부를 효율적으로 경영하기 어려워 질때가 있습니다. 그럴땐 사업부를 따로 법인으로 독립시켜서 책임 경영을 강화하고 경영 효율성을 높이는 전략을 택할 수 있는 거죠. 물론 회사가 커진다고 무조건 다 분할을 해야하는 건 아니고요. 이건 어디까지나 경영자의 선택사항입니다.
머니투데이 증권 전문 유튜브 채널 '부꾸미-부자를 꿈꾸는 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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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사업은 원유를 정제해서 휘발유, 등유, 경유 등을 만들어 파는 사업이고요. 화학사업은 나프타 같이 원유에서 나온 화학물질을 가공해서 플라스틱이나 비닐, 고무원료 등을 만드는 사업입니다. 윤활유는 말 그대로 윤활유인데, 대표 제품으로 ZIC가 있죠.
배터리 완제품이라고 할 수 있는 배터리 셀 사업과 배터리 소재 중 분리막을 만드는 사업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업분야가 다양하고 또 기업 규모도 크다보니 하나의 조직이 이런 사업부들을 모두 총괄하기엔 한계가 있는 거죠. 그래서 SK이노베이션은 예전부터 각 사업부를 별도의 회사로 독립시키는 분할을 실시했습니다.
지금 석유사업은 SK에너지와 SK인천석유화학이 하고 있고요. 화학사업은 SK종합화학이 담당합니다. 윤활유 사업은 SK루브리컨츠, 분리막 사업은 SK아이이테크노로지가 하고 있고요.
그룹 지배구조를 보면 SK이노베이션이 대부분 자회사의 지분을 100%씩 갖고 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분할에는 2가지 종류가 있는데 이렇게 100% 자회사로 분리시키는 걸 물적분할이라고 하고요. 기존 주주구성 그대로 회사를 쪼개는 걸 인적분할이라고 합니다.
물적분할로 인한 SK이노베이션 지배구조. /자료=유튜브 '부꾸미'
SK이노베이션 안에 있던 사업부를 각각 물적 분할하면 이런 그림이 됩니다. SK가 SK이노베이션을 지배하고, SK이노베이션이 100% 지분을 갖고 각 자회사를 지배하는 그림인거죠.
만약 SK이노베이션이 물적분할을 하지 않고, 인적분할을 했다면 어떤 그림이 될까요? 기존 주주 구성이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에 SK이노베이션의 사업부는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가 되는게 아니라 지주사 SK의 자회사가 됩니다. SK가 SK이노베이션, 에너지, 종합화학, 아이이테크놀로지 등등을 모두 33%씩 보유하는 형태가 되는거죠.
물적분할이 아닌 인적분할을 했다면..? /자료=유튜브 '부꾸미'
만약 인적분할을 하면 분할비율만큼 신설 회사의 주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내가 A회사 주식 10주를 갖고 있는데, 이 기업이 순자산의 40%를 떼어내 법인을 신설하는 인적분할을 했다고 하면, 분할비율은 6대4가 되죠. 그럼 나는 A사 주식 6주와 분할 신설되는 회사 B의 주식 4주를 받을 수 있는 겁니다.
물적분할과 인적분할의 차이. /자료=유튜브 '부꾸미'
그런데 그 회사가 알짜 사업부를 물적분할하는 경우는 얘기가 좀 달라집니다. 회사 입장에선 최선의 선택일 순 있어도 주주 입장에선 최악이거든요.
지금 SK이노베이션이 그런 경우입니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SK이노베이션은 그동안 여러 사업부들을 물적분할 해 왔는데요. 이번엔 배터리였습니다. SK이노베이션의 신성장 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배터리 사업을 물적분할하겠다고 한 것이죠.
물적분할은 100% 자회사기 때문에 SK이노베이션 주주들은 분할되는 배터리 회사의 주식을 단 한 주도 받을 수 없습니다. 정말, 꼭 그렇게 다 가져가야만 속이 후련했냐!
SK이노베이션의 주요 사업은 석유화학이고 매출 대부분도 여기서 나오는데, 지금 주주들이 과연 이걸 보고 투자했을까요? 아마 대부분은 배터리 사업에 대한 기대로 투자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걸 물적분할하면서 단 한주도 안 주겠다고 하니 어이가 없는 거죠.
시장의 반응도 냉담합니다. SK이노베이션이 처음 배터리 사업 분할을 언급한 지난 7월1일 주가는 하루만에 8.8%나 빠졌고요. 그 이후에도 쭉쭉 빠지다가 분할을 공식 발표한 8월4일에는 장중 8% 가까이 급락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주가는 고점 대비 약 25% 조정받은 상태고요.
