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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은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듯 몰아붙였다"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1.07.02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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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기자가 판다/이재용, 물산합병 7대 쟁점 ](7·최종회(하))현장기자가 10년 지켜본 '프로젝트G'의 실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오후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이기범 기자 leekb@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오후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전현직 임원 11명에 대한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등에 대한 재판의 초반부는 '프로젝트G'를 작성한 전 삼성증권 직원 한모 부장에 대한 증인심문에 집중됐다. 현재 250여명의 증인신청 상황에서 증인 1인에 대해 한달여에 걸쳐 5차례 심문절차를 진행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검찰은 '프로젝트 G(Governace: 지배구조)가 경영권 승계 계획안으로 마련됐으면 이를 기반으로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형태의 기업 합병이 이뤄졌다고 주장한다. 반면 변호인 측은 2012년 대선정국 당시 주요 대선후보들의 경제민주화 공약에 대한 대비책 마련으로 통상적인 기업경영활동으로 일환이라는 입장이다. 당시 현장에서의 취재경험을 토대로 어느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는지를 살펴봤다.<상편에 이어서 계속>

동반성장과 순환출자 해소 압박에 잇딴 기업매각에 나선 삼성
2011년부터 본격화된 시스템통합(SI) 업체에 대한 공공입찰 참여 규제 보도들/사진제공: 네이버 뉴스 캡쳐2011년부터 본격화된 시스템통합(SI) 업체에 대한 공공입찰 참여 규제 보도들/사진제공: 네이버 뉴스 캡쳐


최지성 실장은 "삼성SDS로부터 SI가 중기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 국내 정부공공물량의 입찰에 참여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보고를 받고, 그 대안이 SDS의 상장을 통한 해외진출이라는 분석에 따라 관련 방안을 미래전략실에서 함께 고민했고 이를 이 회장께 보고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에버랜드의 경우도 바이오 산업 등 미래 신성장동력 발굴을 위해서는 상장을 통한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경영진의 판단을 반영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회장께서 삼성SDS와 에버랜드 상장을 꺼리신다는 얘기를 듣고 있던터라 2014년초 조심스럽게 해당 기업들의 경영진들의 의견과 이사회 의견을 포함해 현재의 상황을 충분히 설명하고, SDS와 에버랜드의 상장의 필요성을 말씀드렸더니 재가를 하셨다"고 했다.

이 회장에게 두번씩 승인 받은 지배구조 개편안
재가를 받은 후에도 최 실장은 확실히 해놓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 회장에게 2차례 컨펌(승인)을 받았다고 했다. 회장이 쓰러지기 4개월 전인 2014년 1월~2월 일본에 있는 이 회장에게 보고하고 승인을 받았던 것이 첫번째이고, 다시 한번 이 회장이 귀국했을 때 상장계획을 4월에 보고해 2번째 확답을 받은 것이다. 이런 절차를 거친 이유는 이 회장이 에버랜드와 SDS 상장을 꺼린다는 얘기를 들어온 터라 확실히 해놓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고 했다.

최 실장은 2014년초 당시 상황을 2015년초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42층 자신의 집무실에서 기자에게 이렇게 설명했다.(그 자리엔 다른 동반자 1명도 함께 배석했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미국과 일본을 오가며 요양과 경영구상을 마친 후 2014년 4월 17일 오후 서울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는 길에  최지성 삼성 미래전략실장(오른쪽에서 두번째)의 영접을 받고 있다. 이 회장은 귀국 전에 일본 현지에서 최 실장 등으로부터 그룹 지배구조 개편 등에 대한 보고를 받고 이를 승인했다. /사진=머니투데이 DB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미국과 일본을 오가며 요양과 경영구상을 마친 후 2014년 4월 17일 오후 서울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는 길에 최지성 삼성 미래전략실장(오른쪽에서 두번째)의 영접을 받고 있다. 이 회장은 귀국 전에 일본 현지에서 최 실장 등으로부터 그룹 지배구조 개편 등에 대한 보고를 받고 이를 승인했다. /사진=머니투데이 DB
"2014년 1~2월 이 회장이 일본에 체류했을 때 장충기 미래전략실차장(사장), 김종중 전략1팀장(사장) 등과 함께 사업재편과 지배구조개편과 관련한 중장기 플랜을 들고 일본으로 가서 첫번째 보고를 해 승인을 받았다. 그 후 회장께서 4월에 귀국했을 때 다시 한번 '에버랜드와 SDS를 상장하려고 합니다'라고 하자 이 회장이 '지난 번(1월)에 하라고 했잖아'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최 실장은 조심스럽게 "회장께서 상장을 꺼리신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라고 하자 "누가 그래?, 계획대로 진행해!"라는 약간은 짜증 섞인 이 회장의 답을 들었다고 생생하게 기억했다.

