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의·투쟁에 절레절레…MZ, 전투적 노동운동 판 뒤집는다

머니투데이 이창명 기자 2021.07.06 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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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민주노총·한국노총 거부하는 MZ세대 (上)

편집자주 MZ세대가 노동운동의 트렌드를 바꾸고 있다. MZ세대들은 투쟁 중심의 기존 노조를 거부하는 대신 성과주의를 바탕으로 경제적 처우 개선에 주력하며 새로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상위단체 가입보다 독자적으로 운영되며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적극 활용하는 MZ세대의 노조. 노동운동에 새바람을 불러올지 주목된다.

민노총 주말 집회도 비판…'MZ세대' 노조는 달랐다
쟁의·투쟁에 절레절레…MZ, 전투적 노동운동 판 뒤집는다


이건우 현대자동차그룹 인재존중 사무연구직 노조 위원장 29세.

유준환 LG전자 사람중심 사무직노조 위원장 31세.



김한엽 금호타이어 사무직노조 위원장 34세.

박재민 코레일네트웍스 본사 일반직 노조위원장 33세.



최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간담회에 참석한 청년·사무 연구직 노조 대표자들의 프로필이다. 이들은 올해 초 주요 대기업 사무·연구직 노조를 별도로 설립해 이끌고 있다. 이들은 노조 설립과 동시에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에 참여하고 있어 노동계에서도 예의주시한다. 무엇보다 입사 5년차 내외 사무·연구직 직장인들이 중심에 선 노동운동은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경사노위도 이들을 공식적으로 'MZ세대(Millennials and Gen Z, 1980년 이후~2000년대초 출생한 20~30대) 노조' 라고 언급했다.

MZ세대 노조를 이끄는 이들의 특징은 우선 이번 노조설립 이전까지 적극적으로 사회적 목소리를 내본 경험이 없다는 점이다. 이들과 함께 경사노위 대화에 참여한 손보영 노무사(대상 노무법인)는 "지금까지 기성세대의 노동운동은 대학교에 다니면서 경험한 학생운동이 노동운동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 측면이 있었다"며 "하지만 최근 MZ세대의 노동운동을 이끄는 이들은 이런 학생운동 경험이 없다"고 말했다.

손 노무사는 "청년 사무·연구직 노조 대표들을 보면 대부분 직장에 다니기 전까지 자유롭고 평범한 생활을 해왔다"며 "그런데 막상 사회생활을 해보니 자신들이 그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해온 공정함이나 합리적인 기준이 현실과 간극이 크다는 점을 느끼고 노동운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기존 생산직 노조 중심의 노동운동에 비판적인 점도 이들의 특징이다. 입사 4년차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유준환 위원장은 "LG전자 내부에선 그간 사무·연구직들이 쌓여왔던 불만들이 많았다"며 "생산직 노조 중심으로만 목소리가 나오다보니 그 누구도 사무·연구직을 대변해줄 수가 없었고, 그만큼 생산직 노조와 사무직 사이에 불신이 깊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김한엽 위원장은 "사무직들 사이에 생산직 조합원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는가란 의문이 있다"면서 "생산직 노조가 자신들의 조합원을 보호하는 수준으로 사무·연구직까지 보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생산직 노조가 사무직 목소리 내주기 어려워"…높은 사회적 비용 감내하는 노조운동에 회의적

실제로 지난달 25일 경사노위 간담회에서 문성현 경사노위위원장을 만난 청년 사무·연구직 대표들은 생산직과의 역차별 문제를 거론했다. 이들은 "현재 사무·연구직은 생산직에 비해 임금과 근로조건에서 홀대를 받고 있다"며 "사무·연구직은 기업의 고용전략에 따라 40대 초중반에 퇴사한다. 구조적으로 청년이 노조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또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 같은 상급단체 가입에 소극적인 점도 이번 MZ세대 노동운동에서 나타난 특징으로 꼽힌다. 김 위원장은 "금호타이어 생산직 노조의 경우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이지만 지회가 우리를 보호해주지 않고 있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창구부터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며 "상급단체 가입 가능성 자체를 닫아두진 않았지만 현재로선 우리와 회사에 모두 이익이 되는 사안에 대한 문제 논의에 더 집중하려고 한다"고 했다. 그는 지난 주말 민주노총의 기습집회에 대해서도 "사회적 공감대를 얻기 어려운 집회"라고 비판했다.

유 위원장도 "민노총이나 한노총 등 현재 상위단체 가입에 대해선 현재 깊게 논의하지 않고 있고, 가입한다 하더라도 한노총이나 민노총이 아닌 제3의 상위단체일 수 있다"며 "우리 노조는 노사간 건전한 관계를 이어갈 대화창구를 만들자는 취지이지, 쟁의나 투쟁으로 경영진에 타격을 주겠다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만큼 투쟁적 노동운동에 대해서도 거리를 둔다. 사무·연구직 노조 대표들은 경사노위에서 "현시점에서 높은 사회적 비용을 감내해야 하는 전투적 노조운동이 과연 합리적인지 회의적"이라며 "노조운동의 패러다임이 이제 바뀔 때가 됐다"고 입을 모았다.