SK이노베이션 주가
예를들어 내가 지갑에 현금 100만원이 있는데, 이 중에 50만원을 꺼내서 다른 주머니에 넣었다고 내가 가진 돈 100만원이 변하는 건 아니니까요.
물론 이런 얘기 할 수 있죠. 물적분할 회사를 상장시키면 지분가치가 희석되지 않냐! 맞는 말이지만 회계상으로 가치가 변하지 않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지분율이 떨어져도 연결대상 기준만 충족하면 분할하는 배터리 회사의 실적을 그대로 SK이노베이션 실적으로 가져올 수 있으니까요.
중요한건 회계적 가치가 아니고 시장이 평가하는 기업 가치가 변한다는 겁니다. 지금 시장에서는 석유화학 기업에 대해선 낮게 평가하고, 배터리 기업에 대해선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만약 SK이노베이션이 분할 배터리 회사를 따로 상장시킨다고 하면 투자자들은 다 그 배터리 회사에 투자하지 SK이노베이션에 투자할 사람은 많지 않겠죠.
또 주주들이 화가 나는 건 분할하는 배터리 회사에 현금을 거의 다 몰아줬다는 겁니다. 분할 내용을 보면 SK이노베이션은 물적분할 이후 투자회사 SK이노베이션과 배터리 회사인 가칭 SK배터리, 석유 탐사개발 회사인 SK E&P로 나뉘는데요.
물적분할 이후 SK이노베이션 지배구조
물적분할로 인한 SK이노베이션 재무상태 변화. /자료=유튜브 '부꾸미'
결론부터 얘기하면 돈 때문입니다. 지금 SK그룹은 돈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사업을 육성하려면 당연히 돈이 필요한데, 지금 가장 필요한건 배터리 사업을 위한 자금입니다. 글로벌 배터리 시장은 매년 급격한 성장세에 있고, 전기차나 친환경 에너지 흐름 등을 감안하면 배터리의 수요는 지금보다 더 빨리 늘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SK이노베이션은 이 배터리 시장에서 LG에너지솔루션이나 삼성SDI보다 후발주자입니다. 서둘러 이 시장을 선점하려면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한거죠.
또 아시다시피 SK이노베이션은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영업기밀을 침해한 사실 때문에 LG측에 2조원 규모의 합의금을 지급해야 합니다. 공장도 짓고 합의금도 내야하고 이래저래 돈 나갈 구멍만 많은거죠.
그래서 최근에 SK아이이테크놀로지 상장도 하고 SK루브리컨츠 지분도 매각하고, 그린채권도 발행하고... 그러면서 자금을 많이 조달하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많이 부족합니다.
SK이노베이션의 계획은 배터리 생산능력을 현재 40GWh(기가와트시)에서 2025년 200GWh로 5배 이상 늘리는 겁니다. 이를 위해 향후 5년 간 18조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인거죠.
지금 상황에서 배터리 사업 분할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려면 인적분할보다는 물적분할이 훨씬 유리합니다. 지금부터는 약간 어려운 내용인데 최대한 쉽게 설명해 볼게요.
SK배터리는 물적분할 후 상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가능성이 높은데요. 이렇게 주식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걸 유상증자라고 합니다. 유상증자는 크게 일반공모, 주주배정, 3자배정 3가지 방식이 있는데요.
주주배정은 기존 주주들을 대상으로 신주를 발행하는 것이고 일반공모는 기존 주주 포함 모든 일반 주주를 대상으로 투자금을 받고 주식을 발행하는 겁니다. 3자배정은 특정 투자자(보통 기관)가 대규모 자금을 투자하는 겁니다.
물적분할은 이중에서 일반공모와 3자배정 2가지 방식이 가능합니다. 이 두가지 방식의 특징은 기존 주주의 지분율이 희석된다는 겁니다. 주주배정은 기존 주주들에게 동일한 수량의 신주를 배정하기 때문에 지분율 변화는 거의 없지만 일반공모와 3자배정은 추가 투자를 받은 만큼 기존 주주의 지분율은 하락하는 거죠.
여기서 물적분할의 장점이 나옵니다. 물적분할은 분할회사 지분을 모회사가 100% 갖는 방식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추가 투자를 웬만큼 많이 받지 않는 이상 모회사의 지배력이 흔들릴 정도로 지분율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현재 SK그룹의 지분 구조상 어쩔수 없이 물적분할을 선택한 측면도 적지 않은데요.
