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빠진 독 끝…26조 투자한 K-배터리 "이제 벌어서 투자한다"

머니투데이 우경희 기자 2021.08.03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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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빠진 독 끝…26조 투자한 K-배터리 "이제 벌어서 투자한다"


수십조원이 들어갔고 또 수십조원이 다시 투자돼야 한다. 배터리(이차전지) 흑자의 의미는 그래서 크다. K배터리 3사가 수익 턴어라운드 9부 능선을 넘었다. LG에너지솔루션(LG화학 배터리부문)과 삼성SDI가 2분기 배터리부문에서 흑자를 낸데 이어 SK이노베이션도 배터리부문 적자를 줄이고 하반기 흑자전환을 정조준했다.



3사 합쳐 배터리 설비투자에만 그간 26조원을 쏟아부은 것으로 잠정 집계된다. 예정된 추가 투자를 포함하면 말 그대로 수십조원이 투입된다. 생산능력이 곧 펀더멘털이자 점유율인 만큼 기반을 다지는데 천문학적 액수를 투입했다. 이제 수익을 내며 선순환 단계로 접어들어야 한다. '벌어서 투자하기'야말로 중국·일본과 경쟁에 승리할 수 있는 키워드다.

3사 합쳐 설비투자만 26조원
GM과 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법인 '얼티움셀즈' 합작 법인의 미국 오하이오 제1공장 건설 공사 사진GM과 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법인 '얼티움셀즈' 합작 법인의 미국 오하이오 제1공장 건설 공사 사진
2일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이노베이션에 따르면 3사 합친 배터리 설비 기존 투자금액이 국내외서 26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알려진 대로 배터리는 아직 '적자사업'이다. 가능성만 보고 26조원을 꽂았다는 의미다.



LG화학은 본격적으로 설비투자에 들어간 2016년 이후 2020년까지 배터리 설비투자금액으로 10조원을 채웠다. 삼성SDI는 2010~2020년 8조8000억원을 투입했다. ESS(대용량에너지저장장치) 설비 합산금액인데 최근 혼류생산이 일반화된 만큼 대부분을 전기차용 배터리로 봐야 한다. SK이노베이션도 국내외서 올해까지 7조원을 이미 배터리 생산설비에 투자했다.

투자할 금액을 더하면 숫자는 더 커진다. 지역도 국내에 구애받지 않는다. 배터리를 사다 쓰는 완성차업체들이 모두 유럽과 미국 중국에 있다. SK이노베이션이 미국 조지아공장 투자를 진행 중인 가운데 2단계 대규모 투자도 확정적이다. LG에너지솔루션도 최대 5조원 규모 미국 추가 투자를 예고했다. 삼성SDI도 중국 등에서 과감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투자는 생존을 위한 유일한 선택지다.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은 2017년 기준 연간 330억달러(약 37조원)에서 연평균 25%씩 성장해 2025년이면 연 1600억달러(182조원)까지 커질 전망(IHS마켓 분석)이다. 총 40조원 안팎을 들여 연 200조원 시장을 선점하는 셈이다. 완성차 업체들은 초기에 확보한 배터리에 맞춰 전기차를 설계한다. 초기 시장 선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벌어서 투자해야...실적 턴어라운드가 시급한 이유
9~1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20201'에 삼성SDI가 참여해 배터리 신기술을 대거 선보였다9~1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20201'에 삼성SDI가 참여해 배터리 신기술을 대거 선보였다
실적 턴어라운드가 절박한 이유도 같다. 어닝서프라이즈에 힘입어 투자비용을 쏟아붓고 있지만 언제까지 다른 사업에서 번 돈을 배터리에만 투자하긴 어렵다. 2021년 2분기 실적에 배터리업계가 주목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삼성SDI와 LG엔솔이 연이어 흑자를 신고했다. SK이노베이션도 '스토리데이'에서 CEO(최고경영자)가 "3분기 흑자 가능성"을 언급했다.

배터리 제조사들은 배터리 실적을 공개하기를 꺼린다. 줄을 서서 배터리를 사가는 전형적 판매자 중심 시장(셀러스 마켓)에서 굳이 원가구조를 공개할 이유가 없다. 완성차업체들과 JV(조인트벤처) 설립에도 초기 소극적이었던것도 이 때문이다.

LG에너지솔루션(LG화학 배터리사업부문)은 2분기 8152억원의 영업이익을 신고했다. 일회성비용(합의금 및 ESS화재 충당금)을 제외하면 약 2500억원 수준의 영업이익을 낸 것으로 추산된다. 1분기 3410억원 영업이익에 이어 흑자기조를 이어갔다.

삼성SDI 역시 2분기 전기차용 배터리 부문에서 흑자를 냈다고 밝혔다. 사상 첫 흑자는 아니지만 회사 내부적으로 "외부요인 덕분이 아닌 실질적 흑자는 이번이 처음"이라는 자평이 나온다. 영업이익 규모는 '수백억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4일 실적발표를 앞두고 있는 SK이노베이션은 2분기 흑자 전환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적자폭을 크게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초 진행한 스토리데이 행사에서는 '연내 흑자전환'을 약속했다. 그러면서 "향후 5년간 배터리부문에만 약 18조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흑자 너머를 보고 있다는 의미다.

완성차 뛰어들고 거인 中 CATL도 달린다

SK이노베이션 미국 조지아 배터리 공장SK이노베이션 미국 조지아 배터리 공장
한국 배터리사들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완성차업체들은 중국 등과 연이어 손을 잡고 있다. 배터리를 자체 생산하기로 한 노스볼트(폭스바겐) 등도 투자에 속도를 더한다. 폭스바겐은 또 글로벌 8위권 배터리사 궈시안과도 협력, 배터리 공급선을 다변화하고 있다.

포르쉐와 GM, 포드, 볼보 등이 자체 생산을 선언한 것도 눈길을 끈다. GM은 LG엔솔과, 포드는 SK이노베이션과 합작하는 등 한국 배터리사들과 협력을 병행하는 상황이지만 언제든 자체 생산 비중을 늘릴 수 있다.

1위 수성(2020년 기준 점유율 24.0%)에 나선 중국 CATL은 말 그대로 거인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연말 390억위안(6조7000억원) 투자계획을 밝힌데 이어 올 2월 추가로 290억위안(5조원)을 투자한다고 선언했다. 몇달 새 총 11조7000억원 투자 계획을 밝힌 것이다.

한 배터리 제조사 관계자는 "2분기 실적은 배터리사들이 '벌어서 투자할 수 있는' 구조에 접근했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할 것"이라며 "중국 배터리사들과 본격적인 수익구조 경쟁을 벌여야 하는 만큼 원료 소싱부터 공정 혁신까지 더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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