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첫 '탄소국경세' 제안…EU의 야심찬 기후대책 실현될까

머니투데이 권다희 기자 2021.07.15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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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천사의 탈을 쓴 무역장벽 '탄소국경세'②

편집자주 EU(유럽연합) 탄소국경세가 베일을 벗었다.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 기업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탄소중립'이 무역장벽의 빌미로 쓰일 것이란 우려가 커진다. 탄소국경세 도입이 우리나라 기업에 미칠 충격과 대응 방안을 살펴본다.

사진=로이터사진=로이터


유럽연합(EU)이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수입품에 탄소 가격을 부과하는 이른바 '탄소국경세' 도입 계획을 공표했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가장 효과적 방법의 하나로 꼽혀 왔으나 현실에서 적용된 적이 아직 없는 제도다. 이 제도에 반대하는 이해당사자가 상당한 가운데 EU가 세계 첫 탄소국경세 도입을 어떤 수준으로 달성할지 주목된다.

이론 속 탄소국경세, 첫발 내디딘 EU
EU의 행정부 격인 유럽위원회(EC)가 14일(현지시간) 발표한 핏포55(Fit for 55)의 주요 대목 중 하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초안이다. 핏포55는 2030년까지 EU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55% 줄인다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정책 묶음으로, 역내 온실가스 배출 규제를 줄이도록 유도하는 여러 정책 제안과 함께 EU 역외 기업들이 대상인 CBAM을 여기에 포함시켰다.



EC가 초안에 명시한 CBAM 대상 업종은 탄소배출량이 많은 시멘트, 전력, 비료, 철강, 알루미늄 등 5대 부문이다. 일단 2023년부터 시범 시행해 본격적으로 적용하는 시점은 2026년으로 계획했다.

적용 방식은 이렇다. CBAM 적용 품목 수입업체는 EU 역내로 수입되는 해당 제품의 수입물량에 맞춰 사전에 'CBAM 인증서'를 구매해야 한다. EU 역외에서 만들어진 제품의 탄소 발생에 대한 비용을 통관 과정에서 지불하는 것이다. 그래서 보통 '탄소 국경세'라 부른다. 또 이 CBAM 인증서 가격은 'EU 탄소배출권 거래제'(ETS)에 따른 이산화탄소 배출 시장가격에 대응시킨다. 2017년 톤당 5유로이던 이산화탄소 가격은 최근 50유로까지 올랐다.



이 제도는 EU 내 기업이 환경규제를 벗어나려 EU 밖으로 제조시설을 옮기는 '탄소 누출'을 막는다는 게 취지다. 동시에 환경규제가 상대적으로 느슨한 EU 역외 기업에 환경 관련 비용을 내도록 해 EU 역내 기업과 대등한 부담을 지우는 성격도 있다. 사실상의 '관세'로 불리는 이유다.

안팎으로 난관
/사진=블룸버그/사진=블룸버그
많은 경제학자들은 탄소국경세를 산업계의 탄소 배출을 줄이는 가장 효율적 방법으로 평가해 왔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윌리엄 노드하우스 예일대 교수가 대표적이다. 그는 탄소저감에 동참하는 국가들이 기후클럽이란 연합을 만들고, 감축 노력을 하지 않는 무임승차 국가에게 보복관세 등 일종의 벌금을 내도록 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EU의 탄소국경세와 유사한 개념이다.

그러나 정치적 난관으로 인해 아직 어느 국가도 본격적으로 추진한 적은 없다. 당장 EU의 CBAM 추진은 다른 수출 국가들의 반발에 직면했다. 영국 싱크탱크 유럽개혁센터(CER)에 따르면 탄소국경세 도입 시 러시아, 터키, 중국, 영국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국가들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해 분쟁이 본격화하면 매듭을 짓기까지 수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렇다고 EU 내 기업들에게 마냥 환영받는 것도 아니다. EU 역내 기업들은 이런 종류의 제도를 요구해 왔으나 실제 이행 과정에선 자신들이 비용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EU는 CBAM가 보호무역을 위한 게 아니라 탄소 누출을 막기 위한 제도라 주장한다. 이를 위해 WTO 규정을 위반할 소지를 차단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CBAM를 도입하는 대신 EU가 역내에 부여해 온 무료 탄소 배출권 할당을 없애려 한다.

그러자 EU 관련 업계가 무료 배출권 할당 감축·폐지에 반발했다. 지난달 EU 알루미늄 업체들의 로비단체 '유러피안알류미늄'이 EC의 이번 핏포55 발표를 앞두고 이에 대한 우려를 표한 게 대표적이다. 유럽 알루미늄 업계는 무료 배출권 허가 없이 CBAM이 효과적으로 탄소 누출을 줄일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역내 산업계의 지원이 부족하면 이 제도를 추진하기 위한 EU와 각 회원국 간 정치적 협상이 더 지난해질 수 있다는 점이 부담이다. 탄소국경세가 법제화되려면 27개 EU 회원국 및 유럽의회 차원의 승인이 필요한데 회원국 각국 정부와 정치권이 자국 산업계의 입장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 아울러 EU는 CBAM가 WTO의 규정을 위반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주지시키기 위해 WTO와도 지속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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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정부, 얼마나 공조할까
다만 CBAM이 EU 각 정부에 일종의 '세수'를 늘리는 장치가 될 수 있다는 점은 EU 내 합의를 촉진시킬 수 있는 유인이다. EU는 2030년까지 CBAM 관련 수입이 연 90억유로(12조원)가 될 것이라 추산한다. EU 각 회원국들의 정치권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부분이다.

국제적인 추진에선 미국의 지원이 핵심으로 꼽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탄소국경세 추진에 많은 정치적 난관이 예상되는 가운데 EU가 미국 정부의 동참을 희망하고 있다고 전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대선 공약으로 탄소국경세를 지지했으나 바이든 정부는 EU의 CBAM 방식에는 완전히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다. 단 탄소국경세가 미국 기업들에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는 점은 향후 EU와 미국의 공조 가능성을 높이는 대목이다.

싱크탱크 브뤼겔의 시몬스 타글리아피에트라 연구원은 만약 EU와 미국이 함께 CBAM 추진을 노력한다면 중국을 시작으로 다른 국가들에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한 정책을 강화하도록 유도하는 막대한 자극이 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WSJ는 EU가 앞장서 ETS를 세계 모델로 확산시킨 것처럼 CBAM이 다른 국가들의 예시가 된다면 여전히 상상 속 개념 같은 글로벌 탄소 국경세와 유사한 무언가가 만들어질 수 있을 거라 했다. 그러면서 "더 많은 건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미국의 야심에 달려 있다"고 덧붙였다.

EU도 CBAM 추진에 많은 난관이 있다는 점을 시인해 왔다. 요스 델베키 EC 기후변화총국장 등은 지난달 한 정책 브리핑에서 "CBAM은 많은 사람들이 희망해왔던 빠른 해결책은 아닐 것"이라 했다. 또 "(CBAM 도입이) 지금 바라는 것처럼 일찍이 아닌 2020년대 후반에야 실현될 수도 있을 것"이라며 "CBAM은 지속적이고 외교적인 노력이 필요하고 그렇게 할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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