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NO)브라, 탈(脫)코르셋 '거센 바람'…여성은 자유를 입고 싶다

머니투데이 오정은 기자 2021.07.21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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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업계 '란제리 혁명'…구시대 유물로 전락한 '와이어(철사) 브라'

편안한 착용감으로 대박을 낸 이랜드 애니바디의 '편애브라'/사진=애니바디 편안한 착용감으로 대박을 낸 이랜드 애니바디의 '편애브라'/사진=애니바디


"브래지어(브라)가 너무 불편하다( They're too f*cking uncomfortable). 입을 수가 없다. 가슴이 배꼽까지 쳐진다고 해도 신경쓰지 않겠다. "

미국 드라마 X파일 '스컬리'역으로 유명한 질리언 앤더슨(52)은 최근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통해 이렇게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여성들이여, 자기 몸을 긍정하자"는 세계적 트렌드와 코로나 바이러스의 창궐은 철사가 들어간 브래지어를 과거의 유물로 전락시켰다.



지금까지 여성들은 "가슴이 배꼽까지 내려오는 것을 막기 위해" 브라를 '당연히 입어야하는 필수 속옷'으로 간주했다. 하지만 브라의 흉곽을 압박하는 와이어(철사)와 강한 보정기능 때문에 답답함은 물론 때로는 소화불량까지 감수해야 했다. 질리언 앤더슨의 "가슴이 배꼽까지 쳐진다고 해도 신경쓰지 않겠다"는 말은 브라를 입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부정했으며 동시에 남의 시선을 전혀 신경쓰지 않겠다는 것을 뜻했다.

여배우 질리언 앤더슨/사진=게티 이미지여배우 질리언 앤더슨/사진=게티 이미지
'자기 몸 긍정주의(Body Positive)'운동이 확산되면서 국내 패션업계에서도 이미 '편안한 속옷' '입지 않은 듯한 속옷'이 대세로 부상했다. 자기 몸 긍정주의 운동이란 획일화된 미의 기준에 맞추지 않고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자는 운동이다. 이 운동은 미국에서 시작돼 전 세계로 확산됐으며, 2021년 한국에서 지금 패션-특히 란제리(속옷)업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전족에서 코르셋, 브래지어까지...탈코르셋 어디까지
중국 송나라 때 시작해 명·청 시대에 유행했던 전족은 여자 아이의 발을 천으로 꽁꽁 동여매 성장을 멈추게 하는 풍습이었다. 아주 어렸던 4-5세부터 시작해 발의 성장을 막는 전족은, 약 10cm 크기의 발을 가장 아름다운 미인의 기준으로 간주했다. 정상적으로 자라지 못한 발은 오그라들고 중간에 뼈가 부러지기도 했지만 전족을 하지 않은 여인은 미인 축에 끼지 못 했다. 전족을 한 여성은 외출은커녕 제대로 걷지 못했고 척추 전체가 구부정하게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19세기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유행한 코르셋은 잘록한 허리가 돋보이는 역삼각형 몸매를 위해 착용하던 속옷이었다. 가슴에서 엉덩이까지 철사를 넣어 제작됐고 허리 부분은 끈으로 최대한 조일 수 있었다. 코르셋을 사용하면 골격이 변형되고 내장기관까지 손상될 정도였다. 여성들이 코르셋으로 숨막혀하고 있을 당시, 파격적인 변화를 시도했던 사람이 바로 가브리엘 샤넬(CHANEL)이었다. 샤넬은 당시 여성들에게 옷을 통해 '자유의 감각'을 선물했다.

영화 '코코샤넬'의 한장면. 코르셋에 레이스가 달린 드레스를 입은 당시 여성과 남성복같은 실용적인 옷을 입은 샤넬의 대비. 영화 '코코샤넬'의 한장면. 코르셋에 레이스가 달린 드레스를 입은 당시 여성과 남성복같은 실용적인 옷을 입은 샤넬의 대비.
샤넬은 현재 '명품 중의 명품'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1900년대 초반 프랑스에서 샤넬은 실용주의의 대명사였다. 샤넬은 몸을 꽉 조이고 치렁치렁하게 긴 드레스 대신 편안한 사이즈에 미디 길이 스커트를 선보였다. 남성의 승마복에서 영감을 받은 여성용 바지 또한 출시해 여성들의 복장을 자유롭게 했다. 또 어깨에 메는 긴 줄을 가방에 부착해 여성들의 두 손을 자유롭게 했다.


지금은 당연한 것들이 당시에는 혁명이었다. 샤넬은 남자 옷에만 쓰이던 저지(부드럽고 유연한 면 소재) 소재를 여성복에 적용했다. 여성의 풍만한 라인을 강조하고 레이스를 주렁주렁 부착하는 대신 심플하고 실용적이며 아무 무늬도 없는 검정 드레스를 선보였다. 이는 오늘날 전설이 된 샤넬의 '블랙 미니 드레스'가 됐다.

