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 늘리기 급급…4200억 '도로 위 아파트', 6평 원룸 70%

머니투데이 유엄식 기자 2021.07.0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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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간선도로 입체화 후 오픈 스페이스, 입체 보행로, 생활SOC 및 청신호주택 등이 조성된 상상도. /사진제공=SH공사북부간선도로 입체화 후 오픈 스페이스, 입체 보행로, 생활SOC 및 청신호주택 등이 조성된 상상도. /사진제공=SH공사


서울시 예산 약 4200억원을 투입해 국내에서 처음 시도하는 '도로 위 아파트'의 전체 가구 70% 이상이 전용 면적 20㎡짜리 '원룸형'으로 나타났다. 법정 1인 가구 최저 주거면적(14㎡)은 넘지만, 임대주택 품질과 공간을 개선한다는 정책 방향과 부합하지 않고 공급량을 부풀리기 위한 설계라는 비판이 나온다.

신내4구역 공공주택단지, 1인 가구용 전용 20㎡ 70% 이상 배치 계획
7일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시행하는 서울 중랑구 '신내4구역 북부간선도로 입체화 사업' 공공주택 단지는 총 990가구 중 최소 693가구(70%)를 전용 20㎡ 원룸형 주택으로 설계했다. 나머지 30% 물량 중 일부는 전용 42㎡, 전용 53㎡로 공급될 예정이다.



이곳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도로 상부를 덮은 '인공대지'에 주택과 기반시설, 공원 등을 조성하는 사업지다. 북부간선도로 신내IC~중랑IC 구간 500m 상부에 조성한 약 2만5000㎡ 규모 인공대지를 만들어 주변 약 3만3000㎡ 규모 창고부지, 1만7000㎡여 규모의 완충녹지와 동시에 활용한다.

서울시는 이번 사업을 위해 지난달 일대 약 7만5000㎡ 부지를 공공주택지구로 지정하는 계획을 승인했다.



인공대지 조성과 주변 부지 보상에 2555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향후 주택과 기반시설 등 건축물 공사비까지 더하면 약 4200억원의 예산이 사용될 전망이다.

서울시는 개발 구상을 최초 공개한 2019년 9월 당시 "공급물량에 치중했던 기존 공공주택 정책에서 벗어나 '도시 재창조' 관점에서 주민의 삶의 질과 미래도시 전략까지 고려한 대표적인 공공주택 혁신모델"이라며 "공공주택의 품격을 향상시키고 도시의 입체적인 발전을 이끌어내겠다"고 강조했다.

신내4지구?인공대지?신내역을 연결하는 입체보행로 및 청년 창업기능을 갖춘 복합업무시설이 조성된 가로환경 상상도. /사진제공=SH공사신내4지구?인공대지?신내역을 연결하는 입체보행로 및 청년 창업기능을 갖춘 복합업무시설이 조성된 가로환경 상상도. /사진제공=SH공사
원룸 넘치는데 또 원룸 공급?…공급 숫자 부풀리기 지적도
하지만 이곳에 들어설 주택 세부 면적이 알려지자 수요자들 사이에선 비판이 나온다. 온라인 부동산 카페에선 "원룸은 넘치는데 비싼 돈 들여 또 원룸만 공급한다", "혼자 살더라도 좀 크게 지어줘라. 전용 20㎡은 독방 크기", "요즘 신혼부부는 전용 30~40㎡ 주택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다.


SH공사는 소형 위주 주택 배치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SH공사 관계자는 "신내4 공공주택지구는 애초 청년 1인 가구와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한 소형 주택 단지로 설계됐다"며 "신혼부부는 전용 42㎡, 전용 53㎡으로 공급돼 실제 거주 환경이 좁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곳은 주택 외에도 공원, 기반시설 등 복합 단지로 설계된 것이 특징이며 입지상 수요자도 많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SH공사의 설명이 틀린 것은 아니다. 현행법에 따르면 인공대지 위에는 공공임대 주택만 공급이 가능하며, 신내4구역은 행복주택 공급 용지로 승인돼 전용 60㎡ 이하 주택만 지을 수 있다.

하지만 공급량에만 치중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대책은 정부와 서울시가 서울 도심 주택공급 확대를 강조한 8.4 공급대책 이후 발표됐다. 서울시가 당시 그린벨트 추가 해제에 반대해 시내 가용한 부지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약 1000가구의 공급량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1인 가구가 많이 늘었기 때문에 이들을 위한 주택 공급은 중요한 과제가 됐지만 주거 트렌드 변화도 반영해야 한다"며 "임대주택이라고 질보다는 공급 숫자에만 초점을 맞춘 정책은 수요자들 반감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1·19 전세대책 발표 이후 중형임대(질좋은 평생주택)를 강조하면서 이번 사업의 빛이 바랬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시와 SH공사도 이런 정책 취지를 반영해 올해부터 무주택 중산층 대상 매입임대주택을 전용면적 50㎡ 이상으로 설정하고 매입금액 상향가도 6억5000만원으로 확대했다.

한편 신내4구역에 짓는 도로 위 아파트는 이달 중 주택건설 사업계획 승인 절차를 거쳐 내년 상반기 착공해서 2025년 준공할 예정이다.
국내 첫 도로 위 아파트가 조성될 예정인 중랑구 신내4구역 위치도. /사진제공=SH공사국내 첫 도로 위 아파트가 조성될 예정인 중랑구 신내4구역 위치도. /사진제공=SH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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