이에 대해 경사노위 관계자는 "MZ세대의 노동운동이 기존의 노동운동과 다른 지향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앞으로 이런 새로운 노동운동이 노노 갈등으로 이어지기보다 경제와 사회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다같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방적 투쟁 거부 'MZ세대' 노동운동, 주류로 자리잡을까
(서울=뉴스1) 박정호 기자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지난 3일 오후 서울 종로3가 거리에서 전국노동자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코로나19 델타변이 확산에 따른 정부의 집회 자제 및 엄정대응 방침에도 민주노총은 Δ산재사망 방지 대책 마련 Δ비정규직 철폐, 차별 시정 Δ코로나19 재난시기 해고 금지 Δ최저임금 인상 Δ노조할 권리 보장, 5가지를 요구하며 대규모 집회를 강행했다. 2021.7.3/뉴스1  (서울=뉴스1) 박정호 기자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지난 3일 오후 서울 종로3가 거리에서 전국노동자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코로나19 델타변이 확산에 따른 정부의 집회 자제 및 엄정대응 방침에도 민주노총은 Δ산재사망 방지 대책 마련 Δ비정규직 철폐, 차별 시정 Δ코로나19 재난시기 해고 금지 Δ최저임금 인상 Δ노조할 권리 보장, 5가지를 요구하며 대규모 집회를 강행했다. 2021.7.3/뉴스1
MZ세대의 노동운동을 바라보는 전문가들은 새로운 흐름 자체가 신선하고, 기존 노동운동의 문제점을 잘 드러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청년 사무·연구직 노조 대표들과 함께 대화에 참여한 손보영 노무사는 "그동안 젊은 세대들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불합리하고 불공정하다고 느낀 점들은 많았지만 경험이 부족해 나설 수 없었다"며 "하지만 이번엔 본인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가 있다는 점을 깨닫고, 기성세대의 전유물이라 여겨온 노동운동에 스스로 나선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손 노무사는 "기성세대가 노동운동을 통해 잘 만들어놓은 제도들이 많다"면서 "젊은 세대들이 이를 재해석해서 잘 활용하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기존 노동운동이 사회 전반으로 확장하지 못한 한계가 MZ세대의 사무·연구직 노조 활동으로 나타났다는 분석도 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1987년 이후 생산직 중심의 노동운동이 많은 성과도 냈지만 대다수가 누리지 못하고, 제한된 10% 이내에 머물렀다는 한계가 있었다"며 "생산직 중심의 노동운동이 많은 것을 이뤘지만 그 결실이 모든 곳에 스며들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경제분야에서 말하는 '낙수효과'처럼 노동운동도 '낙수효과'가 필요한데 기존 노동운동은 사회 전반에 확장하기 위한 정책적 혹은 제도적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며 "결국 자신의 이해만 대변하다보니 상대적으로 더 나은 조건의 사람들이 혜택을 더 받는 모순이 생겼고, 사무·연구직의 불만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넥타이 맨다고 대접받는 사회 아냐"…MZ세대 노동운동 사회적 메시지 없인 한계

사무·연구직인 화이트컬러와 생산직인 블루컬러간 임금이나 근로조건 등의 격차가 좁혀지거나 역전되면서 자연스럽게 MZ세대의 노조설립으로 이어졌다는 해석도 있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경영학과 교수는 MZ세대의 노동운동을 "이제 더 이상 넥타이 맨다고 대접받는 사회가 아니라는 것"이라고 요약했다.

정 교수는 "예전엔 사무·연구직들이 노동운동이나 노조 설립에는 관심도 없었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며 "하지만 이젠 노조가 있는 회사 내에선 생산직의 영향력이 사무·연구직보다 크고, 근로조건도 나아지면서 상대적으로 사무·연구직이 자기 권리를 찾기 위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젊은세대가 강조하는 공정성이 노동운동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봤다. 이 교수는 "MZ세대의 노동운동은 기존 기성세대의 인적대체에 머무르지 않는다"며 "MZ세대는 특히 자기 노력이나 실력에 맞춘 보상 등을 노조활동을 통해 가능하다고 바라보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청년 사무·연구직이 자신만을 위한 임금상승이나 복지실현 등에만 머무른다면 한계도 분명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사무·연구직 노동운동이 지속성을 담보하려면 독자적이고 일관적인 정책방향과 조직을 갖춰야 한다"면서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기존과 다른 새로운 사회적 메시지를 갖춰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조직이 유지되기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어떤 노동운동이든 그들 세대의 이익을 기초해서 나타나는 것은 자연스럽다"면서도 "하지만 노동운동이 이기적인 형태로만 이어진다면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상실하거나 설 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정 교수도 "노조는 이익집단 만은 아니다"라면서 "임금이나 복지 차원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없이 실리만 추구하는 노동운동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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