2021년 여성을 불편하게 하던 대부분의 복식, 관습이 사라진 현대에 브래지어는 최후로 살아남은 '철사가 들어간 보정 속옷'이었다. 여성의 가슴 하단에는 쿠퍼인대가 있는데 이는 한번 손상되면 회복이 어렵다. 때문에 무게감 있는 가슴을 쳐지지 않게 하려 브래지어는 여성에게 필수 속옷으로 간주됐다. 하지만 질리언 앤더슨처럼 "나는 가슴이 쳐지든 말든 신경쓰지 않겠다"는 여성들이 등장하면서 'NO브라' 운동에는 불이 붙었다.

연예인 김나영씨의 유튜브 캡처 이미지 연예인 김나영씨의 유튜브 캡처 이미지
지난해 이미 임현주 MBC 아나운서가 '노브라 방송'에 도전했고 화사, 김나영 등 연예인들도 '노브라'를 선언하면서 탈코르셋 경향은 가속화됐다. 여성들이 몸을 옥죄던 '최후의 코르셋'을 벗기 시작한 것이다.

패션업계 '란제리 혁명' …와이어 벗고 자유를 입는 '노브라웨어'
여성의 섹시함과 완벽한 몸매를 강조하던 빅토리아시크릿은 "여성의 몸을 상품화하지 말라"는 여성들의 요구 앞에 시대적 흐름을 읽지 못하다 패션업계서 입지를 상실했다. '자기 몸 긍정주의 운동'이 한창이던 2014년 미국에서 빅토리아시크릿은 'The perfect body'(완벽한 몸) 캠페인을 시작해 몰매를 맞았다. 이 캠페인에는 허리가 한줌 될까말까한 마른 모델들이 다수 등장했다. 뒤늦게 트렌드를 깨달은 빅토리아시크릿은 다양한 체형의 모델을 발탁하고 와이어 없는 브라렛 등을 출시했지만 이미 패션업계서 주도권은 상실한 뒤였다.

이랜드 애니바디의 '편애브라' 이미지/사진=애니바디 이랜드 애니바디의 '편애브라' 이미지/사진=애니바디
한국에서도 "내 몸을 사랑하자"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편한 속옷의 돌풍'이 국내 란제리 업계를 휩쓸고 있다.

이랜드리테일의 속옷 브랜드 애니바디는 지난 3월 '너무 편해 매일 편애하게 된다'는 뜻의 '편애브라'를 출시했다 대박을 냈다. 편애브라는 출시 5개월 만에 누적 매출이 13억8000만원을 기록했으며 애니바디 브랜드 전체 매출의 30%를 차지하는 효자 아이템으로 등극했다. 편애브라는 신체를 과하게 강조하거나 화려한 디자인을 사용하지 않았고 자연스럽고 심플한 디자인으로 제작됐다. 또 와이어가 없어 몸을 압박하지 않는다.

이랜드 애니바디 관계자는 "자신의 몸을 사랑하고 건강한 삶을 즐기자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 고객들의 공감을 끌어낸 것 같다"며 "특히 고객 체험단을 통해 실제로 제품을 착용한 고객들의 반응을 제품에 반영해 편안한 착용감을 극대화했다"고 말했다. 애니바디 편애브라는 5개월 만에 판매량이 9.6만장을 기록하며 판매량이 10만장에 육박하고 있다.

자주(JAJU)에서는 와이어가 없는 브라렛, 브라캐미솔와 같은 편한 속옷과 더불어 편안한 여성용 사각팬티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브라렛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82% 증가했으며 여성용 사각팬티 매출은 128% 늘었다. 심지어 여성용 사각팬티 매출은 삼각팬티의 판매량을 추월하기까지 했다. '편한 속옷이 입고싶다'는 욕구가 분출되면서 '여성 드로즈'를 찾는 고객이 급증한 것이다.

JAJU의 사각팬티, 여성용 드로즈 이미지 JAJU의 사각팬티, 여성용 드로즈 이미지
아예 브라를 입지 않는 '노브라족'을 위한 '노브라웨어'도 인기다. 노브라웨어는 브라를 착용하지 않고도 입을 수 있게 티셔츠(노브라티)나 원피스에 브라캡이 부착된 의류로, 캐주얼 브랜드 유니클로는 일찍부터 브라캡이 부착된 '브라탑' 컨셉을 최초로 개발한 뒤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의류를 선보였다. 굳이 브라를 입을 필요 없이 브라캡이 부착된 옷만 입길 원하는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면서 유니클로는 캡내장 원피스, 캡내장 히트텍 등 다양한 '노브라웨어'를 선보이고 있다.

유니클로 관계자는 "와이어가 없는 브라는 물론, 브라가 부착된 캐미솔 등을 찾는 고객 문의가 최근 증가하고 있다"며 "재택근무 확산과 일찍 찾아온 무더위 영향으로 '편안함'을 중시하는 여성 고객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브라캡이 내장된 유니클로의 AIRism코튼롱브라원피스. 노브라웨어의 일종으로 브라 착용 없이 착용 가능하다. 브라캡이 내장된 유니클로의 AIRism코튼롱브라원피스. 노브라웨어의 일종으로 브라 착용 없이 착용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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