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사병 순직 병사, BTS가 진 빚[50雜s]

머니투데이 김준형 기자/미디어전략본부장 2021.07.22 15:38
글자크기

편집자주 [김준형의 50잡스]50대가 늘어놓는 雜스런 이야기, 이 나이에 여전히 나도 스티브 잡스가 될 수 있다는 꿈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의 소소한 다이어리입니다.

BTS의 'Permission to dance' 뮤직비디오/사진제공=빅히트뮤직BTS의 'Permission to dance' 뮤직비디오/사진제공=빅히트뮤직


요 며칠 아침 출근 전, 방탄소년단(BTS)의 Permission to dance, Butter, Dynamite 3곡을 무한 반복으로 들으며 뛰었다. Butter가 빌보드 핫100 7주째 1위를 하더니 Permission to dance가 내부거래로 바통을 이어 받았다. 40여년 전 빌보드차트란 걸 처음 알았을 때, 리스트에 오른 음악과 뮤지션은 말 그대로 천상의 존재였다. 그 차트를 한국 그룹의 노래가 주름 잡을 줄 생각이나 했겠나. '빌보도 1위'도 1위지만, 댄스에 수화를 넣어서 청각장애인들도 함께 노래를 느낄 수 있게 했다는 BTS의 마음이 예뻐서, 'Ma City'에서 "062-518, 7시" 같은 가사로 광주민주화운동을 세상에 알리는 남다름이 기특해서 BTS 노래들은 돈 주고 다운받는다.



#
BTS는 이제 '미래세대와 문화를 위한 대통령 특별사절'로 공식 외교관이 됐다. 9월 유엔총회에 참석하는 것을 비롯, 환경 빈곤 불평등 다양성 등 글로벌 과제 해결을 위한 국제 협력 활동을 한다. 코로나19와 힘겹게 싸우고 있는 지구촌 사람들에게 희망과 즐거움을 주고 있는 BTS는 유엔 특사로서의 자격이 차고 넘친다.
국격을 높이고, '코리아 프리미엄'을 쌓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어떤 상도 아깝지 않다.
'30세까지 입대 연기'로는 부족하고, 당연히 군대 면제 시켜줘야 한다는 게 팬들의 마음이다. 국내외 유명 콩쿠르 우승자나, 무형문화재 전수자 같은 '예술요원'이 군면제 대상이고, 국제 바둑대회를 휩쓴 이창호 9단 같은 경우도 특별 입법으로 병역면제를 받기도 했으니 형평성을 따져도 자격은 된다고 본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BTS가 군대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멤버들 모두 '동반입대' 하는 거다. 친구와 같은 부대 생활관에서 근무할 수 있게 하는 동반입대 제도는 특혜가 아니다. 동반입대 친구는 1인까지 가능하니, 진+정국, 슈가+뷔, 제이홉 +지민 이렇게 나이 조합 세트로 입대하는 거다(7명이라 RM이 붕 뜨지만, 뭐 그냥 옆 내무반으로 끼워 주고). 올 초에 BTS 멤버 동반 입대를 전망한 증권사 리포트가 나온 적도 있다. BTS는 소속사 하이브의 최고 자산이니, 최고 자산의 향배를 증권사가 분석하는게 이상할 것도 없다.
동반입대하면 전방으로 배치되는게 원칙이다. '방탄' 들이 지키는 휴전선, 얼마나 든든한가. BTS만 가는게 아니고 아미가 같이 간다. 전세계 수억명의 아미가 휴전선을 지켜보고 있는데 무슨 일이 있을라고.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공인한 '선진국'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엎어지면 코 닿는 곳의 철책선. 냉전이 남아 있던 20세기도 아닌 21세기에, 글로벌 아이돌 BTS가 머리 깎고 총을 들어야 하는 부조리한 현실을 전세계 아미들이 목격해 보라. 대한민국 빨리 통일시키든지 평화협정 맺든지 뭔가 수를 내라고 온통 들고 일어날 것 아닌가.
지민이나 뷔가 머리 빡빡 깎은 모습을 상상도 할 수 없다고? 일찍이 강수연이 '아제아제 바라아제'에서 보여줬듯, 잘생기고 예쁜 젊은이들은 머리 깎은 모습마저도 또 다른 충격적 매력으로 다가올 것이다

방탄들이 문선대(국방홍보원 홍보지원대)로 변신, 155마일 휴전선 훑고 다니면서 동료 병사들 사기를 충천하게 만드는 거다(우리 아들 녀석 있는 고성 GOP에도 좀 가주고). 방탄들이 휴전선에서 댄스 하는 데는 퍼미션이 필요하지만, 군 통수권자 대통령께서 안 들어주실 리가 있나.
철책 앞에 특설무대 세우고 퍼미션 투 댄스를 한바탕 춰보자. 버터 발라 삽겹살도 굽고, 다이너마이트같은 조명 팍팍 터뜨리는 신나는 위문공연을 전세계에 중계하면 경회루 뮤비보다 몇 백배 강렬한 인상을 남길 것이다. 인민군 병사들이 전부 공연 같이 보겠다고 철책 노크하며 귀순하면...좀 난감하겠지만 평화협정 굳이 맺고 자시고 할 것도 없어지겠다.

