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일본 정부가 한국 수출 규제를 선언했다. 불화수소, 불화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등 반도체·디스플레이 필수 품목들이었다. 의도는 또렷했다. 대일본 의존도가 높고, 우리는 아직 충분한 자생력을 갖추지 못했다. 모리타화학공업, 스텔라케미파 등 일본의 전문 화학기업들은 100년 역사를 자랑한다. 목하 글로벌 반도체 전쟁이 격화하는 상황, 특단이 한가하게 들릴 만한 절체절명의 위기가 들이닥쳤다. 무엇을 할 것인가.
기술 혁신의 주체는 기업이다. 발 빠른 대응에 불화수소 국산화에는 불과 1년도 걸리지 않았다. SK머티리얼즈 (402,900원 ▼10,100 -2.45%)가 고순도 불화수소(5N급) 양산에 성공했다. 중견기업 솔브레인 (288,500원 ▼3,000 -1.03%)은 12N급 고순도 불산액 생산시설을 두 배로 확대했고, 동진쎄미캠은 올해 3월 불화아르곤 포토레지스트 국산화 소식을 알렸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를 비롯한 경제단체들은 현장의 위기 요인을 넓고 깊게 수렴해 대응 방안을 강구했다. 대기업과 중견·중소기업의 상생 협력이 심화하고, 미국과 유럽 등으로 수입처 다변화도 속속 이뤄졌다.
최근 정치의 시간이 빨라지고 있다. 국가 존립의 토대이자 국민의 삶 자체인 경제의 역동성을 되살리는 숙의와 모색을 기대한다. 정권은 순환하지만 국가는 오로지 이어진다. 극복과 안도의 순간에도 산적한 숙제를 미룰 수는 없다. 고부가가치 첨단소재 분야에서 일본의 영향력은 여전하고, 반도체 장비 해외 의존도가 80%에 이를 만큼 장비 분야 국산화율은 매우 낮다. 권력과 이념의 전횡에 휘둘리지 않는 정책적 일관성, 기업의 지속적인 혁신을 견인하는 안정적인 정책 환경을 구축하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