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배출 주역' 플라스틱의 변신…이산화탄소 최대 85% 줄인다

머니투데이 최민경 기자, 우경희 기자 2021.08.12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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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쓰레기서 미래 찾는 기업들 (上)

편집자주 탄소중립 시대를 맞아 플라스틱이 변신중이다. 탄소 배출을 줄이고, 환경 파괴를 막는 친환경 제품화다. 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고, 소비자들의 착한 소비도 동력이 되고 있다. 풀어야 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 정부의 제도적인 뒷받침이 절실하다.

플라스틱 만들면 탄소 배출? 친환경 플라스틱 만들어서 탄소 줄인다
'탄소배출 주역' 플라스틱의 변신…이산화탄소 최대 85% 줄인다


탄소배출 2위 업종인 석유화학업계가 '탄소중립' 기업으로 변신하고 있다. 비결은 아이러니하게도 탄소 배출의 주역 중 하나인 플라스틱이다. 롯데케미칼, LG화학, SK종합화학, SKC, SK케미칼 등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올해를 친환경 사업의 원년으로 삼고 기존 플라스틱 사업을 뜯어고친다.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해 만든 플라스틱이나 바이오 소재로 만든 플라스틱의 비중을 늘리는 방향이다.

석유화학업계의 친환경 플라스틱 사업은 크게 세 가지다. 리사이클 플라스틱과 바이오 플라스틱, 생분해 플라스틱 등이다. 리사이클 플라스틱은 물리적 재활용과 화학적 재활용으로 나뉜다. 모두 기존 플라스틱보다 이산화탄소를 훨씬 저감시킬 수 있다.



◆리사이클·바이오·생분해 플라스틱으로 이산화탄소 28~85% 저감

'탄소배출 주역' 플라스틱의 변신…이산화탄소 최대 85% 줄인다
국내 페트(PET) 생산 1위 업체인 롯데케미칼은 화학적 재활용 페트를 중심으로 탄소저감에 대응한다. 화학적 재활용은 플라스틱을 분해시켜 순수한 원료 상태로 되돌렸다가 다시 플라스틱을 만드는 기술이다. 잘게 분쇄한 폐플라스틱을 섞어 재가공하는 물리적 재활용과 달리 품질 저하 없이 반복해서 재활용할 수 있다.



롯데케미칼은 2024년까지 울산 2공장에 1000억원가량을 투자해 11만톤 규모의 C-rPET(화학적 재활용 페트) 공장을 만들기로 했다. 2030년까지 공장에서 생산하는 페트 전체를 C-rPET로 전환해 연간 34만톤을 생산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기존에 재활용이 어렵던 유색·저품질 폐페트와 폐의류도 모두 모아 원료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이산화탄소도 기존 공정 대비 약 40% 저감된다.

롯데케미칼은 국내에서 유일한 바이오페트(Bio-PET) 생산업체이기도 하다. 바이오페트는 구성 원료 가운데 30%를 차지하는 모노에틸렌글리콜(MEG)을 석유가 아닌 사탕수수를 이용해 만들어 친환경적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기존 석유계 페트 공정 대비 28% 적고 100% 재활용할 수 있다. 롯데케미칼은 올해 바이오페트 판매량 목표치를 지난해 1993톤보다 약 65% 증가한 3300톤으로 세웠다.

LG화학은 바이오 소재 및 재활용 플라스틱, 신재생에너지 산업 소재에 총 3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LG화학은 폐식용유 등 식물성 원료로 만든 바이오 플라스틱과 생분해 플라스틱, 물리적 재활용을 중심으로 친환경 플라스틱 사업을 꾸린다. 이미 폴리올레핀(PO), 폴리카보네이트(PC) 등 9개 주요 제품에 바이오 인증을 받았다.


농업용·일회용 필름에 사용되는 생분해 제품인 PBAT도 외부 기술 도입과 함께 올해 생산 설비를 착공한다. 일회용 포장재에 주로 사용되는 바이오 생분해 플라스틱 PLA(Poly Lactic acid)의 친환경 원료를 확보하기 위해 국내외에서 합작사를 적극 추진 중이다.

