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무진의 야무진 가능성

머니투데이 김성대(대중음악 평론가) ize 기자 2021.07.22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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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제이슨 므라즈-에드 시런 탄생

사진제공=쇼플레이 사진제공=쇼플레이


기회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고 '진짜' 잘하는 숨은 보석을 대중에게 선물하는 차원에서 오디션 프로그램을 지지하는 편이다. 반대로 한 프로그램이 뜨고 나면 그 방송이 지향한 음악 장르가 절대기준처럼 추앙받는 '장르의 편중' 현상은 대중이 누려야 할 가치의 다양화를 질식시킨다는 면에서 조금 반감을 갖는 쪽이다. 또한 몇몇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보이듯 주류 음악을 하는 프로가 상대적 인지도가 높다는 이유로 같은 (언더그라운드) 프로를 심사하는 모습을 나는 살짝 괴이한 일로 여기던 터였다. 이른바 '악마의 편집', '순위 조작'같은 악재야 더 말할 것도 없겠다. 오래 이어져 오며 누적된 오디션 프로그램의 장단(長短)은 그 인기 만큼 분명했다.



그러다 JTBC '싱어게인'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났다. '싱어게인'은 오디션 프로그램과 관련해 평소 내가 지지하는 바를 지향하는 방송이었다. 특히 컨셉트가 마음에 들었다. 즉 노래는 알려진 대신 가수의 지명도는 떨어지거나, 노래도 부르는 사람도 주목받지 못한 경우, 한때는 유명했지만 지금은 시들해진 모든 '이름 없는 사람들'의 이름을 찾아주겠다는 기획 의도에는 확실히 어떤 감동이 있었다. 나는 이 방송을 우연히 알게 됐다.

"거물이 나타났다!"



어느 날 지인이 보내온 문자였다. 그는 지역 사회에서 '노래 좀 부른다'는 축에 끼는 사람이었고 평소 노래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기 일처럼 흥분하는 친구였다. 그런 친구가 말한 '거물'은 다름 아닌 이무진이었다. 재진(Jae Jin)의 'Ain't About Love'로 실기 시험을 치르고 서울예술대학교에 입학(20학번)한 이무진은 초등학생 때 아버지의 기타를 치면서 음악 세계에 발을 들였다고 한다. 당시 그는 친구와 함께 학교 복도에서 스팅의 'Englishman In New York'을 통기타 한 대로 요리한 영상으로 SNS에선 이미 좀 알려진 인물이었다. 이무진은 그런 자신을 "기타 치며 이야기하는 싱어송라이터"라고 말한다. 이는 노래를 만들 때 사물에 감정 이입 해 이야기를 그려내는 그의 버릇 때문인데, 근래 발표한 '과제곡'이나 '신호등' 같은 그의 자작곡들을 들어보면 이 말뜻을 짐작할 수 있다.

사진제공=쇼플레이 사진제공=쇼플레이
이무진이라는 새 얼굴을 소개하며 친구가 보내준 영상은 바로 한영애의 1988년 히트곡 '누구 없소'를 '싱어게인'에서 리메이크 한 모습이었다. 스팅 노래를 부를 때 마냥 이무진은 여기에서도 통기타 한 대만 멘 채 무대에 섰다.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소~" 노래가 시작되고 시청자들은 5초 만에 이무진에게 빠져들었고 동시에 그를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보컬 톤 설정과 기타 편곡을 위해 6개월을 준비했다는 이 곡을 연주하는 이무진의 모습은 그야말로 신들린 듯했다. 어쿠스틱 펑키(Funky) 기타를 연주한 첫 순간부터 그는 곡에 녹아들었고 곡을 지배했으며 곡을 살아냈다. 이는 '누구 없소' 뿐만이 아니었다. 잇따라 그의 메뉴가 된 이문세, 신해철, 조용필, 높은음자리의 곡들 전부가 이무진을 거쳐 이무진의 노래가 되었다. 남의 곡을 자신의 곡처럼 불러내는 이무진의 소화력은 매우 왕성해서 이후 아이유, 이선희와의 듀엣 무대에서도 그 자생력은 예외 없이 빛을 발했다.