순회 공연 공로로 BTS에게는 포상 휴가를 빵빵하게 주자. 그때마다 집중적으로 작업해서 신곡발표할 기회를 가질수 있게.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입대 전에 미리 작업하면 18개월이 아니라 1년으로 공백기를 줄일수 있다"고 분석했었다. 포상휴가 활용해서 작업하면 공백기를 아예 없앨 수도 있지 않을까.
BTS가 전방에서 "동이 트는 새벽꿈에 고향을 본 후, 외투입고 투구 쓰고..." 만들어 낸 음악은 얼마나 구구절절 가슴에 와 닿는 평화의 노래가 되겠냐 이 말이다.


##
강원도 고성의 GP. (뉴스1 DB) 2020.5.3/뉴스1    강원도 고성의 GP. (뉴스1 DB) 2020.5.3/뉴스1
하지만 현실의 철책선은 이런 낭만적인 상상과는 다르다.
어제(21일)는 강원도 고성 최전방 비무장지대 감시초소(GP)에서 근무하던 심모 일병(순직후 상병 추서)이 순직했다는 소식이 뒤늦게 알려졌다. 그는 지난 1일 비무장지대 내에서 수색정찰 임무를 수행하다 탈진했다.
육군에 따르면 오전 작전에 투입됐던 심일병은 작전 수행후 동료들과 귀대 도중 낮 12시40분쯤 열사병 증세를 보이며 쓰러졌다. 당시 기온은 섭시 28~29도 정도여서 작전훈련을 취소할 상황까진 아니었다고 군은 밝혔다. 하지만 로프로 등반과 하강을 반복해야 할 정도로 워낙 험준한 지역이라 체력소모가 컸다. 안정을 위해 휴식도 취해 봤지만 상황이 호전되지 않자 동료 병사들이 들쳐 업고 귀환길에 올랐고, 군의관이 비무장지대 내로 투입돼 상태를 살폈다. 험난한 지형 탓에 헬기가 착륙할 장소가 없었고, 로프를 통해 끌어올리기에도 계곡이 너무 깊어 작업 시간이 오래 걸리고 헬기 운행에도 위험이 따르는 상황이었다는 게 군의 설명이다. 결국 GP까지 육로로 후송하고 차편으로 헬기까지 이르는데 2시간여가 흘렀다. 헬기로 1시간 정도 떨어진 민간 종합병원으로 후송됐지만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이후 1주일간의 치료에도 불구하고 혈압저하, 장기부전, 황달 등 증세가 악화되면서 8일 숨졌다.

2001년생. BTS 멤버들보다 훨씬 어린 동생이다.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든 한여름 폭염 속에 군복에 헬멧 쓰고 '방탄' 조끼 입고, 깎아지른 절벽과 계곡을 이동하며 작전해야 하는 병사들에게는 요즘같은 때 열사병이 치명적인 위협이다.
BTS 뮤직비디오 속 푸른 하늘과, 폭염에 쓰러진 심상병이 마지막으로 봤던 하늘, 똑 같은 그 하늘 아래 20대 청년들이 대하고 있는 현실은 이렇게 천지 차이다. GP 병사들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철책을 따라 수백 수천 계단을 오르내리며 경계 보수작업을 하는 일반전초(GOP) 병사들, 최전방이 아니더라도 일선 부대에서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병사들의 체감온도는 민간인들과 비할 바가 아니다.

물론 군대가 집안처럼 편안할 수는 없고, 여름이라고 작전을 안할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전에 비해 많은 개선과 보완이 이뤄진 것도 사실이다. 군 관계자는 "온도지수(건구 습구 흑구 온도를 합해 환산한 지수) 29.5도가 넘어가면 옥외훈련을 조정하고 32도가 넘어가면 필수 경계활동만 하도록 하는 등 단계별 대응 지침이 있고, 이와 별개로 현장 지휘관들의 판단에 따라 과감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도록 지침을 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군 관련 커뮤니티 등을 통해 알려지는 일선 병사들의 말을 들어 보면, 이런 원칙이 일선에서 제대로 지켜지는 않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여전히 상황에 맞지 않는 불요불급한 작업과 관성적인 부대운영이 병사들을 위태롭게 한다.

아이스조끼(방탄조끼와 같이 입기는 힘들다)는 일선에 순차적으로 보급되고 있지만, 골프장에선 흔하게 공짜로 걸쳐주는 아이스 머플러는 병사들에게 지급되지 않는다. 쿨토시 같은 것도 '눈치 봐 가며'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심일병 사건 이후 GP근무자들에게 아이스 머플러를 '구매'해서 지급할 예정이라고 군 관계자는 설명했다. 군의 '기본 복제'는 대통령령으로 정해져 있고, 특수 복제를 만들려면 절차가 복잡해서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퍼미션투 댄스의 가사 첫 줄 '청춘을 떠올리면(the thought of being young)'이 흘러나오면 전방에 간 젊은 자식 생각이 겹쳐질 수밖에 없는 게 부모 마음이다.
춤추고 노래할 자유와 시간을 반납한 젊은이들에 대해서도, BTS와 똑 같은 무게로 관심을 갖는게 우리 군과 정부 사회가 할 도리다. BTS가 누구의 허락도 필요없이 춤추고 다이너마이트같은 폭발력으로 노래할 수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들 덕이다.
(BTS가 혹 병역 면제를 받게 되면, 순회 위문공연으로라도 군대 동생들을 위로해 줬으면 좋겠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