SK케미칼 에코트리아/사진제공=SK케미칼SK케미칼 에코트리아/사진제공=SK케미칼
SK그룹 화학 계열사들도 빼놓을 수 없다. SK종합화학은 폐플라스틱으로 열분해유를 만드는 '도시유전' 사업을 통해 2025년까지 플라스틱 재활용 규모를 90만톤으로 확대한다. 2027년까지 250만톤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SK케미칼은 지난 5월 중국 폐플라스틱 리사이클 업체에 지분을 투자하면서 원료를 확보했다. 화학적 재활용 방식으로 만든 코폴리에스터 '에코트리아 CR' 소재를 오는 9월부터 본격 상업 생산한다. 에코트리아는 글로벌 화장품 용기에 쓰이게 될 전망이다. SK케미칼은 재활용 제품의 판매 비중을 2025년 50%, 2030년 100%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생분해 PLA 필름을 세계에서 최초로 상용화한 SKC는 친환경 생분해 포장재를 중심으로 플라스틱 사업을 꾸려가고 있다. 최근 페트병과 함께 재활용할 수 있는 열수축 포장재 'SKC 에코라벨' 기술을 미국에 수출하기도 했다. SKC는 지난해부터 또 다른 생분해 제품인 PBAT 상용화를 준비하는 등 생분해 소재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SKC에 따르면 생분해 PLA 제품의 원료 생산은 폴리프로필렌(PP)과 폴리카보네이트(PC) 등 일반 플라스틱 원료 생산 과정 대비 이산화탄소가 62.5~85% 감축된다.

소비재 기업과 '친환경 동맹'도…폐플라스틱 수거부터 포장재 개발까지

친환경 플라스틱과 관련해 석유화학기업과 소비재 기업이 손잡는 사례도 늘고 있다. 폐플라스틱을 수거하는 것부터 포장재 개발까지 다양하게 협력한다. LG화학은 친환경 패키징 솔루션 스타트업 이너보틀과 올 하반기부터 화장품 용기의 플라스틱을 100% 선순환시키는 에코 플랫폼을 구축하기로 했다.

SK종합화학은 종합제지기업 깨끗한나라, SPC그룹의 포장재 생산 계열사 SPC팩과 친환경 포장재를 개발하기로 했다. 또 유통·캠핑업계 등과 협력해 폐플라스틱을 수거하고 재활용해 새로운 제품으로 재탄생시키고 있다. SKC는 CJ제일제당과 협업해 신규 생분해 포장재를 개발했다. SK케미칼은 제주삼다수를 생산·판매하는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와 손잡고 국내 페트병의 리사이클 생태계를 구축한다. 제주개발공사가 고품질의 투명 페트병을 수거해 SK케미칼에 제공하면, SK케미칼은 코폴리에스터 생산 원료로 사용한다.

이처럼 석유화학업체들이 변신을 서두르는 것은 소비자들부터 '착한 소비'를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제품의 생산과정 및 성분 등을 꼼꼼히 찾아보고, 가격이 비싸지더라도 환경을 위한 제품을 선택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업체들은 지금이 소비자들의 친환경 제품 선호와 맞물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강화할 수 있는 적기로 보고 있다.

실제로 롯데케미칼의 바이오페트의 경우 2017년 내수 판매량이 101톤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1993톤으로 껑충 뛰었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바이오 페트는 기존 페트 대비 가격이 높고 수요가 많지 않아 생산을 확대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최근 환경 보호에 대한 관심으로 친환경 제품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선호도가 높아지는 추세"라고 밝혔다.

한국, 플라스틱 배출량 세계 2위인데…재활용 쓰레기 수입하는 현실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량 면에서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어디까지를 생활 플라스틱으로 봐야 하느냐에 따라 기준은 다르지만, 1인당 연간 플라스틱 포장재 소비량이 67.4kg으로 벨기에에 이어 글로벌 2위(2020년 유로맵 조사)라는 통계가 있다. 숫자와 시점에 다소 차이는 있지만 통계청이 연 98.2kg으로 세계 1위(2016년 기준)라고 집계하기도 했다.

그런 한국이 뜻밖에도 플라스틱 재활용 영역에선 '소재부족국가'다. 연간 배출되는 플라스틱은 전세계서 손에 꼽을 만큼 많은데 막상 재활용을 하려고 들면 재활용 원료 폐플라스틱이 부족하다. 태국과 일본 등에서 수입해 왔지만 그마저도 바젤협약 개정안(2021년 1월 발효)으로 막혔다. 플라스틱 쓰레기는 넘쳐나는데 재활용을 위해 새로운 쓰레기를 수입해야 하는 것도 아이러니인데, 이젠 그 수입길마저 막혔다는 얘기다.

