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먹고사니즘'의 드림팀을 보고 싶다

머니투데이 하헌기 새로운소통연구소장 2021.07.20 04:15
글자크기
하헌기 소장하헌기 소장


민주정부에는 하나의 딜레마가 있다. 권력자원의 격차를 줄이는 일과 민생을 돌보는 일을 동시에 해야 한다. 그런데 전자에만 집중하다 보면 대중은 민주정부가 민생을 돌보는 일에 관심이 없거나 그 방면에는 아마추어라고 비판하게 된다.

권력자원의 격차를 예로 들면 이런 것이다. 사실 지난 정부에서도 정권과 검찰의 충돌이 있었다. '검란'을 수습하기 위해 취임한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칼끝을 정권에 겨눴고, 국정원의 대선 여론조작 및 정치개입 의혹사건을 수사하도록 지시했다. 그 역시 당시 법무부 장관이던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 대표와 충돌했다. 그러나 현 정부의 추윤(추미애-윤석열) 갈등처럼 오래가진 않았다. 박근혜정부가 국정원을 이용해 채동욱 전 총장을 망신을 줘 몰아냈기 때문이다.
민주정부는 양적·질적으로 보수정부만큼 통치에 권력자원을 집중하지 못한다. 광화문에 차벽을 둘러칠 뿐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물대포를 함부로 쏠 수 없다. 불과 몇 년 전 물대포에 맞아 노년의 시민이 사망한 일도 있었는데 이 정부를 두고 독재라고 하면 난감해진다.



오히려 보수정부가 적극적으로 이용한 권력자원을 민주정부는 개혁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에는 국정원, 검찰 같은 권력기관뿐만 아니라 재벌과 언론 등 사회영역까지 포함된다.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총선 직후 한 인터뷰에서 "경제, 금융, 언론, 이데올로기, 검찰 등 사회 거의 모든 영역을 보수가 쥐고 있는 나라가 한국이며 이런 사회 제반 영역이 다 민주화돼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민주정부는 권력자원의 격차를 줄이는 일도 주요한 과제로 설정하게 된다. 그러지 않으면 민주정부가 집권해도 진전의 폭이 좁은데 저쪽에 정권이 넘어갈 때는 후퇴의 폭이 급격히 커지기 때문이다. 이명박·박근혜정부 10년 동안 뼈저리게 체험한 일이다.

그러나 막상 다수 국민의 입장에서는 이런 문제들이 피부에 와닿지는 않는다. 1차로 먹고사는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른바 민생의 영역은 권력자원의 격차를 줄이는 일과는 성질이 다르다. 적과 아군의 대립항으로는 문제가 풀리지 않고 이해당사자간 합의를 통해 문제해결의 방식을 도출해야 한다. 민주정부든 보수정부든 그 방식을 도출하는 데 정치가 기여해야 한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출마선언문에 '정치는 아이디어 경진대회가 아니고 정책에는 저작권이 없다'고 썼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민생에 필요한 정책이면 과감히 실행하고 필요하면 여야가 합의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정치권은 여전히 진영다툼에 지나치게 갇혀 있다. 언론도 그 틀에 갇혀 있다. 이를테면 대선시계가 돌기 시작하자 언론이 마치 당연한 것처럼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야권 주자 누구를 만날 거냐"라고만 질문한다. 그런데 진영을 걷어내고 민생의 영역으로 치면,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몇 년간 말한 '억강부약'(강자를 누르고 약자를 도움)과 김 전위원장의 필생의 신념인 '경제민주화' 사이엔 소통의 지점이 적지 않다.

김 전위원장은 그의 저서 '김종인, 대화'에서 기본소득에 대해 꽤 많은 분량을 할애했다. 책의 한 챕터 제목을 '노동| 미래를 향한 선제적 개혁, 기본소득'으로 했을 정도다. 심지어 국민의힘 정강정책 제1조 1호에 '기본소득'을 삽입하기까지 했다. 또한 기본소득은 최근 일정부분 후퇴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이 지사의 대표적인 공약 브랜드 중 하나다.

대선을 앞두고 양당은 흥행을 위해 각 진영에서 정치공학만 계산하지만 민생을 위해선 '먹고사니즘의 드림팀'이 고민돼야 한다. 민생문제는 접점을 넓히고 합의점을 도출하는 정치에서 풀릴 수 있다. 정치권이 그러한 자세를 취해야 유권자들이 뿌리 깊은 정치에 대한 냉소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