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문학동네
2020년 웹진 '주간 문학동네'에 연재한 글을 증보해 엮은 이 책엔 저들 아이돌에 관한 간단한 비평글과 QR코드를 곁들인 대표곡 리뷰를 챕터별로 첨부했다. 또 글 마지막에는 싱글과 앨범을 망라한 각 팀의 '디스코그래피'와 저자가 따로 추천하는 '김영대's 픽!'이라는 플레이리스트를 더해 '음악이란 어차피 들어봐야 아는 것'이라는 이 세계의 오래된 진리를 환기시킨다. 저자는 더불어 '케이팝 현상'이라는 대주제 아래 칼럼 아홉 편을 본글 사이사이에 배치했는데 여기엔 '케이팝이란 무엇일까'라는 개념 설명부터 'BST, 케이팝, 그리고 포스트-BTS' 같은 저자 나름의 케이팝론, '한미 합작 벤처가 말해주는 케이팝의 미래' 같은 산업 측면에서 전망 등이 포함됐다.
국내 주류 평단, 정확히는 90년대 초반부터 대중에게 감지되기 시작한 1세대 대중음악 평론가들이 아이돌 음악을 무시하고 폄하한 건 사실이다. 그 시절 아이돌 음악은 비평의 대상이 아니었고, 아이돌 음악 비평은 비평으로서 가치를 획득하지 못했다. 저자도 지적했듯 당시 아이돌은 이현도(듀스)나 서태지, 솔로 시절 신해철 정도를 제외하면 "뮤지션 혹은 아티스트라는 관점으로는 설명할 수 없거나 그러고 싶지 않은 존재"였다. 그는 그런 케이팝 아이돌 음악의 예술성에 대한 회의적 시선, 그 아래엔 필연적으로 대중음악을 '창작자' 중심으로 해석하는 로키즘적 관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책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서문에서 이 관점을 분명히 하고 글을 써나간 김영대 작가는 칼럼 '보이밴드는 왜 무시당할까: 보이밴드의 역사와 보이밴드 폄하의 맥락'과 '케이팝은 버블검 팝인가?', '작곡하는 아이돌, 전략일까 미래일까', 그리고 데이식스 비평글("록 그룹임을 명백히 표방하고 나온 아이돌에 대한 어찌보면 당연한 반발심")에까지 비슷한 주장을 일관되게 전개해나간다. 이쯤 되니 김영대 작가는 어쩌면 아이돌 음악이 천편일률적에다 수준이 낮고 창조적이지 못하며 저열한 댄스 음악일 뿐이라 여기는 "장르 음악 팬들의 곱지 않은 시선과 비아냥"을 깨부수기 위해 이 책을 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아이돌과 아티스트를 병치시킨 책 제목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김영대 작가는 나아가 록 음악이 "남성적"이고 "진지함"만 추구하는 음악이라고 얘기하고 있는데 이 역시 성급한 일반화이자 경직된 이분법이다. 록의 음악적 가치를 무조건 "태도나 정신"에만 둔다는 말도 백 보 양보해 저자가 칼럼으로 쓴 보이밴드의 역사에서나 통할 얘기지, 21세기가 21년이나 지난 지금 상황에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는 주장이다. 그가 말한 "남성적"이라는 것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세고 빠르고 거친' 록의 부분적 성향을 가리키는 말 같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이것이 편견이라는 건 더더나 자우림, 알이엠이나 오아시스 같은 국내외 유명 록 밴드들만 들어봐도 금방 알 수 있다. 또한 록이라는 장르에 주홍글씨처럼 새겨진 "진지함"이라는 편향된 이해 역시 기존 록의 진지함을 비웃으며 등장한 펑크 록을 떠올려보면 금세 균형적 사고에 이를 수 있을 부분이다.
맞다. 옛날엔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요즘 세상에 누가 아이돌(음악)을 낮잡아 보는가. 취향이 달라 즐겨 듣진 않을 수 있어도 아이돌 음악을 무조건 아래로 보는 장르적 보수 성향은 적어도 표면적으론 사라진 지 오래다. 심지어 글쓴이 주위에도 록 평론을 주로 쓰면서 아이돌 음악을 즐겨 듣는 사람들은 많다. 최소한 그들(아이돌)의 음악과 춤과 철학을 폄훼하진 않는다. 메탈리카와 레드 벨벳을, 노이즈가든과 NCT를 함께 좋아하지 말라는 법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이 시각 인기 뉴스
소녀시대가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노래' 상을 받은 지도 올해로 10년이 넘었다. 이 책에 나오는 BTS 역시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오른 'Dynamite'로 같은 시상식(제18회)에서 '올해의 노래'와 '최우수 팝 노래' 상을 받았다. 대중을 넘어 나라 차원의 관심을 받고 있는 케이팝이 정말 아이돌 음악의 다른 말이라면 지금 한국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아이돌에 열광하는 중이다. 저자도 인지하고 있듯 아티스트 역량을 갖춘 아이돌들의 등장은 이미 가속화에 접어들었다. 우리가 지드래곤이나 지코, BTS와 아이유를 가리켜 '뮤지션' '아티스트' 외 달리 부를 말이 있을까. 지금 한국인들은 아이돌도 아티스트로 볼뿐더러 이 책 같은 아이돌 비평서도 기꺼이 사서 읽는다. 시대가 변한 것이다.
