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밴드2' 무대를 찢은 여성들

머니투데이 김성대(대중음악 평론가) ize 기자 2021.08.12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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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밴드2' 참가자 정나영(왼쪽부터) 린지 은아경. 사진제공=JTBC'슈퍼밴드2' 참가자 정나영(왼쪽부터) 린지 은아경. 사진제공=JTBC


지난 6월28일, '슈퍼밴드'가 두 번째 시즌을 열었다. 이 오디션 프로그램은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과 다르게 완성된 '솔로'보단 가능성을 지닌 '멤버'를 찾는다. 제 아무리 출중한 실력을 지녔어도 밴드 안에 녹아들지 못하면 이 프로그램에선 배제되는 것이다. 좋은 반응을 얻었던 시즌1을 넘어 시즌2에서도 그 생리는 같았다. 심사위원 유희열의 말처럼 "(글로벌 케이팝 시대에) 이제 한국에서도 슈퍼밴드 한 팀 정도는"이라는 갈증을 채우기 위해 모여든 참가자들의 면면은 시즌1에 버금가거나 그것을 능가했다. 거기엔 기존 남성에게만 주어졌던 참가 자격이 여성으로 확대된 덕도 컸다. 어딘가 반쪽 느낌을 준 프로그램의 비틀린 정책 균형이 여성들의 참가로 비로소 안정에 접어든 것이다. 2021년 8월 12일 현재, 슈퍼밴드2 본선 여성 참가자들은 대부분 생존해 있다.

애초 제작사 측의 슈퍼밴드 기획 의도는 "마룬 파이브 같은 글로벌 팝 밴드"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그들은 거의 모든 음악 장르와 나이, 국적, 학벌에 선긋기를 없앴다. 그랬더니 과연 고수들이 물밀듯 들이쳤다. 그중엔 신중현과 빌 위더스를 만나게 한 '알앤비 스무스 재즈 기타리스트' 김성현도 있었고 "모던하고 도발적인 기타"(심사위원 유희열의 표현이다)를 들려준 황린도 있었다. 도발과 철학이 함께 칩거한 박다울의 거문고, 차분하지만 뜨거운 김준서의 건반, 윤도현 같은 김한겸, '한국의 쳇 베이커'를 꿈꾸며 톰 웨이츠처럼 노래한 임성윤도 어찌 빼놓으랴. 스타 탄생을 예고하는 기탁은 벌써부터 '한국의 존 메이어' 소리를 듣고 있고, 2013년에 데뷔한 밴드 크랙샷은 진주와 김현철의 곡을 록의 화염으로 녹여버리며 여한이 없을 무대의 질을 매프로마다 갱신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 뛰어난 '남성 참가자'들을 얘기하려고 노트북 앞에 앉은 것이 아니다. 나의 관심은 슈퍼밴드2 측이 지난 3월 8일에 밝힌 내용 즉 "참가 자격을 대폭 확대, 여성 뮤지션의 대대적 모집을 알리며 3차 모집에 나"서 "장르와 성별의 경계를 허물며 더욱 업그레이드" 시키겠다는 제작진의 당찬 포부, 그 속살을 들여다보는 것에 있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의지는 프로그램을 더욱 살찌웠고, 마룬 파이브를 만들겠다던 당초 기획 의도는 "노 다우트 같은 밴드도 가능하다"로 자연스레 번복됐다.

슈퍼밴드2에서 여성 참가자들은 보컬, 기타, 드럼에서 강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김예지의 파격적인 열창과 은가영의 숨막히는 필인(Fill In)은 그중 백미다. 심지어 황현조는 '원탑'에 가까운 프로듀싱 실력으로 다른 프로듀서들을 압도했다. 과연 이들은 누구인가. 지금부터 살펴보겠다.

