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만 때리는 공정위?…"급식 몰아줬다" 2349억원 과징금, 법원 결론은

머니투데이 최석환 기자, 심재현 기자 2021.07.20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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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재계 공정위 포비아(上)

편집자주 재계 저승사자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올 들어 '일감 나누기'를 앞세워 대기업 압박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급식 부당지원 혐의로 역대 최대 규모의 과징금을 맞은 삼성 웰스토리가 첫 표적이 됐다. 물류·SI(시스템통합)로 이어지며 또다른 규제로 인식되고 있는 공정위 리스크를 짚어봤다.

"자율이라 쓰고 강제라 읽는다"..기업 옥죄는 공정위 리스크
삼성만 때리는 공정위?…"급식 몰아줬다" 2349억원 과징금, 법원 결론은


"겉으론 자율을 강조하고 있지만 사실상 기업들은 강제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 아닙니까."

'경제검찰'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올 들어 '일감 나누기'를 앞세워 대기업 압박에 나선 것을 두고 재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급식과 관련해 삼성, SK 등을 타깃으로 삼은 데 이어 물류·SI(시스템통합) 분야 '일감 나누기' 관련 내부거래 현황 공시 강화를 밀어붙이면서다.



◆물류·SI 내부거래 현황 내년 5월부터 의무 공시..'자율' 아닌 '강제수단' 우려

19일 재계 등에 따르면 공정위는 최근 공시대상기업집단 계열회사간 물류·IT서비스 거래현황 공시 신설을 골자로 한 '공시대상기업집단 소속회사의 중요사항 공시 등에 관한 규정'을 개정했다. 계열회사간 물류·IT서비스 연간 거래금액이 매출 또는 매입액의 5% 이상이거나 50억원 이상(상장사는 200억원)인 경우 관련 현황을 연 1회 공시할 의무가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규정은 업계 의견 수렴 절차도 끝나 내년 5월 1일 이후 시행될 예정이다. 이과 관련해 재계와 물류·SI업계에선 즉각 반대했지만, 공정위는 두 분야가 일감 나누기 자율준수 협약 체결 업종인데다 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 거래구조 개선이 필요하다며 선을 그은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에선 일단 공시 제도는 투자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지 '일감 나누기' 등 특정 정책목적을 위한 압박수단이 되면 안된다는 입장이다.

또 이로 인한 내부거래 축소가 상생 취지를 살리기 보다는 산업경쟁력만 해치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대기업들이 '일감 몰아주기'를 의식해 의도적으로 내부 거래를 축소할 경우 해당 계열사가 사업 실적을 쌓지 못해 해외 시장 진출이 어려워지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SI 분야의 경우 해외수출시 최근 3년의 유사사업 실적으로 사전 적격심사를 진행하고, 기술심사 시에도 사업실적에 가장 높은 배점을 부여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동시에 일감 나누기의 수혜가 국내 중소업체로 가기 보다 외국계 대기업으로 가는 경우가 많고,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과도할 경우 아예 별도 회사가 아닌 내부화하는 형태로 관련 사업이 운영될 가능성도 높다는 지적이다. 비계열사와의 물류·SI 거래 사실을 공개할 경우 기업의 영업비밀이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공시 규정 자체가 명확하지 않은 문제도 거론된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기존 'SI' 명칭이 'IT서비스'로 변경됐는데 업계에서 여러 유사 업무를 포괄해 임의로 부르는 용어라는 점에서 명확한 정의 규정이 필요하다"며 "IT컨설팅, 시스템 관리, IT아웃소싱, IT교육훈련 등을 포함하는 IT서비스 전 거래를 공시토록 할 경우 IT거래가 위축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수주 기업만 공시해도 공시 도입 목적인 물류·IT서비스업의 회사별 내부거래 금액과 비중 파악 가능하기 때문에 내부거래 현황 공시 대상에서 발주 기업을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급식개방 자율 유도해놓고..삼성웰스토리에 사상최대 과징금 부과

