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 실패를 '가능성 확인'으로 포장하는 K-바이오

머니투데이 박다영 기자 2021.07.29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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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 실패를 '가능성 확인'으로 포장하는 K-바이오


임상시험에서 약물의 효과를 입증하지 못한 국내 제약·바이오 업체들이 임상시험 실패를 '치료제로서 가능성을 찾았다'는 말로 바꾸고 있다. 이 같은 표현은 투자자들에 혼선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GC녹십자웰빙은 지난 27일 암악액질 치료제 후보물질 'GCWB204'의 임상 2a상의 결과를 발표했다.



회사는 소화기암과 비소세포폐암 환자 110명을 GCWB204 투약군과 위약(가짜약)군으로 나눠 임상을 진행했는데 주 평가변수인 '계단 오르는 힘'에서 통계적 유의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약물이 임상시험에 들어가면 임상 1상에서는 안전성을 평가한다. 2상부터는 안전성과 함께 약물의 효과를 의미하는 유효성을 판단한다. 주 평가변수는 유효성을 평가하는 잣대다. 임상시험에서 주 평가변수를 충족하지 못했다는 것은 약물이 임상시험을 설계하면서 기대한 만큼 효과를 보이지 못했다는 말이다.



GC녹십자웰빙은 '암악액질 치료제 가능성 확인'이라는 제목으로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비소세포폐암 환자를 대상으로 설문 평가를 한 결과 '삶의 질(QoL)'은 통계적으로 유의한 개선을 보였다고 봤다.

회사 관계자는 "암악액질이 여러 증상에 걸쳐 나타나는데 그 중 식욕감퇴는 효과를 보였다"면서 "암악액질 치료에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임상 실패'라고 하면 시장이 직격타를 맞을 수 있기 때문에 제약·바이오 업체들이 이를 에둘러 표현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임상시험을 설계할 당시 설정한 지표를 넘지 못했다면 해당 임상은 실패로 보는 것이 맞다"고 했다. 그는 "시장에서 쓰이는 다른 치료제에 비해 개선점이 있을 경우 새로운 전략으로 임상 연구를 계속할 수도 있다"면서 "최근 업계에서 이 같은 표현이 빈번해지고 있는 것은 투자자를 의식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특히 코로나19(COVID-19) 팬데믹 이후로 치료제와 백신을 개발하는 제약·바이오 업계가 시장에서 크게 관심을 받자 임상 실패를 '새로운 치료제로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대웅제약 (107,500원 ▼1,700 -1.56%)은 코로나19 치료제로 개발중인 '코비블록(성분명 카모스타트 메실레이트)'의 임상 2b상 에서 주평가변수가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대웅제약은 '임상적 증상이 개선되기까지 걸린 시간'을 주평가변수로 삼았지만, 이는 코비블록을 복용한 환자와 위약을 복용한 환자 간 차이가 하루에 그쳤다. 사실상 자연 치유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이 같은 결과를 발표하면서 "경증환자의 특성상 증상 관리가 잘 되고, 자연 치유 비율이 높으며 약물 복용 순응도가 낮은 환자들이 있다"며 증상 개선에 걸리는 시간의 차이를 확인하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회사 측은 주평가변수를 충족하지 못한 대신 호흡기 증상이 있거나 50대 이상 경증 환자에서 효과를 확인했다고 했다. 이 결과를 발표하면서 코비블록을 비강 분무제형이나 다른 치료제와 함께 투약(병용)하는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서 신풍제약 (12,570원 ▼500 -3.83%)도 이달 초 코로나19 치료제로 개발중이던 '피라맥스(성분명 피로나리딘·알테수네이트)'의 임상 2상에서 주평가변수가 목표치에 이르지 못했다. 임상의 주평가변수는 '코로나19 바이러스 음성으로 전환된 환자 비율(음전율)'이었으나 피라맥스 투여군(52명)이 위약군(58명)보다 오히려 낮았다. 이 결과 발표 후 신풍제약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임상 3상을 신청한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새로운 전략으로 연구를 이어갈 수 있지만, 최근 코로나19 유행 이후로 임상 기준 미충족을 치료제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발표하는 사례가 빈번해지고 있다"며 "이는 후폭풍을 더 크게 맞을 수 있는 주장임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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