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3사, 배터리 넘어 '이것'에 직접 투자하는 이유

머니투데이 최민경 기자 2021.08.09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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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3사, 배터리 넘어 '이것'에 직접 투자하는 이유


전기차 시장이 확대되자 배터리사들이 배터리를 넘어 소재에 직접 투자하고 있다. 특히 최근 투자 속도를 높이고 있는 것은 배터리 원가의 40%를 차지하는 '양극재'다. LG화학과 삼성SDI가 올해 들어 양극재 사업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선언한 데 이어 SK이노베이션과 SKC는 양극재 사업 신규 진입을 노리고 있다.



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 관계사 SKC는 차세대 배터리에 쓰이는 양극재와 음극재를 중심으로 투자를 검토 중이다. SKC는 지난 4일 열린 2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3분기 내 양·음극재 투자를 위한 자금조달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SKC가 자회사 SK넥실리스의 동박 사업 외에 다른 이차전지소재 사업 진출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업계에선 SKC가 이차전지소재 사업을 하게 될 경우 차세대 배터리 소재인 하이 망간 양극재와 실리콘 흑연 음극재 등에서 JV(합작사)를 설립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하이 망간 양극재는 폭스바겐 그룹에서 개발하겠다고 발표한 하이 망간 배터리에 쓰이는 소재다. 망간은 니켈보다 약 70% 저렴하고 매장량이 풍부하다. 에너지 밀도가 낮아 주행거리 연장엔 한계가 있지만, 배터리 화재를 줄일 수 있어 안정성이 높다. 현재 국내 업체 중에선 에코프로비엠 등이 개발 중이다.

SKC의 양극재 사업 진출은 SK그룹 차원의 배터리 수직계열화 작업의 일환이기도 하다. 앞서 SK이노베이션도 지난 5월 양극재 내재화를 목표로 중국 EVE에너지, BTR과 합작사를 세웠다. 설립되는 공장의 연간 생산량은 약 5만t(톤) 규모로 전기차 약 40만대에 공급할 수 있는 양이다.

SK이노베이션은 BMR(폐배터리 재활용)을 통해 양극재 사업 내재화의 기반도 마련하고 있다. 폐배터리에서 양극재의 원료인 수산화리튬(LiOH)을 회수하는 기술도 이미 확보한 상태다. 폐배터리에서 리튬을 먼저 분리하면 나머지 원료인 니켈, 코발트, 망간도 뽑아내기 쉬워진다. SK이노베이션은 2025년 BMR 사업에서 6만톤 규모의 생산능력을 확보할 방침이다.


LG화학과 삼성SDI도 올 들어 양극재 사업 투자에 적극적이다. LG화학은 배터리 관련 첨단 소재 및 양극재 생산 확대에 2조7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양극재 사업을 글로벌 선두로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연산 6만톤 규모의 구미공장을 올해 12월에 착공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양극재 생산능력은 2020년 4만톤에서 2026년 26만톤으로 약 7배 수준까지 늘어난다.

삼성SDI도 지난달 말 양극재 자회사 에스티엠에 양극재 제조 설비 등을 양도해 제조 및 관리 효율성을 높였다. 또 양극재 증설 등을 위해 에스티엠의 1500억원 규모 유상증자에도 참여키로 했다. 삼성SDI는 에코프로비엠과 지난해 11월 양극재 제조 합작사 '에코프로이엠' 공장 착공에 돌입했다.

2025 양극재 공급 부족 전망…안정적인 양극재 확보 필요성
이처럼 배터리사들이 직접 양극재 사업에 진출하는 이유는 전기차 시장이 확대되면서 양극재 등 소재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초엔 영국의 재규어, 독일의 아우디 등이 양극재 부족으로 배터리 공급을 받지 못해 전기차 생산을 일시 중단하기도 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배터리 양극재 수요는 지난해 73만 톤에서 2030년에는 605만 톤으로 8배 이상 늘어날 전망이다. 시장 규모도 같은 기간 132억달러에서 783억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당장 2025년부터 양극재 공급이 부족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에 배터리사들이 안정적인 양극재 확보를 위해 내재화를 추진한다는 설명이다.

주요 완성차 업체들이 배터리 내재화를 추진하는 것도 배터리사들이 소재 쪽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이유 중 하나다. 완성차업체들이 직접 배터리를 생산하더라도 양극재, 음극재 등 배터리소재는 외부에서 공급받을 확률이 높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배터리보다 배터리소재가 상대적으로 안전한 사업이 될 수 있다.

양극재 키우는 데 10년…"기술장벽, 투자비용 커 걱정없다"
포스코케미칼 양극재 제품포스코케미칼 양극재 제품
배터리사들의 양극재 사업 진출에 대해 기존 양극재 업체인 포스코케미칼, 에코프로비엠, 엘앤에프 등은 크게 걱정하진 않는 분위기다. 업계에선 앞으로 2~3년이 이차전지소재 사업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골든타임이 될 것으로 보는데 양극재 사업을 이제 진출한다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투자비도 크다는 이유에서다. 기존 양극재 업체 중심으로 시장이 굴러갈 것으로 보고 있다.

포스코케미칼, 에코프로비엠 등은 이미 국내를 넘어 해외 진출까지 고려하는 단계다. 포스코케미칼은 미국, 유럽, 중국 등을 중심으로 해외 생산기지를 물색 중이다. 최근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은 인도네시아에 연간 10GWh(기가와트시) 규모의 배터리셀 JV 설립을 발표했는데 포스코케미칼은 이 JV에 참여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에코프로비엠도 해외 양극재 공장 투자를 위해 올해 하반기 4000억원 내외의 유상증자를 계획하고 있다. 이는 연산 약 5만톤 규모의 하이니켈 양극재 설비를 건설할 수 있는 비용으로 추정된다. 투자 지역은 유럽, 미국 등이 거론되는데 삼성SDI 공장이 있는 헝가리에 투자할 가능성이 높다.

양극재업계 관계자는 배터리사들의 양극재 사업 진출에 대해 "배터리만큼이나 투자비용이 많이 들고 기술 장벽이 높은 사업이기 때문에 주도권을 잡기는 힘들 것"이라며 "현재 배터리소재에서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들은 10년 전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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