◆82%와 59%, 23%..집계마다 다 다르다?
'탄소배출 주역' 플라스틱의 변신…이산화탄소 최대 85% 줄인다
희한한 상황을 더 이해하기 어렵게 하는건 들쭉날쭉한 통계다. 국내외의 수치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우선 우리나라 환경부의 '최근 3년간 포장재 발생량 및 재활용률' 조사를 보면 2019년 기준 국내 페트병 재활용률은 82.3%다. 발포수지(82.6%)를 합산해도 역시 82%를 웃돈다. 2017~2019년 매년 조금씩 재활용률이 높아졌다. 준수한 숫자다.

해외서 보는 눈은 많이 다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그보다 4년 전인 2015년 기준 한국의 플라스틱 재활용률이 59%라고 집계했다. 독일(65%)에 이은 2위지만 순위가 높다고 자랑하기엔 국내 집계와 간극이 너무 크다. 조사 시점 상 4년여의 시차가 있음을 감안해도 재활용률이 단시일 내에 저렇게까지 높아지긴 어렵다. 국내 집계 방식과 글로벌 스탠더드 간에 차이가 있다는 거다.

2019년 12월에 그린피스가 낸 '플라스틱 대한민국, 일회용품의 유혹' 자료를 보면 간극은 더 커진다. 그린피스는 "재활용과 에너지 회수를 구분하는 EU(유럽연합) 방식으로 집계할 때 한국의 플라스틱 재활용율은 22.7%밖에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늘 걱정이 너무 많아 걱정스러운 그린피스 자료임을 감안하고 보더라도 너무 큰 차이다.

통계의 간극을 분석해보면 지금 플라스틱 재활용 기업들이 직면해 있는 '원료부족' 현상이 비로소 이해된다. 정부는 상당량의 플라스틱을 회수해 재활용하고 있다고 보지만 실질적으로 모두가 인정할만한 수준으로 재활용되는 양은 턱없이 적다는 것이다.

재활용 플라스틱 시장이 막 열려가는 상황에서 이런 불균형은 치명적이다. 플라스틱 재활용도 엄연한 공정이 있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한 화학사 관계자는 "원료 공급이 막하면 제대로 된 제품을 생산할 수 없는게 당연하다"며 "수입할 수 없다면 국내서 제대로 공급받을 수 있도록 방법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회수, 전문성이 답

10일 서울 강동구에 위치한 한 재활용 폐기물 중간 집하장의 모습. 폐기물들이 가득 쌓여있다./사진=이강준 기자 /사진=이강준10일 서울 강동구에 위치한 한 재활용 폐기물 중간 집하장의 모습. 폐기물들이 가득 쌓여있다./사진=이강준 기자 /사진=이강준
재활용 대상이 되는 쓰레기의 정확한 수입량은 가늠이 어렵다. 각종 무역 통계가 샅샅이 집계되고 있지만 '쓰레기'라는 특성 상 집계가 어렵다. 관련업계는 2019년 기준으로 연간 약 7만톤 정도가 수입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나마도 새 바젤협약으로 아예 막혔다. 제3세계로 무차별적으로 수출되는 쓰레기를 막자는 규약 탓에 한국의 기형적 재활용 시스템이 타격을 입계 된 것이다.

수거는 된다. 환경부 집계가 허수가 아니다. 문제는 제대로 수거해야 한다는 점이다. 황정준 그린플라스틱연합 사무총장은 "수거는 되지만 대부분 지저분한 상태로 오기 때문에 일일이 세척해서 쓰기가 어렵다는 점, 둘째로 수거하는 단계에서는 분리수거가 제대로 되는데 이걸 옮겨오는 과정에서 다시 다 섞이는 점 등 두 가지가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팬데믹을 겪으면서 플라스틱 쓰레기가 너무 많다는 사회적 컨센서스가 이뤄진 것은 호재다. 이참에 제대로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청결한 상태로 쓰레기를 분리수거해 제대로 분리된 상태를 유지하며 운송하는 전문영역이 생겨야 한다는게 화학업계의 공통된 주장이다. 수거와 분리배출에 전문기술을 확보한 별도 업체를 만들고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친환경 제품이 아니면 소비자에게 외면 받는다. 기업들이 필사적으로 변하는데 제도가 뒤따르지 못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4월 2030년까지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밝혔고 미국 주요기업 408곳이 지지를 선언했다. 세상은 빠르게 바뀌는데 적어도 플라스틱 쓰레기 재활용 면에서는 국내서 제도적 지원이 추가되지 않는다.

황 사무총장은 "완전한 바이오매스(생분해) 기반 플라스틱으로 가기 위한 중간단계가 바로 플라스틱 재활용과 생분해 플라스틱 산업"이라며 "정부와 민간이 함께 제도적인 문제를 보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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