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의 이재용 "삼성SDS, 에버랜드 상장 계획 없다"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1.07.02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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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기자가 판다/이재용, 물산합병 7대 쟁점 ](7·최종회(상)) 현장기자가 10년 지켜본 '프로젝트G'의 실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오후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이기범 기자 leekb@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오후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전현직 임원 11명에 대한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등에 대한 재판의 초반부는 '프로젝트G'를 작성한 전 삼성증권 직원 한모 부장에 대한 증인심문에 집중됐다. 현재 250여명의 증인신청 상황에서 증인 1인에 대해 한달여에 걸쳐 5차례 심문절차를 진행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검찰은 '프로젝트 G(Governace: 지배구조)가 경영권 승계 계획안으로 마련됐다며 이를 기반으로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형태의 기업 합병이 이뤄졌다고 주장한다. 반면 변호인 측은 2012년 대선정국 당시 주요 대선후보들의 경제민주화 공약에 대한 대비책 마련으로 통상적인 기업경영활동으로 일환이라는 입장이다. 당시 현장에서의 취재경험을 토대로 어느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는지를 살펴봤다.



프로젝트G란 무엇인가
그룹 지배구조 개선 방안인 '프로젝트G'의 주요 현안 목료/자료출처: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그룹 지배구조 개선 방안인 '프로젝트G'의 주요 현안 목료/자료출처: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김순택 삼성 미래전략실장의 뒤를 이어 2012년 6월 실장에 임명된 최지성 부회장은 그해 하반기 대선정국에서 불거진 경제민주화 공약으로 '금산분리 강화', '순환출자 해소', '일감몰아주기 규제' 등이 제기되자 이와 관련한 현안 점검 지시를 내렸다.



이같은 지시에 따라 그해 10~12월 사이에 만들어진 ''그룹 지배구조 개선방안 검토' 보고서가 언론 등에서 '프로젝트 G'(삼성증권 내부 작업 당시 파일명)로 불린 것이다. 문건은 '본문 190쪽, 별첨 포함 시 368쪽'으로 총 6개 현안에 대한 검토 보고서다.

여기에는 ▲삼성SDS와 삼성전자 합병(일감몰아주기 대응), SNS(구 서울통신기술)와 전자 합병(일감몰아주기 대응), 합병전 SNS 유상감자 ▲물산과 에버랜드 합병(일감몰아주기, 물산 지배력 확대), 회장님 토지와 에버랜드 자사주 교환 ▲대주주, SDI 보유 물산지분 매입(순환출자 해소), 재단이 매입하는 안 ▲모직 분할 및 합병(사업조정, 모직 지배력 확대) ▲삼성전자, 삼성생명 보유 지분을 자사주로 매입(금산 분리), 물산이 생명 보유 전자 지분을 매입하는 안 ▲금융지주회사 설립(금산 분리) 등의 방안이 담겨 있다.

이 방안들 중에 실제 실행된 것과 상황에 따라 실행되지 못한 것이 있다. 삼성SDS와 삼성전자 합병, 삼성전자의 삼성생명 보유 지분 자사주 매입, 금융지주회사 설립은 현재까지 실현되지 못한 검토안이다.


삼성물산과 에버랜드의 합병, 대주주의 SDI 보유 물산지분 매입, 모직분할 및 합병은 실행된 안이다. 총 6개 현안 검토 내용 중 절반이 실행, 나머지 절반은 미실행된 내용이다. 검찰은 실행된 것을 두고 이재용 부회장으로의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한 실행방안을 현실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삼성과 이 부회장 변호인 측은 기업이 대외 변수에 대응하기 위한 통상적인 기업활동으로서의 지배구조개선 방안 검토보고서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2012년 그 당시 무슨 일이 있었나?
2012년 2월 8일자 머니투데이 보도 내용2012년 2월 8일자 머니투데이 보도 내용
삼성SDS와 에버랜드 상장 발표 2년 전 2012년 2월 6일 퇴근길 삼성 서초 사옥 로비에서 이 부회장(당시 사장, COO)을 만났다.

이 부회장은 당시 장외시장에서 핫이슈가 되고 있던 삼성SDS의 상장설에 대해 "현재 삼성SDS와 삼성에버랜드의 상장 계획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상당히 오랜 기간 상장할 계획은 없다"고 설명했다.

당시 장외시장에선 이 부회장이 상속세 마련을 위해 삼성SDS를 상장할 것이라는 루머가 떠돌면서 삼성SDS 장외주가가 급등하던 시기다.

상장 계획이 없다는 점을 강하게 시사한 이유에 대해 이 부회장은 "최근 장외 시장에서 삼성SDS의 연내 상장 루머가 퍼지면서 잘못된 정보를 접한 소액주주들이 손해를 볼 수 있어 이를 막기 위해 상당기간 상장할 계획이 없음을 밝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부회장은 당시 여론의 방향에 신경을 많이 썼다. 부당한 이익을 챙긴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 SDS의 장외 시장의 주가가 오르는 것에 대해 경계하고 부담스러워했다. 그래서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상장계획이 없음을 알리고 싶어 기자를 만났던 것이다.(관련 기사 참조)

당시 그외의 대화는 이건희 회장의 건강에 대한 것이었다. 2009년 이건희 삼성 회장이 입원했던 단독기사를 쓴 적이 있어 이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2009년 3월 19일 이건희 삼성 회장이 일본에서 귀국한 후 기관지염으로 입원했던 당시 머니투데이 단독보도.2009년 3월 19일 이건희 삼성 회장이 일본에서 귀국한 후 기관지염으로 입원했던 당시 머니투데이 단독보도.
"이 회장 건강은 어떠시냐"는 질문에 이 부회장은 "당뇨가 심하신데도 의사들의 지시를 잘 듣지 않아 걱정이다. 식단 조절을 하라는데 하지 않는다"며 기자에게 "이 회장에게 식단 조절을 잘 좀 하시라고 말해달라"고도 했다.

