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필요한 사업도…"경영평가 점수 깎여요" 거부하는 공공기관들

머니투데이 권화순 기자, 김훈남 기자 2021.07.16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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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공공기관 저승사자, 경영평가의 속살 (下)

편집자주 땅투기 사태를 빚은 LH가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선 줄곧 최상위 점수를 받았다가 결국 토해내게 됐다. 코로나 비상경영을 한 코레일은 경영관리 부문 최저등급을 받고 사장이 사표를 냈지만 공정한 평가를 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이 와중에 경영평가 오류로 10개 공공기관의 평가등급이 뒤바뀌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면서 경영평가제도의 신뢰가 바닥에 떨어졌다. 정부는 다음달까지 개선안을 내놓기로 했다. 38년간 이어져 오면서 공공기관 종사자 수십만명의 성과급을 쥐락펴락하는 경영평가 제도의 실태를 들여다 봤다.

"적자사업 했다간 성과급 떨어집니다" 꼭 필요한 사업도 기재부 눈치봐야하는 공공기관들
꼭 필요한 사업도…"경영평가 점수 깎여요" 거부하는 공공기관들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했고 비용절감도 했다. 10년째 운임도 못 올리고 코로나19로 승객도 절반만 받았는데 경영관리에서 사실상 꼴찌 등급이 나왔다. 실망감이 클 수밖에 없다."(코레일 관계자)

지난해 영업적자 1조원을 기록한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지난달 발표된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C 등급을 받았다. 배점 45점이 부여된 개별 사업부분에선 전체 3위 수준의 높은 점수가 나왔지만 공통평가 항목인 경영관리 각 항목별로 최하위 점수가 수두룩했다. 이 여파로 손병석 코레일 사장은 자진 사퇴했다. 코레일은 호봉제에 따라 매년 1.9%의 임금이 자동인상되는데 평가 등급이 낮아 인상률이 1%가 채 되지 않을 전망된다. 사실상 연봉삭감을 당한 것과 다름없다.



경영평가단은 1조원대 적자의 불가피성을 감안, 재무적 평가에서 일부 보정을 해 준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경영관리 항목엔 이밖에도 자본생산성, 노동생산성 등 실적과 연계된 다른 항목도 많아 보정 효과가 제한적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창가쪽 승객만 받으면서 방역에 만전을 기했음에도 막대한 적자는 경영평가 점수를 끌어 내렸다. 코레일은 10년째 운임도 동결된 상태다. 여기에다 윤리경영 항목에서도 거의 '0'에 가까운 점수가 나왔는데 내부에선 "이유를 도통 모르겠다"며 깜깜이 경영평가에 강한 불만을 제기한다.

꼭 필요한 사업도…"경영평가 점수 깎여요" 거부하는 공공기관들


공공기관 경영평가 편람에는 코레일을 비롯해 한국가스공사, 한국석유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LH), 대한석탄공사, 한국농어촌공사, 국가철도공단(옛 한국철도시설공단) 등 10개 기관을 '부채규모, 부채비율 등 재무위험도가 높다"며 성과평가 결과에 따라 성과급 지급률을 하향조정할 수 있다는조항이 들어갔다. '적자' 위험이 있는 기관에 '딱지'를 붙여 별도로 관리하겠다는 얘기다.

정부 관계자는 "돈이 안되지만 정말 필요한 정책사업을 하려해도 해당 공공기관이 '돈 안된다. 그런 사업하면 경영평가 점수 깎인다'며 대놓고 거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토로했다. 이와 반대로 흑자를 내는 공공기관은 여윳돈으로 경영평가 점수를 높이기 위해 외부 컨설팅까지 받는다. 이번에 일부 공공기관은 항공사나 입점업체 임대료와 사용료를 낮춰 코로나19 가점을 받았는데 이를 두고 다른 기관에선 "땅 짚고 헤엄친 격"이라고 불만을 드러냈다.

공공기관 소속 정부 부처가 직접 하던 경영평가가 기재부 권한으로 넘어간 뒤 공공기관들의 기재부 '눈치보기'가 극심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천편일률적인 기관 평가로 인한 부작용도 작지 않다는 불만이 정부부처에서 터져 나왔다. 실제로 기재부는 131개 공공기관 직원의 성과급을 좌우하는 막강한 경영평가 권한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공공기관의 비상임 이사의 인사권까지 갖고 있다. 직간접적으로 예산권 행사도 가능한 만큼 공공기관들이 소속 부처보다 기재부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산하 공공기관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해당 부처가 상세히 알고 있지만 기재부는 131개 기관을 모두 파악하는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획일적인 평가를 할 수밖에 없어 공정한 평가를 위해 차라리 예전처럼 소속 부처가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나온다"고 말했다. 정부부처 한 관계자는 "'과'에 불과했던 기재부 해당 조직이 '공공정책국'으로 대폭 확대되는 등 기재부 권한만 커지는 결과를 낳았다"고 비판했다.