# 드럼: 은아경, 유빈

드러머 은아경을 보면서 나는 일본의 가와구치 센리를 떠올렸다. 23살이라는 나이도 나이거니와 어렸을 때부터 드럼과 친했다는 성장 배경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물론 스승은 다르다. 가와구치는 차게 앤 아스카(Chage And Aska)의 정규 드러머 스가누마 코조에게 사사한 반면, 은아경은 과거 '개그콘서트' 막간을 책임졌던 이태선 밴드의 드러머이자 부친인 은성태로부터 실력을 훔쳤다. 둘은 무엇보다 테크닉 면에서 출중하다. 이들은 드럼이 무엇인지 알고 있고 그것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도 정확히 꿰뚫고 있다. 다 제쳐두고 "드럼이 좋고 재밌다"는 은아경의 말은 그가 어쩜 그토록 드럼을 맛깔나게 쳐내는지에 대한 가장 정확한 이유일 것이다. 은아경이 프로그램 첫 무대에서 라이언 헤인스 빅 밴드의 'Tierrasanta' 연주를 시작했을 때 모든 건 끝나 보였다. 터치와 몸놀림에서 은아경은 이미 다른 드러머들과 레벨이 달랐다. 그에 비할 수 있는 드러머는 리듬을 까맣게 구겨버린 전성배 정도였을까. 은아경의 단단하고 유연한 드러밍은 타의 추종을 허락지 않았다. 문수진, 발로와 함께 한 1라운드 무대에서 'A Million Dreams'를 연주할 때도 그런 그의 플레이는 유효했다.

드러밍의 맛에선 유빈도 뒤지지 않았다. "군부대 500회 공연"으로 다져진 그의 시원한 테크닉과 곡 해석력은 영화 '위대한 쇼맨' OST에서 고른 'The Greatest Show' 연주에서 정점을 찍었다. 그는 드럼이 힘으로만 치는 악기가 아니라는 걸 보는 이들에게 알려주었다. 드럼은 기술(Skill)과 에너지로 치는 것이다. 심사위원 윤상은 그런 유빈의 플레이를 두고 "군더더기 없는 (리듬) 디자인"이라고 평했다.

김예지,사진제공=JTBC김예지,사진제공=JTBC

보컬: 린지, 김예지, 문수진, 이한서

린지는 방송이 거듭될수록 일취월장 중인 보컬리스트다. 특히 미국의 티타 터너와 우리네 이은하를 합친 듯 맹렬한 그의 탁음은 단연 압권. 린지는 조별 예선에서 앨라니스 모리셋을 불렀고 본선 1라운드에선 아일랜드 록 밴드 크랜베리스의 'Zombie'를 불러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진면목을 보기 위해 우린 심사위원 윤상과 윤종신이 '(밴드) 픽스'를 제안한 자작곡 'Don't Look Back'까지 기다려야 했다.

블러와 토킹 헤즈(그리고 심사위원 CL)를 좋아한다는 김예지는 자칭 "노래하는 악마"다. 김예지는 과거 '보이스 코리아 2020'에도 참여한 이력이 있는데, 빌리 아일리시의 느슨한 카리스마와 비요크의 사차원 아우라를 겸비한 그를 유희열은 "겁 없이 내지르는 밴드를 위한 보컬리스트"라고 칭찬했다. 노르웨이 일렉트로닉 밴드 르메트르의 'Closer'와 날스 바클리의 'Crazy'를 매시업 하며 프로듀서로서 역량도 보여준 그는 아마도 슈퍼밴드2의 수혜를 가장 크게 입은 참가자로 기록될 것이다. 왜냐하면 본선 1, 2라운드에서 보여준 김예지 팀의 무대는 이 프로그램의 궁극적 목적인 '글로벌 밴드 발굴'에 가장 가까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무대를 많이 즐기고 싶다"라고 참가 포부를 밝힌 문수진은 이미 알앤비/힙합 계에선 이름난 가수다. 유희열이 읊은 대로 그는 "자이언티, 도끼, 사이먼 도미닉, 그레이, 세훈&찬열, NCT"까지 현재 한국 대중음악계 피처링 섭외 1순위인 것이다. 문수진은 날것의 밴드 음악을 동경해 파일로 듣는 음악이 아닌, 사람들과 살아있는 무대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실제 이번 무대에서 그는 아델에서 윤도현까지 커버해내며 자신의 의지를 현실에 대입했다.

소리꾼 이한서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음악과를 졸업한 인재다. 우리 것이 소중해서(사명감)도 누군가는 지켜야 하기 때문(의무감)도 아닌, 그저 처음 들었던 소리가 아름다워 소리를 시작했다는 그는 아쉽게도 본선 1라운드에서 자신이 프런트맨으로 나선 팀으로 'Besame Mucho'를 편곡해 불렀지만 탈락하고 말았다. "자연스럽지 못한 몰입감"과 "뮤지컬의 하이라이트 모음집" 같은 부자연스러움이 탈락 이유였다. 이는 개인의 실력보다 밴드의 실체에 방점을 찍는 이 프로그램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준 사례로 남았다.