당시 이 회장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던 기자가 "그럼 기사로 식단 조절하시라고 쓰겠다"고 농담을 던졌더니 손사례를 치며 말렸던 기억이다.

이 회장은 유독 면류(특히 라면)를 저녁에 먹기를 좋아했고, 2년 후인 5월 10일 저녁 8시경 국수를 먹은 게 체한 것 같다며 비서에게 등을 두드려달라고 하고, 소화제 등을 먹은 얼마 후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

이 회장의 결정으로 삼성SDS의 상장 발표를 한 5월 8일로부터 이틀 뒤의 일이다. 2012년 2월경에는 이 부회장이 삼성SDS와 삼성에버랜드 상장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점과 2012년 10~12월 사이에 미래전략실이 이 부회장의 생각과는 상관 없이 기업지배구조개선 방안 검토에 들어갔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이건희 회장의 지시 아래 2년 후 삼성SDS와 에버랜드 상장이 추진된 것이 기자가 아는 사실이다.

"이 회장님은 에버랜드 상장을 싫어하십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사진 왼쪽부터)과 홍라희 여사가 2011년 9월 27일 오전 김포공항 국제선 출국장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 김순택 삼성 미래전략실장 부회장의 배웅을 받으며 북미시장점검을 위해 출국하고 있다. /사진=머니투데이 DB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사진 왼쪽부터)과 홍라희 여사가 2011년 9월 27일 오전 김포공항 국제선 출국장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 김순택 삼성 미래전략실장 부회장의 배웅을 받으며 북미시장점검을 위해 출국하고 있다. /사진=머니투데이 DB
그 얼마 후의 일이다. 당시 미래전략실장이었던 김순택 부회장과의 저녁 자리에서 "얼마 전 이 사장(현 부회장)을 만났더니 에버랜드와 SDS 상장을 안한다고 하던데 변한 게 없냐"고 물었다.(삼성 미래전략실장들이나 전략팀장과의 만남은 대부분 오프 더 레코드를 전제로 한 만남이었기 때문에 대화내용을 직접 커멘트로는 당시 기사화하지는 못했고 다른 기사에 간접적으로 상황과 분위기를 전하는데 활용했다.)

김 실장은 "이 회장님이 에버랜드와 SDS 상장을 싫어 하신다"고 했다. 그래서 상장 계획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고 했다. 지주회사격인 에버랜드가 1996년 발행한 CB의 상당수를 이재용 부회장이 인수함으로써 이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는 당시 사실상 마무리된 상태였다. 삼성에버랜드가 삼성생명을, 삼성생명이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그룹의 핵심 지배구조의 정점에 이 부회장이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를 두고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2000년 소송을 제기하면서 이 회장은 2009년 대법원 무죄판결이 나올 때까지 10년간 논란 속에 휩싸였었다. 그러니 상장으로 다시 한번 더 언급되는 것을 당시엔 원치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당시 16억원의 증여세만 내고, 삼성그룹을 통째로 삼켰다는 비난이 일기도 했다. 이 부회장 가족들은 최근 이 회장의 미술품 포함 약 20조원 달하는 상속세 및 기부를 했다.)

김 실장은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은 2012년 6월 미래전략실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에게는 10년 장기 집권의 전임 이학수 삼성 전략기획실장에 이은 구원투수로서의 가교역할이 주어졌고, 그 임무가 예상보다 일찍 끝났다고 이 회장이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2010년 11월부터 햇수로는 3년이지만 만 2년이 못된 2012년 6월 물러났고, 그 과정에서 커피숍과 빵집 등 일감몰아주기 논란으로 호텔신라의 아티제와 MRO(자재구매대행)인 아이마켓코리아 등을 정부의 압박에 의해 매각하는 과정을 거친 후였다. 예상보다 이른 퇴진은 김 실장에게는 천운이기도 했다.
2012년 4월 13일과 24일에 진행된 삼성의 MRO 업체인 아이마켓코리아의 매각과 호텔신라의 자회사인 보나비가 운영하는 아티제 매각 보도 내용. 이명박 정부는 대기업들에게 동반성장을 이유로 많은 기업들의 매각을 압박했다./사진=머니투데이 홈페이지 기사 캡쳐.2012년 4월 13일과 24일에 진행된 삼성의 MRO 업체인 아이마켓코리아의 매각과 호텔신라의 자회사인 보나비가 운영하는 아티제 매각 보도 내용. 이명박 정부는 대기업들에게 동반성장을 이유로 많은 기업들의 매각을 압박했다./사진=머니투데이 홈페이지 기사 캡쳐.
그 뒤를 물려받은 삼성전자 CEO 출신의 최지성 실장은 당시 현안인 동반성장위원회의 시스템통합(SI) 업종의 중기적합업종 추진 등에 대한 고민을 물려받았다.

삼성SDS가 국가 공공물량에 대한 입찰 참여가 제한되면 사업의 한계에 봉착하기 때문에 해외로 진출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기업 상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2015년 초 최 실장을 만났을 때의 일이다. 2012년 이 부회장으로부터 상장을 하지 않겠다는 얘기를 들은 지 2년여만에 삼성SDS가 상장하는 사태(기자입장에서 오보 사태)에 대해 "왜 상황이 2년만에 변한 것인지"에 대해 물었다.

최 실장은 당시 "2012년 대선 정국에 정부의 동반성장과 금산분리, 순환출자해소, 일감몰아주기 규제 등의 압박이 심한 상황에서 동반성장위원회가 삼성SDS 등 SI 대기업의 국내 입찰을 제한하는 사태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하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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