또 하나, 이 책에서 아쉬웠던 부분이 있다. 바로 아이돌의 퍼포먼스 이야기다. 아이돌의 아티스트로서 매력과 의미를 대중에게 납득시키려는 목적으로 책을 쓴 김영대 작가는 역시 서문에서 "음악의 정체성과 내러티브 자체를 구축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음악과 퍼포먼스에서 예술적, 미학적 매력과 가치를 발견해내는 것이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나는 여기서 "퍼포먼스의 예술적, 미학적 매력"에 주목했다. 확실히 우리네 대중음악 비평에서(그것이 아이돌의 것이든 아니든) 퍼포먼스에 할애한 글은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저자가 NCT127의 'Cherry Bomb'에서 마지막 퍼포먼스를 설명할 때 세계적인 안무가 토니 테스타의 연출이 가진 의미(의도) 정도는 얘기해줄 줄 알았다. 예컨대 마이클 잭슨의 'Smooth Criminal' 안무 중 45도 각도로 기울어졌다 일어서는 '린 댄스' 춤에 얽힌 사연 같은 것(이 춤은 안무가 빈센트 패터슨이 의상 아래 숨겨둔 멜빵(Harness)에 반투명 실을 연결해 연출한 것이다) 말이다. 하지만 이 책 어디에도 그런 류의 해설은 없었다. 춤이 아닐지언정 엄밀한 '퍼포먼스'인 데이식스의 악기 연주에 관해서도 저자의 의견이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그는 데이식스 멤버들의 보컬 분석에만 집중했다.
결국 기대했던 저자의 춤에 대한 분석이란 "창의적이고 묘사적인 동작"이나 "반복적이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동작들을 이어나간다"식의 인상 비평에 머물러 있었다. 태민의 동작에서 "디테일과 셈여림"의 구체적인 평가 역시도 "미학적으로 우아하고 유려하다"라는 추상적 감상에 그치고 만 것이다. 역시 무리였던 걸까. 사실 저자 스스로도 자신의 '춤 비평' 한계를 지적하긴 했다.("춤 전문가도 아닌 음악평론가가 그(태민)의 퍼포먼스를 분석하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겠지만"-P.70) 그래서 나는 칼럼 '케이팝을 움직이는 숨은 주역들'에서 안무가 이야기가 빠져 있는 것, 통역가 안현모와 대담 대신 손성득(빅히트 퍼포먼스 디렉터) 등과 대담을 싣지 않은 일에 더 큰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영역이 아닌 것은 간접 인용과 직접 대화에서 얼마든지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가창이나 춤을 연주나 작곡에 비해 덜 예술적인 행위로 평가했다"는 일부 평론가들에 불만을 가진 저자 입장에서라면 더욱 그랬어야 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로써 저자가 음악적 가치로 여러차례 그 중요성을 강조한 아이돌 퍼포먼스(춤)에 대한 진지한 분석은 이후 또 다른 자신의 콘텐츠를 통해 풀어야 할 숙제로 남게 됐다.
하지만 아이돌을 아티스트로 바라보고자 하는 이 책은 그럼에도 귀하다. 설령 분석 패턴의 반복과 영어 및 전문어 혼용에 따른 용어의 비대중성으로 다소 어렵거나 지루해질 여지가 있더라도 아이돌 음악을 향한 저자의 비평가로서 진지한 접근은 마땅히 평가받아야 한다. 또한 저자가 오랜 시간 미국 현지에서 직접 보고 느낀 점들과 학문 연구를 바탕으로 칼럼들에서 쏟아낸 케이팝(내지는 세계 아이돌 음악) 전반에 대한 관점과 입장, 통찰 역시 이 책의 장점이요 강점이다. 그래서 '지금 여기의 아이돌-아티스트'는 대중음악을 아끼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읽어볼만한 책이고 케이팝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