이 이야기는 상장과 합병이 지금과 같은 논란이 되기 훨씬 전에 들은 내용이다. 이 같은 이 회장의 재가로 삼성SDS와 에버랜드의 상장,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은 각사의 이사회 승인을 거쳐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당시 최 실장은 "나는 이건희 회장의 비서실장이다. 이 결정은 (2년 전 상장하지 않겠다고 했던) 이 부회장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회장의 결정사항이었다"고 말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 증세를 일으켜 병원에서 응급 심장시술을 받은 가운데 2014년 5월 11일 오후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내원객들이 뉴스를 지켜보고 있다. /사진=이기범 기자 leekb@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 증세를 일으켜 병원에서 응급 심장시술을 받은 가운데 2014년 5월 11일 오후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내원객들이 뉴스를 지켜보고 있다.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최 실장에게 2014년 5월 10일 이 회장이 쓰러진 후에도 기업매각과 상장 등을 이렇게 빨리 할 수 있는 이유를 물었다.

최실장은 "(만약 회장의 재가가 사전에 없었다면) 회장께서 어느 순간 깨어나서 '누가 이렇게 하라고 했어?'라고 하면 그걸 견딜 수 있는 월급쟁이는 없다. 한순간에 집에 가야 한다. 회장의 재가가 있어서 빨리 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던 기억이다. 그러면서 "회장께서 쓰러지기 한달전부터 사업재편 등에 대해 유독 몰아붙이고 서두르셨다. 지금 생각해보니 당시 자신에게 다가올 운명을 느끼신 게 아닌가 할 정도였다"고 소회했었다.

이 회장이 쓰러진 후 이 부회장이 서둘러 상장과 합병을 했다는 검찰의 주장과는 다른 내용이다. 또 2015년말에서 2016년초로 기억한다. 이 회장의 와병이 2년으로 길어지면서 안정적인 기업운영을 위해 '이 부회장의 회장 승진'에 대한 건의가 있었다.

최 실장이 "이제는 천운에 맡기고 안정적인 기업경영을 위해 회장에 취임하는 게 좋겠다"고 이 부회장에게 '회장 승진' 의견을 전달했지만, 이 부회장은 "회장님이 아직 와병 중이신데 제가 어떻게 그 자리에 이름을 올리겠습니까. 예(禮)에도 맞지 않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법적으로 문제가 돼 지주회사는 못합니다"
2013년 1월 미래전략실 전략1팀장(전자계열사 담당)으로 자리를 옮긴 김종중 당시 사장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2013년 발령을 받았을 때는 이미 지배구조 개선 검토안이 발주가 돼 있었다"고 기억했다.

그는 기업 현안은 수시로 검토하고 다시 보는 과정을 거쳤고, 그 과정에서 기자와도 몇가지 사안에서는 연결된 부분도 있었다.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직후인 2014년 6월경의 일이다. 증시에선 이 회장의 와병 상황에서 삼성의 지주회사 전환 가능성에 대한 이슈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각종 증권사 리포트에서는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안에 대한 다양한 시나리오가 나오던 시점이었다. 법률적인 부분을 감안하지 못한 채 잘못 분석한 리포트는 시장이 열리지 않는 토요일에 몰래 수정 리포트가 나오기도 하던 시기다.

2011년부터 시중에서 퍼진 삼성의 지주회사 전환 등 다양한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시나리오를 보도한 뉴스 제목들/사진제공=네이버 뉴스 캡쳐2011년부터 시중에서 퍼진 삼성의 지주회사 전환 등 다양한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시나리오를 보도한 뉴스 제목들/사진제공=네이버 뉴스 캡쳐
김 사장은 지인인 증권사 CEO에게 삼성전자 지주회사 전환을 검토하지 않는데, 왜 증권사에서는 그런 리포트를 계속 내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고 했다. 그 때 해당 증권사 CEO는 "우리도 지주회사로 전환되지 않을 것을 안다. 하지만 시장은 이벤트를 원한다. 그래서 가능성은 희박하더라도 그 이벤트에 집착하는 것이다. 이해해달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전해들었다.

