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14개를 돌려막는 흔한 사장님 이야기[광화문]

머니투데이 양영권 사회부장 2021.07.16 05:30
글자크기
#1. 충북에서 보리밥집을 하는 A 사장은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지난해부터 손님이 확 줄었다. 그 전이라고 해서 형편이 좋았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번 돈으로 임차료와 재료값도 못 댄다. 처음엔 보험사 대출, 카드 현금서비스로 돈을 융통했다. 그러다가 대부업자 돈까지 빌렸다. 받은 대출의 종류만 14개다. 대출을 받아 다른 대출을 갚는 '돌려막기'를 한 결과다. 대출금을 모두 합하면 4600만여원. 이자율이 15~24% 정도로 높아 하루가 다르게 불어난다.



#2. B 씨는 10여년 동안 하던 사업을 접었다. 사업이 사양길에 접어들어 직원을 하나 둘 내보내고 혼자 버티다 결국 집까지 날린 뒤였다. 매달 내야 하는 개인회생 변제금을 연체하지 않기 위해 조선소 하청업체 비정규직을 지원했다. 기숙사가 있어 주거가 해결되고 경력없는 50대도 받아주는 곳이 그곳 밖에 없었지만 입사는 거절됐다. 건강검진에서 혈압이 높게 나왔기 때문이다.

대박을 노리고 '사장님'이 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임금근로자가 되지 못해 자영업자가 된다. 할 수만 있다면 따박따박 월급이 나오고 국민연금과 건강보험료를 회사가 내 주는 임금근로자가 되고 싶다. 하지만 임금근로자로 진입하기 위한 장벽은 높다. 몸을 써서 일하는 현장직이라도 성인 세명 중 한 명 꼴이라는 고혈압이라도 있다면 쉽지 않다.



꼭 코로나19 때문이 아니더라도 자영업 상황은 지옥도나 다름없다. 지난해 11만6000 명이 신용복지위원회 지원을 받았다. 이들의 상당수가 자영업자로 알려졌다. 평균 채무액은 3000만원 정도다. 영세 자영업자들은 그만큼의 돈도 없어 이곳 저곳 관의 문을 두드려야 한다. 연체라도 하면 독촉전화에 시달리고, 통장이 압류된다. 버티다 그나마 있는 것도 탈탈 털린 뒤 폐업 수순을 밟는 게 태반이다.

제살 파먹기를 하는 자영업 시장에서 승자란 있을 수 없다. 누가 더 많은 손해를 감수하면서 오래 버티느냐의 경쟁이다. 상대가 나가 떨어진다고 해도 청년 취업난과 은퇴세대 증가 등으로 '자영업 예비군'은 넘쳐난다. 경쟁자는 금방 충원된다. 상권과 트렌드 변화까지 갈 것도 없다. 채무조정이나 일자리안정자금 등으로 발등의 불은 끌 수 있지만 근본적인 해법이 되지 못한다.

전사자를 줄이려면 자영업자간 경쟁을 줄여줘야 한다. 그럴려면 자영업자도 쉽게 임금노동자가 되게 해야 한다. 현실은 쉽지 않다. AI(인공지능), 기계와 인간이 노동시장에서 경쟁한다. 기계는 무어의 법칙(마이크로칩의 밀도가 18개월마다 2배로 늘어난다는 법칙)을 따라 경쟁력이 높아지는데, 인간은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


기계의 발전은 어쩔 수 없다지만, 업종과 기업 규모를 가리지 않고 적용되는 최저임금 인상, 중대재해처벌법 등 고용에 대해 리스크를 높이는 규제, 인과관계를 따지지 않고 관리자 등 사측을 비난하고부터 보는 문화는 고용을 주저하게 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근로자들을 보호한다는 취지에 공감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노조는 기본적으로 내부자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집단이기 때문에 그들이 임금근로자의 권익을 최우선시하는 행태도 비난할 수 없다. 하지만 자영업자들의 입장에선 임금근로자로 가기 위한 장벽만 더 높아질 뿐이다. 노조의 주장과 정부가 추구해야 할 '공익'은 구분해야 한다.

임금근로자가 돈을 더 많이 벌면 많이 써서 자영업자도 좋아진다는 주장도 동화 속에서나 통하는 논리라는 것을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실패에서 확인했다. 현실은 고용원이 있는(직원을 둔) 자영업자가 계속 줄어드는 것에서 볼 수 있듯, 오히려 자영업자의 어려움이 임금일자리를 구축(drive out)할 뿐이다. 기업이 사람을 고용하는 데 부담을 갖지 않는 사회. 진입장벽이 낮아 자영업자가 마음만 먹으면 임금노동자가 될 수 있는 사회. 그게 자영업자가 흥하는 길이다.
대출 14개를 돌려막는 흔한 사장님 이야기[광화문]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