'LH 3년간 A등급' 평가 실효성 있나…8월말 개편안 나온다

안도걸 기획재정부 차관이 2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20년도 경영평가' 수정발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날 기재부는 공공기관 경여평가기관 131곳 중 22곳의 평가오류를 발견해 수정했다. /사진=기획재정부안도걸 기획재정부 차관이 2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20년도 경영평가' 수정발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날 기재부는 공공기관 경여평가기관 131곳 중 22곳의 평가오류를 발견해 수정했다. /사진=기획재정부
기획재정부가 다음달 말 공공기관 경영평가제도 개편안을 발표한다. 3기 신도시 부동산 투기의혹의 장본인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3년 연속 종합평가 A등급을 받으면서 경영평가 제도의 실효성에 의문이 커진 가운데 올해 6월 진행한 2020년도 평가에서 대규모 오류까지 발생하면서다.

정부는 경영평가 지표와 평가방식 등 두 축에서 전면적인 개선안을 마련하고 있다. △공공기관 수용가능성 △평가의 공정성과 독립성 △국민 납득여부 등 적절성 등에서 균형점을 찾는다는 목표다.

15일 기재부에 따르면 경영평가 제도개선 TF(태스크포스)는 8월말 경영평가제도 개편안 발표를 목표로 각계 의견을 수렴 중이다.

경영평가 제도개선 TF는 지난 6월 발표한 2020년도 경영평가 결과에서 평가기관 131개 중 22개 기관에 대한 점수오류가 발생한 이후 경영평가 제도 수정을 위해 출범했다. LH가 일부 직원의 부동산 투기가 진행되고 윤리경영 점수 낙제점을 받은 상황에서도 3년 연속 A등급과 성과급을 챙긴 것으로도 드러나면서 경영평가제도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 상황이다. 이에 기재부가 제도 전반에 대한 개선안을 검토하기로 하면서 1984년 제도를 운영 후 38년만에 전면 개편이 이뤄질 예정이다.

경영평가 제도개선 TF는 우선 평가지표를 단순화하고 기관 유형별로 맞춤형 평가지표를 적용하는 등 경제·사회 여건 변화에 맞춰 평가 지표를 개편할 방침이다. 평가 방식도 기관별 평가방식에서 교차 평가방식을 도입하는 등 객관성과 전문성을 높이는데 주력한다. 공공기관 평가기간 연장과 기관장 평가 전담기구 신설, 인센티브 비중 조정 등 외부 목소리도 나온 만큼 검토할 전망이다.

이번 평가 오류에 대해선 평가위원 선정 기준과 교육과정을 강화하고 평가지원전담조직 확대개편, 상설경영평가 전담기관 신설도 검토한다. 또 평가 대상 공기업이 경영평가 결과 확정·발표 전 평가오류를 검증할 수 있도록 사전 검증 절차도 고려 중이다.

윤리경영 배점 확대와 사회적 물의시 0점 처리 등 LH 사태로 인한 경영평가 지표 수정작업도 이뤄진다. 특히 기재부는 오는 9월 공공기관 운영위를 열고 2021년도 공공기관 경영편람에 포함한 윤리경영지표 배점과 채점방식을 수정할 예정이다. 지난해 말 확정돼 공공기관에 배포한 경영편람 대로 평가할 경우 2021년도 경영평가에서도 윤리경영 여부와 무과하게 고득점 기관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경영평가 개선 TF를 통해 각계 의견을 듣는 단계"라며 "개편의 큰 방향은 공공기관 서비스질과 자율경영을 높이는 등 제도 경영평가 제도의 취지에 맞게 운영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공공기관 경영평가의 부담을 줄여야 한다거나 인센티브 제도를 바꿔야한다는 의견도 충분히 듣고 있다"며 "공공기관 수용성과 국민 눈높이, 평가기관의 독립성·공정성 확보, 노동조합 의견 등을 고려해 경영평가 제도 개편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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