SK그룹 지배구조 개편에 참여했다가 퇴직한 이모 부사장이 머니투데이 증권부장을 통해 만남을 요청해온 것도 그 때쯤이다. 이모 부사장을 사무실에서 만났더니 대뜸 "삼성의 지주회사 전환 시나리오를 갖고 있으니 삼성 쪽과 연결을 시켜줄 수 없겠느냐"는 질문을 했다.

그래서 "직접 연락하셔서 만나면 되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연락되는 연결고리가 없다"고 당부를 해왔다. 그 시나리오라는 것을 주면 전달을 해주겠다는 것으로 만남을 마무리했고, 그가 준 지주회사 전환 시나리오를 김 사장에게 전했더니 검토하겠다고 한 후로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리고 한달 쯤 후 검토해봤느냐고 묻자 김 사장은 "그 분이 공부는 열심히 하신 것 같은데 허점이 있습디다. 법적으로 안되는 고리가 있더군요"라고 했다. "이 모 부사장에게 어떻게 얘기했느냐"고 했더니 "고생하셨다며 점심 한끼 대접했다. 법률적으로 안되는 건 우리는 할 수 없다, 법을 지키면서 지배구조를 바꿔나가야 한다"고 했던 게 그의 말이다.

프로젝트G는 그렇게 하나하나씩 삼성 그룹의 사업구조 개편과 정부의 정책에 부응하면서 다듬어져 나갔다.

물산합병과 지분 정리 등의 과정을 거친 후 만난 최 실장에게 "더 정리할 것이 남은 것이 있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는 "정부가 요구한 순환출자고리의 큰 줄기는 많이 끊어 7개 정도로 줄였다. 이제는 잔가지치기만 하면 된다"며 성과에 자랑스러워 하는 빛이 역력했던 기억이 있다.

지주회사의 마법...대주주 지배력이 강화되면 불법인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20년 10월 13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ASML 본사를 찾아 EUV 장비를 살펴보는 모습. 왼쪽부터 ASML 관계자 2명,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장 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피터 버닝크(Peter Wennink) ASML CEO, 마틴 반 덴 브링크(Martin van den Brink) ASML CTO./사진제공=삼성전자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20년 10월 13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ASML 본사를 찾아 EUV 장비를 살펴보는 모습. 왼쪽부터 ASML 관계자 2명,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장 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피터 버닝크(Peter Wennink) ASML CEO, 마틴 반 덴 브링크(Martin van den Brink) ASML CTO./사진제공=삼성전자
검찰은 삼성그룹의 지배구조개선 작업을 이 부회장의 경영권 지배력을 높이기 위한 승계 계획안이라고 주장해왔다. 반면 이 부회장 변호인 측은 규제 강화를 대비한 정상적인 기업 활동으로, 그 결과 이 부회장의 지배력이 강화됐다 하더라도 그것을 범죄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 과정에서 대주주의 지배력이 강화되는 것이 불법이라고 한다면, 지주회사로 전환한 많은 기업들도 불법을 저지른 것이 되기 때문이다.

보통 대주주가 20% 지분을 갖고 있던 회사를 지주회사로 전환하면 그 과정에서 지배력이 2배 이상(지분율 40~50%) 높아지는 '지주회사의 마법'이 존재한다.

대주주가 20% 지분을 가진 A사를 인적 분할할 경우 지주회사 A'와 사업자회사 A''에는 대주주의 지분이 각각 20% 존재하게 되는데, 사업회사인 A'' 지분 20%를 지주회사 A'에 현물출자해 A'의 지분을 추가로 확보해 지배력을 높이는 형태다.

정부가 기업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지주회사로 전환하라고 하는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대주주의 지배력 강화로 이어진 경우다.

삼성의 순환출자 구조 해소와 일감몰아주기 해소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요구에 응해 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이 부회장의 지배력이 강화된 것을 두고 불법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는 게 변호인 측의 설명이다.


검찰의 주장과 달리 이 부회장으로의 사실상 경영권 승계는 이미 1996년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당시 끝났다. 사업구조개편 및 지배구조 개편은 생전 이건희 회장의 지시에 따라 이뤄졌고, 이 회장이 쓰러진 후에도 그 계획은 착실히 진행됐다. 2012년부터 올해까지 10년 동안 이어져온 프로젝트G와 관련한 논란을 현장에서 지켜본 기자 입장에서는 그렇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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