사실 '싱어게인'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는 이무진의 '누구 없소' 무대는 지금 한국의 대중음악 트렌드로도 나에겐 읽혔다. 선곡에서 레트로(복고풍) 지향과 창법에서 알앤비/솔(Soul) 성향, 연주에서 통기타(포크) 추구라는 요소는 확실히 요즘 음악팬들이 편애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비움으로써 채워내려 했다는 이무진의 그 오싹하리만치 달달한 목소리는 과연 오혁(혁오)과 최정훈(잔나비)을 이을 만한 것으로 들렸다. 그와 함께 '싱어게인' 톱3로 유명 가수가 된 정홍일과 이승윤이 각각 디오(Ronnie James Dio), 김바다(시나위)를 떠오르게 했다면 이무진은 제이슨 므라즈와 에드 시런을 자기 위에 오버랩시킨 셈이다. 그의 등장은 21세기 한국 대중음악 역사에서 꽤 의미 있는 에피소드로 기록될 확률이 높다.

여기서 잠깐, 우린 제이슨 므라즈라는 인물을 따로 말하고 가야 한다. 제이슨은 서태지와 더불어 이무진이 가장 호감을 갖고 존경해온 뮤지션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이무진은 이런 말을 했다. 곡이 끝난 뒤에도 그 곡이 던진 질문이 유효해야 한다고. 이는 공간과 밀도를 계산한 '듣기 좋은 목소리'와 더불어 노래에 대해 그가 가져온 철학이다. 그리고 또 하나, 그가 뮤지션으로서 삼는 지론이 있으니 바로 '편한 음악'이다. 그러니까 머리에 쥐가 날 정도의 고음을 내질러도('아름다운 강산') 현란한 악기 연주가 불을 뿜어도('누구 없소') 듣는 사람은 동요 없이 그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내공을 이무진은 갖고 싶어 한다. 그런 편한 음악의 최고 경지를 이무진은 제이슨 므라즈에게서 본 것이고, 실제 '싱어게인'에서 장르를 넘나들며 예측 불허의 편곡을 즐기는 사이 그는 무의식적으로 제이슨 므라즈를 따랐다. 데이안 라이스가 제이슨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듯, 그렇게 이무진의 첫 음악 세계는 제이슨 므라즈의 것들로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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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진은 빨간색과 녹색 사이에서 3초 동안 빛나고 들어가는 노란 신호등을 자신에 비유한 적이 있다. '신호등'이라는 곡에도 등장하는 그 막연하고 초조한 청춘의 심정을 그는 반대로 자신을 증명할 기회로도 여겼다. 그런 이무진의 젊은 자신감은 결국 재능과 노력의 산물이다. 그는 일단 본인도 즐기고 남도 즐기는 퍼포먼스 끼를 타고났다. 또 블루스 곡을 유투(U2)나 콜드플레이처럼 재조립하려는 남다른 편곡 감각을 지녔다. 물론 싱어송라이터의 필수 요건인 자작곡 능력도 그는 조금씩 증명해나가고 있는 중이다. 이 분위기를 살려 이무진은 죽기 전에 할 수 있는 모든 장르를 다해보고 싶다고 했다. 거기엔 사이키델릭 록과 레게도 포함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시작이 된 포크 팝은 그 커다란 포부를 위한 첫걸음에 불과하다.

이무진의 나이 올해로 만 스물한 살. 보아가 데뷔한 2000년, 그러니까 제이슨 므라즈가 데뷔하기 2년 전 그는 태어났다. 아이유를 중견 가수로 여길 만큼, 아직은 '평가'라는 말이 무색하게 그는 여전히 출발선에 선 음악적 새내기다. 그러나 될성부른 나무의 떡잎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아본 상태여서 그의 미래는 밝다. 이 글은 바로 그 이무진의 야무진 가능성을 엿보려는 차원에서 정리한 비망록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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