재계는 무엇보다 공시 강화가 자율 협약 취지를 무색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공정위는 지난 8일 삼성·현대차·LG·롯데·CJ 등 5개 대기업과 '물류시장 거래환경 개선을 위한 상생협약'을 맺었고, SI업계도 조만간 개별업체 의견을 반영한 자율준수기준을 마련해 시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는 자율준수기준을 지키지 않는다고 불이익이 없기 때문에 강제조항이 아니라는 설명이지만 업계에선 믿지 않는 분위기다. 표면적으론 자율적인 일감 나누기를 독려하고 있지만 결국 내부거래 현황 공시 의무라는 추가적인 압박수단이 도입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 계열사들이 최근 사상 최대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 받은 '급식'도 주요 대기업들이 이미 일감 나눠주기를 시작한 분야다. 지난 4월초 공정위는 삼성·현대차·LG·현대중공업·신세계·CJ·LS·현대백화점 등 8개 대기업과 '단체급식 일감개방 선포식'을 진행했다.

김재신 공정위 부위원장이 연초 "일감 나누기는 강제로 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상생·자율적 유도를 통해 추진한다"면서 "물류·SI(시스템통합) 업종에서 일감 나누기를 추진하면서 실효성·보완점 등을 검토하겠다"고 언급한게 같은 맥락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해야 할 일감 개방을 공시항목에 신설하는 것은 내부거래 비중을 낮추도록 압박하는 수단으로 볼 수밖에 없고 이는 공시 제도의 취지를 넘어서는 것"이라며 "정책적 필요에 따라 임의로 공시항목을 늘리는 것은 지양해야 하며 불가피한 경우 일회성 실태조사를 활용하는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삼성웰스토리'가 급식업체의 본보기가 된 만큼 물류·SI업체들도 언제든 타깃을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정위 칼날은 왜 삼성의 '밥값'을 저격했나

삼성만 때리는 공정위?…"급식 몰아줬다" 2349억원 과징금, 법원 결론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삼성그룹의 단체급식·식음료서비스업체 삼성웰스토리를 조사하기 시작한 것은 2018년 7월 전후다. 당시 국무총리였던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기업에 기울어진 급식시장 독과점 문제를 언급한 게 발단이었다.

공정위를 이끌던 김상조 위원장은 그해 7월 기업집단국 조사관 30여명을 파견해 삼성웰스토리를 비롯해 삼성전자 (76,300원 ▼2,300 -2.93%), 삼성물산 (150,100원 ▼300 -0.20%), 삼성중공업 (9,470원 ▼170 -1.76%) 등을 현장조사했다. 3년 가까이 이어진 조사 끝에 올 6월 발표된 공정위의 결론은 부당지원에 따른 역대 최대 과징금 2349억원 부과. 공정위는 이런 행위가 지금은 해체된 미래전략실 주도로 이뤄졌다고 보고 당시 미래전략실장이었던 최지성 전 부회장에 대한 검찰 고발까지 결정했다.

삼성그룹은 곧바로 반발했다. "임직원들의 복리후생을 위한 경영활동이 부당지원으로 호도됐다"는 주장이다. 삼성이 행정소송을 제기하면서 최종 결론은 법원에서 가려지게 됐다.

◆정상거래 범위 벗어났나

육성권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국장이 지난 6월24일 정부세종청사 공정위 기자실에서 '기업집단 삼성의 부당내부거래 제재'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육성권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국장이 지난 6월24일 정부세종청사 공정위 기자실에서 '기업집단 삼성의 부당내부거래 제재'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법정 다툼의 쟁점은 삼성웰스토리가 삼성전자 등 계열사들과 맺은 계약이 정상거래였느냐다. 계열사간 내부거래 자체는 위법이 아니다. 위법은 정상거래가격보다 웃돈을 주고 거래했을 때 성립한다.

