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문고 진열대 퇴출 논란이 일었던 맥심(MAXIM) 6월호 표지 이미지
패션업계와 유통업계, 문화계까지 성차별을 뛰어넘는 '젠더리스(genderless·성별 구분이 없는)'가 대세로 부상하면서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묘사한 화보, 광고, 이미지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여성 소비자의 적극적인 요구에 여성의 섹시함을 과도하게 강조한 화보나 광고, 지나치게 마른 모델이 퇴출되고 있으며 그 영역은 맥심(MAXIM)과 같은 성인잡지 표지까지 확장되고 있다.
지난 4월 성차별 논란이 일었던 MLB의 모자 광고 이미지
젠더리스의 유행으로 여성복에서는 남성들이 주로 입던 품이 넓은 오버(큰)사이즈 재킷과 코트, 통이 넓어 몸매가 드러나지 않는 바지, 그런 재킷과 바지를 세트로 구성한 바지 세트 정장이 인기를 끌고 있다. 신발에서는 하이힐 대신 낮은 굽 스니커즈가 주력 상품으로 부상했다. 수영복 카테고리에서는 노출이 과한 비키니 보다는 모노키니, 모노키니 중에서도 신체 대부분을 가려준 디자인이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남성의 전유물이던 바지정장 슈트가 여성 대표 패션으로 자리잡았다.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자기 표현을 원하는 여성들에게 슈트의 인기는 더욱 높아지는 추세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의 브랜드 텐먼스(10MONTH)는 '마스터핏 슈트'를 비롯한 셋업 정장 매출이 올해 1~6월 전년 동기 대비 80% 껑충 늘었다.
올해 상반기 판매량이 전년비 80% 증가한 텐먼스의 여성정장 이미지
또 '여성미'의 상징이던 몸을 꽉 조이면서 주렁주렁 레이스가 달린 코르셋같은 속옷은 매출이 감소하고, 사각팬티와 와이어(철사) 없는 브라와 같은 속옷의 판매량이 급증했다.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자주(JAJU)에서는 올해 초부터 6월10일까지 와이어 없는 브라(브라렛과 브라캐미솔) 매출이 전년비 179% 증가했고 여성용 사각팬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72% 크게 늘었다. 특히 사각팬티 판매량은 삼각팬티의 판매량을 추월하기까지 했다.
이는 젠더리스와 더불어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사랑하자"는 '보디 포지티브(body positive)' 트렌드가 확산된 영향이다. 예쁘지만 몸을 압박하던 과거의 보정 속옷 대신 내몸에 잘 맞는 편안한 속옷을 찾는 여성들이 많아진 것이다. 자주(JAJU) 마케팅 담당자는 "여성용 사각팬티가 삼각팬티의 판매량을 넘어섰다는 사실은 최근의 속옷 트렌드가 건강 중심으로 바뀐 걸 보여준다"며 "여성들 사이에서 미의 기준이 달라지고 실용성을 중시하는 소비 경향이 지속되면서 편안한 여성 속옷의 인기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주(JAJU)의 여성용 드로즈 이미지
남성용 스커트와 크롭티(배꼽티)...금남의 벽 허무는 젠더리스 패션 남성패션에서도 젠더리스 바람이 강하게 불며, 2022년 S/S(봄/여름) 글로벌 명품업계 런웨이는 '젠더리스'가 장악했다. 남성 다리의 70% 이상을 드러내는 짧은 미니스커트부터 크롭티까지 등장하면서 금남의 벽을 허물었다.
지난달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프라다(PRADA)는 2022년 봄·여름 남성 컬렉션에서 남성용 미니스커트, '스코트'를 공개했다. 짧은 바지인 쇼츠(shorts) 위에 스커트(skirt)를 덧댄 일명 스코트(skort)라는 것이다. 사실상 겉으로 보기엔 짧은 미니스커트나 마찬가지인 디자인으로 일반인이 보기엔 매우 파격적인 디자인이었다. 하지만 이런 디자인을 두고 외신에서는 "아직 스커트를 입기엔 준비가 안 돼서 스코트가 나왔다"고 위트있게 평하기도 했다.
프라다의 2022년 S/S 남성 컬렉션
또 다른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펜디가 지난달 공개한 2022 봄·여름 남성 컬렉션에서는 복근을 노출한 '크톱티'(배꼽티)가 등장했다. 배꼽위로 훌쩍 올라가 허리 라인까지 노출될 정도로 상의의 길이가 아주 짧았다.
펜디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실비아 벤추리니는 펜디의 2022년 S/S 컬렉션에 대해 "우리의 자유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생각이 들때마다 나는 좀더 밀어붙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이번에는 남성에게 자유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이야말로 경계를 부술 때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펜디의 2022년 S/S 남성 화보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