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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 窓]명품 비닐우산 日기업의 자부심

머니투데이 김인권 J트렌드 칼럼니스트 2021.07.23 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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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6, 7월 중에는 지긋지긋할 정도로 비가 줄곧 내리는 기간인 장마가 어김없이 오지만 올해 한반도는 역대급으로 매우 짧은 장마가 흔적도 없이 왔다갔다.

반면 옆나라 일본은 기상관측 사상 가장 이른 시기에 장마가 와서 여러 지역에 많은 강수량과 재난의 상처를 남기고 얼마 전 소멸했다. 이렇듯 한국과 일본은 기후, 특히 '비'와 관련된 부분에서도 다른점이 아주 많다.

'비' 하면 떠오르는 게 우산일 텐데 실제로 한반도의 기후 특성상 비는 농업사회에서 매우 귀중한 존재였고 이를 피한다는 것은 불경한 일로 여겼기에 우산은 왕족을 비롯한 극히 일부 계층만 썼고 서민들은 도롱이나 기름 먹인 삿갓 등을 사용했다고 한다.



한편 섬나라 기후상 연중 비가 비교적 자주 내리는 일본 열도에서 우산산업의 역사는 꽤 오랫동안 유지·발전됐으며 심지어 우산 소믈리에로 활동하는 전문직도 여럿 있을 정도다.

전문 제조업체 중에선 '화이트로즈'라는 회사가 가장 눈에 띈다. 이 회사의 역사는 300여년 전인 도쿠가와 막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721년 창업한 다케다상점이 전신인 이 회사는 원래 담배 도매상이었지만 담뱃잎을 저장하는 기름종이를 응용해 비옷을 만들어 무사들에게 제공한 것을 계기로 우산 전문회사로 변신하고 메이지 시대에는 인력거덮개 등을 출시하며 비와 관련한 제반 제품을 취급했다. 그렇게 명맥을 유지하던 중 현재 사장인 스도 쓰카사씨의 아버지가 1958년 세계 우산사에 큰 획을 긋는 역사적 제품을 개발한다. 그게 바로 전세계 우산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비닐우산이다.

당시 우산의 소재가 대부분 면이었는데 면우산은 비가 스며들기 쉽고 누수되거나 변색도 심해 새로운 소재를 궁리하던 중 전쟁 후 주둔하던 미군이 사용한 비닐을 도입해 우선 우산을 덮는 커버로 만들어 쓰면서 약 3년에 걸친 연구 끝에 우산의 뼈대에 직접 비닐소재를 붙이는 기술을 개발, 세계 최초 비닐우산이 탄생한 것이다.

이후 이 비닐우산은 일본 전역에 지명도를 갖게 됐고 1964년 도쿄올림픽 때 온 뉴욕 바이어를 통해 대규모 수출까지 하며 대박을 터뜨렸다. 1972년에는 다케다상점의 10대 사장인 스도씨가 그해 최고로 인기가 높았던 장미꽃무늬 제품에서 착안해 회사명을 지금의 화이트로즈로 바꿨다.

화이트로즈의 우산은 특히 선거 시즌에 불티나게 팔렸다. 선거에 나선 후보가 우천 시 가두연설을 할 경우 투명 비닐우산의 특성상 본인 얼굴도 잘 알리고 시야를 가리지 않았기 때문인데 이 회사는 이런 점에 착안해 우산의 이름을 '가테루'로 지었다. 일본어로 가테루(勝てる)는 '이기다, 승리하다'란 뜻이어서 선거 때마다 우산 주문이 쏟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우후죽순처럼 비닐우산 제품을 만드는 미투회사가 50곳 넘게 생기는데 설상가상으로 인건비가 저렴한 여러 나라에서 비닐우산을 만드는 바람에 일본 내 후발주자로 나선 비닐우산업체들은 모두 문을 닫고 이 회사만 남으면서 기로에 서게 된다. 이때 스도 사장은 '세계 최초'란 자존심을 걸고 끝까지 남겠다는 중차대한 결심을 하며 비닐우산의 명품화를 선언한다.

우산살이 꺾이지 않도록 유연성이 큰 특수 필름소재를 사용해 최고풍속 30㎞까지 견디도록 만들고 우산살 주변에 구멍을 뚫어 바람은 통과하되 빗물은 차단하는 특허를 내며 고급화에 성공해 소비자가격 1만엔(약 11만원)에서 2만엔(약 22만원)대의 다양한 럭셔리 비닐우산을 출시했다.

10년 AS(고장수리)도 보장하는 이 명품들은 일본 왕실에서까지 주문받는 등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면서 주문대기가 밀릴 정도라고 한다.

'세계 최초'란 자존심을 힘들게 지킨 당연한 대가임이 분명하다.


국내에서도 원래 슈룹이라는 고급스러운 순우리말을 가진 '우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다행이다. 슈룹'(Shuroop)브랜드로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핸드메이드 우산을 만드는 업체도 등장했고 곧 '슈룹'을 제목으로 한 드라마도 론칭한다고 한다.

늦은감은 있지만 언젠가 세계적 'K우산'의 등장을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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