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갇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86의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은 끊이지 않는다. 연세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비판하면서 '전두환 정권에서 판사된 사람'이라고 했다. 투기논란으로 청와대를 떠났던 김의겸 의원은 최 전 원장을 향해 '서울대 법대' '독실한 기독교인' 등을 언급하며 '구주류의 총아'라고 규정했다.
#송 대표는 5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86들의 뿌리 깊은 사고를 친절히 다시 한번 설명한다. "군사독재 시대에 입신양명 위해 사법고시 한 게 옳았나, 거리에서 민주화 위해 싸운 게 옳았나" 이어서 자신의 '사법고시'는 이렇게 설명한다. "(사시 합격생 300명이던 시절) 59등으로 합격했다. 판검사 될 줄 몰라서 안 한 게 아니라 적어도 광주시민 학살한 전두환 정권 밑에서 판검사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파시즘이 남긴 최악의 유산은 파시즘과 싸운 자들의 내면에 파시즘을 남기고 사라진다는 것"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지적은 적확하다.
#2030 소위 'MZ세대'에게 80년대는 전혀 다르다. 전두환 정권의 광주 학살과 민주화 투쟁 등이 중요치 않다는 게 아니라 논란이 안 된다. 36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광주연설'에서 "저에게 80년 광주민주화운동은 단 한 번도 광주 사태였던 적이 없고 폭동이었던 적도 없다"고 말했다. 친일논란도 마찬가지다. 친일세력이 제대로 청산 안 됐다는 사실쯤은 다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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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령군이니 친일이니 독재 잔재니 하는 논쟁을 벌이고 싸우는 건 2030에게 공감을 얻기 힘들다. 직장이 없고 살 집이 없어 아우성인데 미래는커녕 과거를 붙잡고 한심한 소리만 떠드는 꼴이다.
대선정국 초반 여야 간판 후보들이 '역사논쟁'으로 붙었다. 니체가 말한대로 신념을 가진 사람이 가장 무서울 수 있다. 믿음은 종종 진실로 가는 길을 막는다. 국민이 처한 현실을 보지 못하고 자기들만의 세계에 유폐된다.
거대담론 뿐만 아니라 정책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옳다, 할 수 있다, 유능하다는 자기최면이 부동산 참사를 불렀다. 미래를 말하지 않는 대선판이 계속된다면 기득권 세력의 미래도 없다. 구주류의 총아로 사라질 날이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