공정거래법상 SK와 SK이노베이션은 지주회사입니다. 지주사는 규정에 따라 상장 자회사 지분을 20% 이상 보유해야 합니다.
앞서 설명했다시피 SK는 SK이노베이션 지분 33%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사업을 인적분할하면 SK배터리는 SK이노베이션의 100% 자회사가 아닌 지주사 SK의 33% 자회사가 됩니다. 지주사는 상장 자회사 지분 20% 이상을 갖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 상태에서는 추가 투자금을 많이 받을 수가 없죠.
예를 들어 볼게요. 만약에 SK배터리의 가치가 10조원으로 평가받는다고 하면 인적분할을 했을 때 SK배터리는 최대 6조5000억원까지만 투자받을 수 있습니다. 그 이상 받으면 SK의 지분율이 20% 밑으로 떨어지기 때문이죠.
인적분할 시 SK배터리 투자 시나리오. /자료=유튜브 '부꾸미'
물적분할 시 SK배터리 투자 시나리오. /자료=유튜브 '부꾸미'
1조원을 조달한다고 해도 지분율에 따라 SK가 3000억원은 투자해야 하고요. 3조원이면 1조, 10조원이면 3조원을 추가 투자해야 합니다. 쉽지 않은 일이죠.
이런 측면에서 SK이노베이션의 물적분할은 더 논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물적분할을 통해 지주사 SK와 오너 일가는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또 지분율이 희석될 걱정도 크게 하지 않으면서 대규모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주주들은 어떤가요? 물적분할 때문에 주가가 하락하면서 엄청난 손실을 입었는데, 배터리 주식 하나 못 받았잖아요? 그래서 주주들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물적분할 아니냐, 이런 비판이 나오고 있는겁니다.
물론 SK이노베이션도 이런 불만을 모르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주주들을 달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배당 강화를 검토하고 있는데요. 정관 변경을 통해 현금뿐 아니라 주식 배당도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입니다. SK배터리가 상장하고 나면 이 주식을 이노베이션 주주들에게도 조금 나눠 '줄 수도 있다'는 얘기죠.
9월16일 주주총회 대결…승자는?
지금 상황에서 주주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만약 SK배터리의 물적분할이 맘에 안 든다면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9월16일 열리는 임시 주주총회에서 반대표를 던지는 겁니다. 우리가 잃을 것은 원금뿐, 만국의 주주들이 단결해서 물적분할 안건을 저지하는 거죠.
SK배터리 분할은 특별결의 안건이기 때문에 참석 주주의 3분의2 이상 찬성과 발행주식수 3분의1 이상 찬성이 있어야 합니다. SK는 SK이노베이션 지분 33%만 갖고 있기 때문에 반대자가 많으면 안건이 통과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관건은 국민연금인데요. 올해 1분기 기준으로 국민연금은 SK이노베이션 지분 8.3%를 보유한 2대주주입니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LG화학의 배터리 사업 물적분할때도 반대의견을 낸 적이 있습니다. 반대 이유는 "분할계획의 취지 및 목적에는 공감하나, 지분가치 희석 가능성 등 국민연금의 주주가치 훼손 우려가 있다"는 거였죠.
이번에도 국민연금은 SK이노베이션의 물적분할에 반대 의견을 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반대 주주 입장에서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지난해 국민연금의 반대에도 LG화학의 배터리 사업 물적분할은 별 문제없이 주총을 통과했다는 거였죠.
한가지 오해는 하지 않으셨으면 하는 게 그렇다고 SK이노베이션 주총에서 반대표를 던지시라고 선동하는 건 아닙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SK그룹은 불가피하게 SK배터리를 물적분할해서 자금을 조달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습니다.
주주 입장에서도 당장은 물적분할로 인한 가치 하락을 피할 순 없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SK배터리가 대규모 투자 유치도 하고 그 돈으로 공장도 짓고 돈을 열심히 벌어서 기업가치를 올리면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의 가치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지금 분할을 반대해서 자금 조달 시기를 늦추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선택일 수 있죠.
사실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사업 물적분할은 좋다, 나쁘다 이분법 논리로 간단히 얘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SK이노베이션만의 문제도 아니고요.
이 글에서 다 설명은 못했지만 이 사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동일 기업집단 내 주주들 간 이해상충 문제나 기업의 문어발식 확장, 오너 일가가 소수 지분으로 대기업 집단을 지배하는 한국 특유의 지배구조 문제 등 짚고 넘어가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기업도 같이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계속 고민해 봐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지금은 논란이 많지만 SK이노베이션도 이번 물적분할을 통해 세계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터리 기업으로 우뚝 섰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