정하은, 사진제공=JTBC정하은, 사진제공=JTBC

#기타: 장하은, 정나영

클래식 기타리스트 장하은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무대에는 고등학교 때 처음 섰다. 부모님이 기타 동아리에서 만났는데 그중 장하은의 선생님은 아버지였다. 사실 장하은은 프로다. 2009년부터 국내외 600회 이상 초청 공연을 소화했으니, 어쩌면 그를 '심사'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일지 모른다. 그는 장르적 일탈과 친구를 얻고 싶은 마음에 슈퍼밴드에 참가하게 됐다고 말했다. 장하은은 첫 무대에서 1991년에 헤어진 프레디 머큐리와 브라이언 메이를 클래식 기타 위에서 다시 만나게 했다. 그것은 세상에 하나뿐인, 어쩌면 세상에서 최고일지도 모를 'Bohemian Rhapsody' 편곡이었다. 비록 혹평은 받았지만 프로듀서 다비의 팀에서 위크엔드의 'Can't Feel My Face'를 연주할 때 그는 노래까지 불러 우리를 놀라게 했다. 장하은의 기타는 2라운드 박다울 팀에서 첼로와 거문고, 알앤비가 만난 곳에 수수하지만 명징한 음들을 떨구어내며 자신이 왜 슈퍼밴드에 계속 남아야 하는지를 증명했다.

장하은과 달리 정나영은 일렉트릭 기타를 주로 연주한다. 올드록과 헤비메탈, 블루스를 좋아한다는 그는 기타리스트 스티비 레이 본을 보고 처음 기타를 잡았다. 파파로치, 판테라, 얼터 브리지, 에어로스미스, 건스 앤 로지스, 워런트. 자신이 태어나기 훨씬 전(정나영의 나이는 21살이다)에 전성기를 누린 밴드들을 동경하는 정나영은 스키드 로우의 'Beat Yourself Blind'로 첫 무대를 장식했다. 언뜻 다임백 대럴(판테라의 기타리스트)과 지미 헨드릭스가 함께 보였던 이 무대에서 그는 화려한 테크닉보단 강렬한 퍼포먼스에 더 주력하면서 심사위원들과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정나영의 퍼포먼스는 1라운드 박다울 팀에서 'Good Boy'를 연주할 때도 그 위력을 뿜었다. 심사위원 유희열은 "모든 보물창고는 '고전'에 있다. 관건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다"라는 덕담으로 정나영의 미래에 디딤돌 하나를 선물했다.


DJ 프로듀서: 황현조(& 양서진)

양서진은 보컬에서 다뤄야 하지만 프로듀서 황현조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물이어서 함께 묶었다. 둘은 일렉트로닉 알앤비 듀오 로파이베이비의 멤버인 것이다. 대외적으로 이들은 싱어송라이터 세이(SAY)와 프로듀서 조(ZO)로도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은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로, 소속사 없이 로파이베이비라는 이름으로 정규앨범만 두 장을 낸 프로다. "음악을 할 때는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철저한 전략"을 짠다고 말한 황현조는 본선 1라운드에서 UV의 '이태원프리덤'에 왬!(Wham!)의 'Everything She Wants'를 매시업 해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 찬사를 이끌어냈다. 본선 2라운드에서도 그는 지드래곤의 'Heartbreaker'를 개성 있게 해석해 "프로듀서들 중 탑"이라는 유희열의 감탄을 이끌어냈다.

생각해보면 조금 아찔하다. 우린 하마터면 유희열이 심사평을 접으면서까지 극찬("슈퍼밴드 시작할 때 이런 밴드를 보고 싶었다")한 린지 팀의 자작곡 'Don't Look Back'을, 그가 "완전체"라고 평가한 황현조 팀을 마주하지 못할 뻔했지 않은가. 곧 펼쳐질 본선 3라운드는 '순위 쟁탈전'. 부디 김예지, 린지, 정나영, 은아경, 유빈, 장하은, 황현조, 양서진, 문수진이 JTBC 측의 참가 자격 번복이 얼마나 현명한 일이었는지 다시 한번 증명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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