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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 꺼져도 올라갈 구멍은 있다, ‘싱크홀’

머니투데이 정수진(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1.08.0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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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해지지 말아요, 어짜피 코미디니까

사진제공=쇼박스 사진제공=쇼박스






11년 만에 집을 샀다. 대출을 한껏 당겼지만 무려 서울에 있는 신축 빌라다. 그런데 순식간에 빌라 전체가 땅속, 500미터 지하로 추락하고 만다. 이제 수억 원의 자산이자 안락한 공간이던 집을 버리고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탈출해야 한다. 영화 ‘싱크홀’은 벼락처럼 재난 상황인 싱크홀(땅 꺼짐)을 맞닥뜨린 청운빌라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다. 하지만 심각해질 필요는 없다. 재난영화지만 웃음에 방점을 찍은 코미디니까.


영화는 장대비가 쏟아지던 날, 청운빌라 501호로 이사오는 동원(김성균)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지방에서 올라와 결혼을 하고 어린 아들을 둔 가장인 그는 11년 만에 서울 내에 자가로 집을 취득하고 꿈에 부풀어 있다. 동원의 회사 후배들은 빌라 사느니 어떻게 해서라도 아파트 산다는 둥, 계포구 장수동(가상 지역)이면 예전에 공단과 폐차장 있던 동네 아니냐는 둥 씁쓸한 소리를 내뱉지만 이 청운빌라는 동원이 가질 수 있는 최선의 현실이다. 출퇴근 시간이 짧아 여유로운 아침식사를 즐길 수 있고 방이 3개나 있어 손님도 자고 갈 수 있는 만족스러운 현실. 집이 땅속으로 폭삭 꺼지기 전까지는 그랬다.




사진제공=쇼박스 사진제공=쇼박스


물론 싱크홀이 생기기 전 전조는 있었다. 어린 아들이 구슬을 두면 한쪽으로 스르륵 굴러가고, 창문은 빡빡하더니, 심지어 1층 자동 유리문에 금이 가더니 박살이 난다. 심각한 하자가 의심되지만 빌라 주민들은 괜히 문제 제기했다가 집값만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먼저 한다. 설마 무슨 큰일이 일어나겠냐는 마음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큰일은 언제든 갑작스럽게 들이닥친다. 지난 6월 어느 밤, 미국 플로리다의 고급 아파트가 붕괴됐던 것을 보라.


빌라가 땅속으로 꺼지기 전까지 영화는 동원의 상황, 그리고 동원과 사사건건 마주치며 묘하게 성질을 긁는 이웃 주민 401호 만수(차승원)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회사에서 과장 직급을 달고 팀원들을 거느렸지만 아파트 구입 후 6개월 만에 2억이나 올랐다는 부하 직원 앞에서 어딘지 작아지는 동원이나 홀로 아들을 키우며 헬스장 직원, 사진관 사장, 대리기사 아르바이트로 ‘쓰리잡’을 뛰는 만수의 모습을 자세히 비추며 소시민의 애환을 들려주는 데 공을 들인다. 여기에 동원의 집들이로 청운빌라에 왔다 하룻밤 자게 된 김 대리(이광수)와 인턴사원 은주(김혜준)까지 싱크홀에 빠지면서 이들은 졸지에 ‘원 팀’이 된다.


지하 500미터로 떨어진 빌라의 생생한 모습을 담기 위해 제작진은 대규모 암벽 세트를 짓고 흔들림을 강조하기 위해 초대형 짐벌 세트와 수조 세트를 마련하는 등 대규모 프로덕션을 진행했다. 그럼에도 ‘싱크홀’에는 재난 영화 특유의 긴장감이 부족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하 500미터로 순식간에 빌라가 꺼져 들었음에도 대부분 사람들이 멀쩡하게 살아 남는다. 산소 문제 등 과학적인 접근은 고사하고 그냥 무식한 일반인의 눈으로 봐도 말이 안 되는 비과학적 디테일도 도처에 넘실거린다.


사진제공=쇼박스 사진제공=쇼박스


그러나 말했듯 ‘싱크홀’은 웃음에 방점을 둔 코미디 영화. 여느 재난영화 보듯 예리한 잣대를 포기하면 의외로 여름 극장가에서 즐겁게 즐길 수 있다. 영화 또한 디테일은 과감히 포기하고 관객 멱살을 잡고 웃음으로 내달리려 한다. 특히 ‘라이터를 켜라’ ‘광복절 특사’ ‘선생 김봉두’ 등 코미디 영화 전성기 시절을 호령했던 차승원이 오랜만에 몸에 힘을 쫙 빼고 건들건들한 코믹 연기를 선보이는 게 눈에 띈다. 다만 강력한 웃음이 빵빵 터지는 대신 잽을 날리듯 툭툭 건드리는 웃음인 데다, 차승원의 연기를 받쳐줄 ‘티키타카’가 조금 약해 더 큰 웃음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


여러 재난 블록버스터 영화 중 ‘땅 꺼짐’으로 불리는 싱크홀을 최초로 소재로 잡고 구현한 점은 돋보인다. 지하수나 약해진 지반, 개발사업 등이 원인으로 꼽히는 싱크홀은 1년에 평균 900건이 발생하는 현실이지만 아직 낯선 느낌의 재난. 영화는 대처할 틈도 없이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르는 싱크홀의 특성에 가장 안락해야 하는 공간인 집을 맞물려 현실적인 공포를 자아낸다. 해안도시에 쓰나미가 몰아 닥치고(해운대), 대형 터널이 무너지고(터널), 도심을 의문의 유해가스가 점령하는(엑시트) 등 온갖 상황을 영화로 보아왔지만 쿨쿨 코골며 자고 있다 내 집이 무너진다는 상황은 상상하기도 싫은 공포임이 분명하므로. 그래서 영화는 코미디이고,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들은 적당히 웃으며 즐겁겠지만 영화가 끝난 드는 상상이 더 공포일 수 있겠다. ‘대출까지 끌어당겨 11년 걸려 산 집은 과연 보상받을 수 있을까?’ ‘과연 동원이 서울에 다시 집을 살 수는 있을까?’ 하는 상상의 공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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