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NFT 시대, 그들은 왜 1억짜리 그림을 불태웠나?

머니투데이 원종태 에디터 2021.08.13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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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화가 뱅크시는 기이한 예술가다. 그의 독특함을 잘 보여주는 소동이 2018년 10월5일 소더비 경매장에서 벌어졌다. 당시 뱅크시의 그림 '풍선과 소녀'가 104만 파운드(15억4000만원)에 낙찰되는 순간, 그때까지 액자 안에 잘 보관돼있던 그림이 난데없이 액자 아래로 내려간다. 그리곤 숨겨진 커터에 의해 그림이 세로로 갈기갈기 잘린다. 뱅크시가 미리 액자 안에 파쇄기를 설치하고, 원격으로 그림을 움직인 것이다.

뱅크시는 이후 액자에 파쇄기를 설치하는 장면과 경매장에서 그림이 파쇄되는 과정을 담은 59초짜리 영상을 공개했다. 그는 이런 행동을 한 이유에 대해 "작품을 파괴하려는 충동도 곧 창조다"고 밝혔다. '소더비'로 대변되는 기성 미술계에 저항하려는 자유분방함이 이날 '파쇄 퍼포먼스'로 이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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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후인 지난 3월 4일, 뱅크시도 혀를 내두를 만한 또 다른 '창조적 파괴'가 있었다. 이번에는 뱅크시 그림 '멍청이(Morons)'가 대상이었다. 블록체인 기업 인젝티브프로토콜 관계자는 뱅크시의 이 그림을 공개적으로 불태웠다. 시가 1억원짜리 그림이었다. 이 관계자는 그림에 라이터를 갖다 대기 직전 "가상과 실물이 병존할 경우 예술 작품의 가치는 실물에 종속되지만, 실물을 없애면 NFT그림이 대체 불가능한 진품이 된다"고 밝혔다. 그는 "실물 그림을 디지털로 재현한 뒤 고유 번호를 스마트 계약서에 입력하면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디지털 미술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곤 정말 그림을 불태웠다. 실물이 영원히 사라진 뒤 3일 후 이 그림의 유일한 디지털 작품이 된 'NFT 멍청이'는 4억3000만원에 팔렸다. NFT는 Non Fungible token의 줄임말로 '대체 불가능한 디지털화폐'로 해석된다. 예컨대 미술품의 경우 구매자 정보를 블록체인에 기록해 미술품을 디지털 자산으로 바꿔주는 일종의 암호 기술이다.



NFT의 무한 활용은 미술 시장에서 끝나지 않는다. 미국 'NBA 탑샷'은 NBA 선수들의 덩크슛 등 경기 활약상을 담은 짧은 동영상에 NFT를 입혀 '디지털 NBA 카드'로 거래한다. 지난해 10월 오픈 이후 탑샷은 5개월간 매출이 3600억원에 달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원래 10달러였던 디지털 카드가 1000~2000달러에 재판매 될 정도다. 최근 패션업체 루이비통이나 버버리도 자사의 디지털 명품을 사고 팔 수 있는 'NFT 컬렉션'을 잇따라 출시했거나, 출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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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NFT가 아무리 세상을 바꿀 신기술로 주목받아도 한계는 있다. 무엇보다 디지털 작품과 실물 작품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사람들의 선택은 분명할 것이다. 희소성과 유일성으로 NFT의 소장 가치를 포장했지만 NFT 작품이 실물 원작을 능가하긴 어렵다. NFT가 진정 실물의 가치를 대체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은 그래서 틀린 말이 아니다. NBA 카드도 손으로 팩을 뜯고, 카드를 만지고, 눈으로 실물을 감상해야 제 맛이다. NFT 카드로는 그런 걸 할 수 없다.

그런데도 탑샷의 디지털 카드 하나에 4000달러를 웃도는 현상은 분명 'NFT 인플레이션'으로 불릴 만하다. 지난 3월 비플의 NFT 그림 '매일: 첫 5000일'이 785억원에 낙찰되거나, 뱅크시의 NFT 멍청이가 4억3000만원에 팔린 것도 NFT 관계자들의 '의도된 띄우기' 아니냐는 비판이다.


디지털 세상에서 NFT가 할 수 있는 수많은 순기능에도 불구, NFT에도 결국 인간의 욕망이 켜켜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 마치 미술계를 풍자한다는 작가 의도와 달리 '풍선과 소녀'라는 그림이 파쇄된 후 '쓰레기통 속의 사랑'이라는 완전히 다른 작품명으로 거듭난 것처럼. 그리고 예상치 못한 가격 상승을 보인 것처럼. 이 욕망의 스토리텔링을 뱅크시 자신은 예견했을까. NFT가 실물에 기반한 또 하나의 거래 수단으로 어떻게 자리 잡을지 지켜볼 일이다.

[광화문] NFT 시대, 그들은 왜 1억짜리 그림을 불태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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