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일대의 모습.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집주인이 실거주 한다면서 세입자를 내보낸 뒤 실거주 하지 않고 2년 안에 새로운 세입자를 들이면 손해배상을 해줘야 하는 게 원칙이다. 히지만 정책 변경에 따라 실거주를 번복한 경우라면 '정당한 사유'에 해당돼 배상을 해줄 필요가 없다는 정부 해석이 나왔다. 결과적으로 오락가락 정책 때문에 이전 세입자는 전셋값을 2배 얹어주고 신규계약을 해야 하는 처지에 내몰린 셈이다. 임대차3법 이후 신규와 갱신 계약간 전셋값 차이가 2배 벌어졌기 때문이다.
불과 일주일 새 은마 아파트 전세 매물이 2배 가량 급증한 이유는 정부가 재건축 2년 실거주 의무를 "없던 일"로 해서다. 지난해 6·17 대책에서 재건축 아파트에 2년 이상 실거주해야 조합원 입주권을 주기로 했었다. 은마 아파트는 원래 대치동 교육 접근성 때문에 전세수요가 꾸준했고 지은지 오래돼 집주인 실거주 비율이 낮았다. 하지만 실거주 규제가 생기면서 집주인들이 계약갱신권을 행사하려는 세입자를 내보내고 본인이 실거주 하는 경우가 생겼다.
정부의 재건축 2년 실거주 철폐는 역설적으로 이전 세입자에게 가장 큰 타격을 줬다고 볼 수 있다. 지난해 7월 말 시행된 임대차2법에 따라 세입자는 계약갱신청구권을 챙사해 2년 더 살 수있게 됐다. 다만 예외 조항으로 집주인이나 직계 가족이 실거주한다고 하면 갱신권을 행사할 수 없다. 이로 인해 은마 아파트 이전 세입자는 갱신권 행사를 못하고 다른 집을 구해야 했다.
하지만 실거주 의무가 없어진 집주인이 다시 전세 매물을 내놨다. 그러면서 전용 76.79㎡ 신규 전세 매물을 보증금 8억~9억원 선에 내놨다. 같은 면적의 은마 전세 갱신 계약의 경우 7월 현재 시점 기준으로 4억~5억원에 가격이 형성됐다. 갱신계약은 이전 임대료의 5% 이내로 올려야 하기 때문에 신규계약과 가격차가 2배 가량 벌어진 것이다. 전용 84.43㎡는 9억~10억원에 신규계약을 할 수 있다. 갱신 계약은 5~6억원 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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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이 이전 세입자와 재계약을 했다면 4억~5억원 낮은 가격에 갱신계약을 해야 했겠지만, 신규로 매물로 내놓으면서 가격을 2배 올릴 수 있었던 셈이다. 집주인은 어쨋든 '남는 장사'다.
'집주인 실거주'로 갱신권 못 쓰고 쫓겨난 기존 세입자, 집주인이 2년 안에 새로운 세입자 들여도 손해배상 못받아..임대차법상 '정당 사유'에 해당한다는 게 정부해석집주인 실거주 이유로 은마에서 내놀린 세입자는 어떨까. 만약 같은 아파트로 재입주했다면 이전 임대료 대비 5%가 아닌 2배를 더 얹어줘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렸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집주인이 새로운 세입자를 들여도 손해배상청구도 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임대차법 6조의 3에는 "집주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제3자에게 주택을 임대하면 갱신거절로 인해 임차인이 입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돼 있다. 그런데 이를 달라 해석하면 "정당한 사유"가 있을 경우엔 갱신을 거절했더라도 제3자에게 임대를 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임대차법 분쟁조정위원회 관계자는 "정당한 사유에 대해 구체적인 사례가 나열돼 있지는 않지만 정부 정책에 따라 실거주를 하려고 세입자 갱신 요구를 거절했는데 정책이 바뀌어 집주인이 실거주 않고 새로운 세입자를 들이는 경우는 의도적, 악의적으로 갱신권을 거절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당한 사유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고 말했다.
정부의 오락가락 재건축 2년 실거주 의무 폐지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은 갱신권 행사도 못하고, 손해배상도 받지 못하고, 높은 전셋값에 신규계약을 해야 하는 기존 세입자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