문제는 정상가격을 산정하기가 매우 까다롭다는 점이다. 같은 재료도 구매 규모나 품질, 유통기간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공정위는 SK와 LG그룹의 급식업체인 SK하이스텍과 아워홈을 조사해 2만여개의 식재료 가격을 일일이 산정, 비교한 결과 삼성전자 등이 삼성웰스토리를 부당지원한 것으로 결론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공정거래법 전공 교수는 "공정위가 다른 급식업체와 비교해 정상가격의 범위를 산출했다고 해도 업체의 시장경쟁력이나 서비스품질, 임직원들의 만족도 등 별도로 참고할 부분이 많다"며 "정상가격이라는 것 자체가 명확하게 떨어지는 개념이나 숫자가 아니기 때문에 법원에서 공정위 결정이 뒤집히는 경우가 적잖다"고 말했다.

업계 한 인사는 "공정위는 최대한 정상가격을 산정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을 강조할 것이고 삼성은 산정 결과가 잘못됐다는 점을 파고들 것"이라며 "어느 쪽이 설득력이 있느냐가 법적 판단을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급식업체 진입 쉽지 않은데"

삼성전자서울R&D캠퍼스 식당. /사진=이동훈 기자 photoguy@삼성전자서울R&D캠퍼스 식당. /사진=이동훈 기자 photoguy@
삼성웰스토리와의 거래가 급식시장의 공정경쟁을 얼마나 저해했는지도 법정에서 치열한 공방이 벌어질 지점으로 꼽힌다. 삼성그룹 계열사가 웰스토리를 부당지원하면서 중소급식업체들의 대기업 급식시장 진입이 차단됐다는 게 공정위의 판단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국내 단체급식 시장 규모는 2019년 12개 상위 단체급식 사업자 매출 기준으로 약 4조2799억원에 달한다. 이 중 삼성웰스토리, 아워홈, 현대그린푸드 (4,670원 ▲55 +1.19%), CJ 프레시웨이, 신세계푸드 (35,350원 ▲450 +1.29%) 등 상위 5개사가 시장의 80%를 차지한다.

하지만 삼성그룹을 비롯한 대기업에서는 전국 단위의 사업장에 균일한 품질의 급식을 제공할 시스템을 갖춘 업체가 상위 몇몇 업체를 제외하면 거의 없다고 반박한다.

급식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지난 4월 사내 급식을 외부업체에 개방했는데 새로운 업체 입찰 결과에서 시장 5위 신세계푸드와 6위 풀무원푸드앤컬쳐가 선정됐다"며 "대기업 급식을 외부에 개방하면 중소급식업체가 따낼 수 있다는 공정위 예상이 빗나간 것"이라고 말했다. 신세계푸드가 선정된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의 하루 급식량은 8000식, 또다른 기흥사업장은 1000식 이상이다.

◆규제·처벌 우선주의…"왜 삼성에만"
삼성만 때리는 공정위?…"급식 몰아줬다" 2349억원 과징금, 법원 결론은
학계에서는 법적인 판단과 별도로 이번 사건을 통해 부당경쟁 해소보다는 규제와 처벌에 기운 공정위의 정책 철학이 드러났다는 평가도 나온다.

특히 삼성이 지난 5월 사내식당을 전면 개방하고 중소급식업체의 경쟁력 확대를 지원하겠다는 내용의 동의의결을 신청했지만 공정위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동의의결은 공정위 조사나 심의를 받는 기업이 스스로 원상회복, 피해구제 등 시정방안을 제안하는 방법으로 사건을 종결하는 제도를 말한다.

한 시민단체 인사는 "공정거래 질서 확립이라는 목적을 고려하면 고발이나 과징금 부과만이 능사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공정위가 삼성에 대해서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민다는 지적도 고개를 든다. 공정위는 지난 2월 애플코리아가 국내 이동통신사에 광고비를 떠넘긴 혐의로 심사를 받다가 1000억원 규모의 상생지원기금을 마련하겠다는 내용의 동의의결을 신청하자 받아들였다.

공정위 행정처분과 관련한 기업들의 불만은 최근 행정소송에서도 확인된다. 지난해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 110건 가운데 기업들이 행정소송을 제기한 비중이 40%에 이른다. 2020년도 공정거래백서에 따르면 2015~2019년 공정위의 제재조치에 대한 행정소송 380건 가운데 94건(24.7%)에 대해 법원이 기업의 손을 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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